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적엔 내가 불사조라고 생각했었다. 차에 치어도 죽지않고 높은데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고, 아니 죽는다라는 생각조차 없었고 다치지도 않고 멀쩡할거라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지 못하던 때이긴 했지만 '나는 절대로 다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라고 생각했던 일이 이상하게도 또렷이 기억이 남아있어서 혼자 떠올리고 맥없이 웃곤 한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실은 아직도 절실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이.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되고 끝난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왔으니 당연히 행복하고 기뻐야 할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임종을 앞두고 있던 사람도, 사고로 모든 장기가 훼손당한 사람도, 불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더이상 죽지 않는다. 그야말로 아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 이렇게 죽지않고 숨쉬는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또 당장에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나고 보험회사들은 파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갑작스런 죽음의 중지는 세상을 혼란에 빠트린다.

 

나라 밖에서는 여전히 죽음이 진행되고 있지만 나라 안에서는 죽음이 중지된것이다. 임종을 앞두고 있던 한 노인이 자식들에게 자신을 국경 넘어로 데려다 줄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가족들이 그 뜻에 따라 국경을 넘는 순간 노인은 죽음을 맞는다. 그 이후로 남들 눈을 피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국가에서는 국경을 넘는것을 금지하라고 말은 하지만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죽음의 중지로 수많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 '죽음'으로부터 자신이 일부러 죽음을 중지했으며 이제부터는 다시 죽음이 시작될거라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한다. 앞으로는 죽음 예고제(?)를 실시하겠다는 말과 함께... 죽음의 여신은 죽음을 맞기 일주일 전에 보라색 편지로 죽음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죽음을 일주일 전에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차분히 주변정리를 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기에 일주일은 너무 짧게 느껴진다. 처음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울것이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울테고 그렇게 우왕좌왕 불안해하다 죽는건 결코 행복하지 않을것같다.

 

그날 그날 열심히 죽음의 편지를 보내는 죽음의 여신에게 한 통의 편지가 되돌아온다. 어떤 경유로 편지가 되돌아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편지를 다시 보내려는 여러 번의 시도는 모두 허사가 된다. 일주일 후 죽음을 맞이해야할 한 명의 첼리스트는 죽지 않는다. 그녀는 그에게 직접 편지를 전해주기로 하고 그의 집으로 향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세 권째 읽는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호평을 받는 작가들의 작품에 도전했다가 좌절해본 경험이 있는 나도 그의 책에는 선뜻 손이 간다. 너무 난해하지 않아서 읽기에 망설임이 없다. <죽음의 중지> 또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심오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으며 나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것들을 던져준다. 좋은 책은 그래야 하는게 아닐까.

 

책을 읽는동안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누구나 죽어가고 있다. 단지 죽어가고 있다는걸 망각하고 있을뿐....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걸 잊고 사는게 좋을지 매순간 기억하며 사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그저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는 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기르고 싶다. 천상병 시인의 글처럼 소풍처럼 왔다 가노라, 아름다웠노라 말 할 수 있는 그런 마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나 어차피 똑같이 죽음에 더 다가가는 것임을 모른다.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