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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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유현준/ 을유문화사

 

글쟁이가 된다는 조카를 꼬셔서 건축학과를 보냈다. 그러고 미안해서인지 가끔 아주 가끔 건축에 관한 책이 눈에 들어올때가 있다. 제일 처음에는 묵상인가 승효상이 유럽의 수도원 기행을 한 책이었다. 수도원 기행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르꼬르뷔지에라는 대단한 프랑스 건축가의 이야기를 알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용기를 내서 건축의 탄생이라는 건축가를 소개하는 만화책을 보았다. 얼추 이런 건축가들이 있었구나 생각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다시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유현준의 책을 만났다. 모르겠다. 알쓸신잡에 나오는 웃음기 없는 얼굴, 진지하면서 깊이 있는 내용에 언젠가 시간이 되면 저 사람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가는 그냥 수치를 아는 사람, 아니면 무엇인가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가 승효상의 책을 읽고 놀랐다.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겠다.

하기야 건축이라는게 사람이 사는 곳이니 사람에 대해서 잘 알겠지 그리고 이제는 사람만 사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되었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우리들의 공간에 대한 고민은 점점 더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금방 끝나겠지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20만 가까운 사람들이 나올 전망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을 피하고 되도록 방에 있다. 집밖을 나갈 때면 마스크는 이제 필수이다. 집에 들어오면 손을 씻어야 하고 먹는 음식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의 생활의 변화는 공간의 변화도 가능하게 했다.

종교는 물론 교육현장 역시 변화를 가져야 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창조가 필요한 시간이다. 시간이라는게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몇 년 전부터 불멍, 논멍, 산멍하면서 사람들의 휴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외국에 나가지 못하니 집에서도 차안에서도 사람들은 휴식을 찾는다. 휴식도 장소와 관련이 있다.

집에 어디에 앉아서 쉬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집이 정말 나에게 편한 곳이냐가 또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건축은 정책과 정치적인 결정과 관련이 있나 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아파트에서 자라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도시인 나는 그 아파트와 별개로 살지 못하는 존재이다. 단한번도 그 아파트를 벗어나야겠다 혹은 도시를 벗어나서 살아야겠다 생각하지 않다가 최근에 자그마한 생각을 해본다.

시골에 집이 있다면 불편하겠지? 그래서 그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한다면 한 시름 없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보고서, 논문, 강의 이런 것이 입에 붙어 살던 많은 날 속에서 어디를 가야겠다 어디를 가고 싶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바라다가 점점 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역시 코로나 탓이 아닌가도 돌이켜본다.

좀 힘들면 여행을 다녀오고 그래서 힘을 받았는데 그런 일이 사라지니 일상이 그냥 일상이 되어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공간, 이웃, 자연, , 건축이 중요한 이유도 그러하다. 멀리 떠나면 집이 그립고 집 음식이 그립다. 나를 알아 주는 이웃이 있고 내게 정겨운 공간이 있다면 그것이 내가 나답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달라져야 변화를 시도해야 나를 더 잘아는 법이다. 건축의 세상은 그래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소개를 하고 변화를 알려주어도 잘 모르겠다. 다만 건축이 사람세상에 필요한 것이고 되도록 나답게 우리답게 사람답게 하는 일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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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거기에 곰이 있었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뱅상 소렐 글 그림,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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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벵상 소렐/ 김희진 옮김/ 미메시스

 

곰이 숲에 있다. 그 곰은 동네 한 처녀를 좋아한다. 그 처녀는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려 힘들어한다. 마을 남자들은 다른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신부는 권력을 휘둘려 여자들을 농간한다.

곰이 한 남자를 덮쳐 그 남자의 얼굴로 가면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곰인줄 모른다. 말없는 바르나베씨로 생각한다. 곰은 자기가 좋아하는 잔에게 가까이 가지만 잔과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마을 모든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참 간단한 이야기다. 남자들은 맥주집에서 신세를 한탄하고 여자들은 뜨개질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세를 탓한다. 곰은 듣기만하는데 아무도 그가 곰인지 모른다.

벵상소렐은 유명한 작가다. 그가 유명한 것은 그림에 보이는 것 만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프랑스 만화는 철학적이라고 한다. 그 만큼 그림 외에도 생각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생각할 것이 많다. 우리 일상이 비툴어져있거나 투사되거나 혹은 우화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은 메타포라고 한다. 그림은 이 메타포를 잘 담고 있어야 한다. 직설적이지만 우의적으로 직관적이지만 투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늑대, 돼지는 어린이 그림책에 많이 나오는 동물이다.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영리하고 그런데 그 곰이 어른들의 이야기에 등장했다. 어린이들 소재가 어른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으니 당연히 어른들은 모른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세상을 다 살아봐서 모든 지혜를 가진 것처럼 착각한다.

그런 착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곰과 성적관계를 맺은 모든 여성은 만족해하고 남자들은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뒤에 가서는 욕을 한다. 자기 부인은 막대하고 젊은 여자들은 흘끗 쳐다본다. 자식에게 가장 힘이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술자리에서 술이 취하면 어리광을 부린다.

여자들은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허구헌날 술만 먹어댄다며 타박한다. 그리고 모여서 뒷담화를 한다. 어느 한 구석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동물같은 원초적인 것에 욕구를 채우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한 남자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들은 자기들의 불행을 모두 바르나베 탓으로 몰아버린다. 희생양이다. 역사가 그랬다. 말이 없는 사람, 가장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덮씌운다. 그는 말하지 않으니까 그는 이렇게 해도 군 말이 없으니까 그리고 정체를 밝힌다.

이야기 끝은 곰이다. 곰이 잔을 만났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곰만이 남자와 여자의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까

시장이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있어서 마을 발전시키려고 시장에 나왔지만 모두에게 비웃음을 산다.

신부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것 같지만 그의 횡포 탓에 사람들이 그가 달갑지 않다. 아니 어쩌면 다 아는 비밀이다.

그런데 곰은 존경도 사랑도 인정도 받지 않았던 바르나베씨였으니 남자도 여자도 이말 저말 이 행동 저 행동 한 것이다. 약한자에게 모든 것으로 보여도 괜찮다 생각하는 위계관계는 봉건시대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속에도 늘 상보인다. 그게 바르나베이고 그게 곰이었다. 그 본질을 들킨 이야기는 덮으면서 애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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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에게 하늘 나라를 묻다 - 예수님의 비유에서 삶의 답을 찾다
전원 지음 / 생활성서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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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에게 하늘나라를 묻다/전원/생활성서사

 

전원신부님을 알게 된 것은 오타와에서 만난 젊은 한인 가족 탓이다. 몇 년 전 코로나 전에 갔을때는 둘이었는데 이제 셋이 된 가족 탓에

코로나는 우리 세상을 또 다른 차원에서 보게 한 것은 분명하다. 비대면, 1,2,3차 예방 접종,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진단키트, 신속항원검사, 그리고 확진자 어느 순간 확진자가 되지 않으면 미래 확진자로 살아야 하고 한번은 걸려야 끝날 것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이다.

그전 세상은 예수 탄생 전과 탄생후로 나뉘었고, 다시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신부님의 글돌 단순히 복음 속 비유를 통한 에세이라면 좋았을텐데 그저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코로나로 인한 변화된 세상 틈속으로 복음을 말한다. 아무도 없는 성당, 이세상을 위해 변화되어야 하는 교회, 그리고 비대면과 일상적 거리두기, 얼마전 유현준 선생의 공간의 미래에서도 교회의 주중의 공간의 사용이 변해 세상을 위해서 그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되고 모든 것이 데이터 기반 전기를 통해 얻은 자료에 기반을 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처음으로 유럽을 나갈 때 일본어에서 우리 말로 번역되 노란색 우리는 지금 세게를 간다였던거 흔히 우간다라고 불리는 책을 보고 유명한 명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후 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외국에서 살면서 여행정보를 찾는 작가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도 한참을 종이지도를 얻으려고 여행안내소를 갔었다. 시간이 변해 구굴링을 하고 맛집 검색을 하는 것도 다 내 휴대폰을 통해서 한다. 그렇게 된 것이 겨우 12-3년 만이다.

그 와중에 복음의 비유는 다른 의미를 가졌을까? 사람을 따스하게 말하는 방식과 이야기는 요 코로나로 인해 변해버린 것일까?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사람이 주는 선물이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춘문예에서 본 이야기라고 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서 로봇을 대량 생산했단다. 이 로봇은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의식주 문제를 도와주고, 노인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어느날 정부는 이 로봇은 다 없애기로 했단다. 노인들은 그 로봇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더 외로워졌단다. 사람은 주고 받고 소통하며 사는 것이다. 울리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한다.

남을 통해 상처를 또 남을 통해 위로받고 살아간다. 세상의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바뀌었어도 사람들에게 통한 비유는 여전히 있다. 복음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말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위로를 주려고 위로를 받으려고 오랫동안 종교라는 것이 세상의 역할을 했다. 그 역할이 축소되는 순간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곳을 찾는다. 대공황이 일어나면 자살이 늘고 알콜 중독이 많아질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위기가 찾아오면 나보다 다른 이를 더 배려한다.

다시 한번의 대통령 선거 어떤 이는 졌고 어떤 이는 이겼다.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져서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통합을 하고 다시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쪽편으로 우세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 정치로 돌아가면 위로가 없는 세상에서는 배려를 잃게 된다. 겨자씨에게 하늘나라를 묻다. 요즘 들어 제목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데 참 시적이면 비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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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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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말수가 적은 아버지 9남매의 장남이고, 평생 이 사업 저 사업을 한다면서 일다운 일은 젊었을 때 조금 한 할아버지는 물론 배다른 동생들까지 부양 양육하신 아버지 그 가족의 고리가 너무 깊어 유학을 택하신 아버지. 그때 당시는 살아남은 사람은 다 친일할 수 없었다면 할아버지의 과거 행적을 애써 묻어버리신 아버지, 조카들에게는 라면을 잘 끓여주시는 할아버지, 아무 말 없이 지금도 몸을 움직이신 아버지의 젊은 날은 고단해서 술을 드셨을 것이다. 제 정신으로 집에 들어오기 힘드셔서, 언제나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보시고 지금도 드라마 출연진을 수첩에 적으시고 새벽마다 평화방송 미사 강론을 메모하시는 아버지 내가 아는 아버지가 내가 아는 전부일까? 작가 정지아는 자신을 반성주의자요 성장애주의자라고 한다 그게 자칭이든 타칭이든 그게 얼마나 중요하랴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 어머니 대신에 자신의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주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아니 동네 머슴으로 살았고 평생 사회주의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 이념과 사상과는 달리 자기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사람, 사시 눈을 가지고 있는데다 한약을 먹어 전기 고문을 당하고도 어렵사리 얻은 딸, 찢어지게 가난하고, 자기 때문에 모든 가족들의 미래를 막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들의 갖은 욕을 되받으면서 단한번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버지 작가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는지 모른다.

자기가 아버지를 닮아 융통성도 없어서 정교수가 되지 못한데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사귄 율사랑 결혼은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으로 인해 엎어져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결과라 오히려 고소해 하던 작가의 아버지 알기 3일은 아버지가 전봇대에 부딪혀 뇌출혈을 일으키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주변사람들을 통해서 듣는다. 외로울 것 같은 아버지의 장례식은 여러사람들이 찾아온다. 자기 보다 더 자식같은 학수, 황사장, 박선생, 노랑머리 소녀까지 아버지의 친구는 다양했다. 소리크고 모든 일에 나서는 큰 집 언니들은 그렇다 치고 어머니를 자기 어머니처럼 따르는 떡집 언니까지 아버지의 장례식은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차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작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하동댁 궁뎅이를 두드리는 것이 아버지의 사회주의, 유물론, 평등, 혁명, 현실주의와 지극히 다른 수놈의 짓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 어릴적 어머니 대신 자기와 놀아주고 무등을 태워주던 아버지를 그렇게나 좋아해서 마지막까지 미운소리만 하던 작은 아버지가 도망가던 아리를 붙잡고 어쩌겄냐 가야제 하거나 화장하는 도중에 엄마가 실없이 소리를 내며 쫌 대줄 것을 하는 말이 아버지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모습같다. 그런데 작가는 어땠을까? 노랑머리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 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다 군인 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무게가 느껴진다. 책을 보는 동안 몇 번을 책을 내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갔던 세월의 무게는 어땠을까? 일제 강점기에 학교에 들어가 한참 젊은 나이에 동란을 만나고 그 이후 이어지는 미군정과 419516 그리고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만 말해야 우리 아버지의 젊은 시절, 세상과 협상하고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그 인생이 느껴진다. 자식이라는 것이 빨치산 생활보다 경찰보다 미군보다 더 무섭다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무게를 얼마나 느끼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처럼 거칠고 모진 세월을 살지 않아서 단 한번도 아버지처럼 동생들, 부모를,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서 주억 거릴 필요가 없었으니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준 적이 없으니 아버지의 해방을 나도 이제 조만간 만날 것이다. 세상에 흩뿌러질 아버지의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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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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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할 때 나의 지적 허영심과 과욕이 항상 두껍고 어려운 책을 찾는다. 최근에는 책 기획 프로젝트를 한다고 가벼운 책을 몇권 골라 보지만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두고 보는 책은 주로 500페이지가 넘고 내용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책들이 아니다. 특히 그 내용이 세계사와 그림을 만나다면 나의 지적 허영심과 과욕은 지적 교만을 만나 요동을 친다. 그러다 그 책은 여러달 책장을 맴맴돌다가 놀자며 달려오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바깥의 뜨거운 열기에 숨어 방안에 박혀버린 영혼을 움직인다. 그때에 책책에 박혀있던 지적 교만은 튀어나와 끝장을 보자며 나의 시간과 맞선다.

시대를 훔친 미술 뭐 미술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세계사를 알겠어 혹은 세계사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미술을 알겠어 하는 이런 시건방진 교만과 뭔지 알고 싶은 허영과 과욕은 끝끝내 들도 있기에 팔목이 아픈 책을 읽게 만든다. 그것이 이제 지적 호기심과 연결되면 끝장이다. 어 이거 재미있네 하고 보다가 다시 책장에 들어가고 어 아직도 여기있어 하고 다시 집어들다 어느날 나의 교만, 허영, 과욕, 호기심은 책을 마지막 페이지에 향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되풀이하다. 이런 두껍고 어려운 책을 내가 왜보지?

작가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림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세계사에 대한 이해의 내공이 우리동네 말로 솔찬하다. 작가소개에 애게 겨우 석사가 하고 얕잡아보다가는 마지막까지 경이롭게 쫓아가지 못할 것이다.

책을 한참 보다가 어디 출판사야 하고 보면 이 작가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민음사 안팔릴 책들만 만들어내는 곳일줄 알았던 한길사와 민음사 그들이 만든 책이니 반드시 오랫동안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은 알고있어야 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 러시아와 식민제국까지 넘나들 뿐 아니라 남미의 이야기까지 이제 나는 이진숙의 찐팬 아니면 덕후가 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왜 이런 사람이 티비에 나오지 않은것이야? 기왕 할 것이며 동남아 침략사나 남미제국과 아프리카 침탈 역사와 같은 무자비한 잔혹사도 밝혀주면 좋을텐데

예술이라는 것은 세상과 유린되지도 않고 작가들은 성향상 자유로운 세계를 구축하므로 어용작가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세계에 충실하기 때문에 예술은 그들 나름의 상상과 보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1940년 파리를 점령한 나치가 피카소의 작업실에 들러 게르니카 사진을 이것이 당신 작품이오? 라는 질문에 아니오 이것은 당신들 작품이오라고 하듯이 작가를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세상의 소리에 기울이게 할 때 작가는 세상에 자기 이름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미술은 작가의 이름과 분리되지 않고 남아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는 세계사에 한종적을 남길 수 밖에 없다. 마사초나 카라바죠 루벤스와 다비드, 들라크루와와 마네와 고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세계사에 종적을 남기고 세계사에서 그들을 제외하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고흐와 밀레가 그린 그림의 서민의 모습과 콜비츠의 평화에 대한 염워은 시대와 동떨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때로는 여성의 문제가 때로는 계급과 계층의 문제가 때로는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때로는 인종과 우생학이, 때로는 16개의 독특한 가계 혈종으로 구분되는 인간의 역사에 미술이 있었다. 그 미술에 우리는 자연과 환경과 생태의 이야기를 담아내어야 할 것이다. 전쟁에 관련된 그 유명한 사진들처럼 지구가 울부짖고 만들고 부숴버린 건물과 길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도 시대를 훔친 미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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