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비록 죽어 뼈가 될지라도
이 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
내가 살아 백번을 윤회한다 해도
이 한은 정녕 살아 있으리.
천지가 뒤바뀌어 태초가 되고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연기가 되어도
이 한은 맺히고 더욱 굳어져
세월이 흐를수록 단단해지리라.
(이하 생략 )
- p 23 ,원교 이광사 -



나주벽서 사건으로 연류 되어 완도 신지도에서 고난의 삶을 이어가던 원교 이광사의 '도망'이라는 시이다. 유배지에서의 심정과 한을 느낄 수 있는 절절한 아픔이 담겼다. 당쟁의 정적에 의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애끓는 심정을 그린 내용이다. 권력에 의한 고난과 고통의 시절을 지내야 했던 처절함이 글의 행간에서 배어 나온다.


원교 이광사뿐만 아니라,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의 애틋한 정을 저승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가슴 아파해야할 사정은, 유배를 당한 사람이 처한 비극적 운명이다. 이런 운명의 사슬을 짊어지고 살아냈던 선비 22인의 삶을 상세히 들여다보는 내용이 펼쳐진다.

유배지에 묶여진 삶은 목숨만 붙어 있을 뿐이지 마음껏 하지 못하니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 더러는 자유의 박탈 속에서 시문과 풍광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며 학문에 몰두하며, 미래의 희망을 삼고 역사의 뒷길에서 칼을 갈아야 했던 인물도 있다. 그런 인물을 주로 택하여, 그들이 귀양살이 했던 지역을 더듬으며 역사여행을 한다.


많은 인물의 유배지로 택하였던 제주도는 천형의 유배지라는 느낌이 들 만큼 세속과 떨어진 곳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경치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조선 시대의 유명한 유배지 중 하나다. 그런 유배지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 책은, 그 시대 유배의 참 뜻과 유배생활을 모습을 살펴본다. 
 

전국에 걸쳐 분포 되었던 유배지 중에서, 추사 김정희 등이 유배 되었던 제주도나, 다산 정약용이 유배 되었던 전라도 강진 등이 널리 알려진 유배지이다. 각처의 유배지에서 백성과 나라를 위한 충심을 바치며 자신들의 꿈과 이상을 다져야 했다. 고통의 유배 생활을 엿보는 그 시대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삶의 방향을 살피는 장점이 있다.


< 유배 >, 권력을 지우려 했고 세상을 지우려 했던 사람들 (갤리온, 2008 )>에서는, 조선 시대 지식인으로 유배를 당한 대표적 인물 22명을 언급 한다. 원교 이광사를 비롯한 삼봉에서 면암, 그리고 종두법의 지석영까지, 각 인물에 대한 유배지에서의 삶을 조명해 보고, 그 비운의 삶을 통하여, 외로운 땅에서 꽃 피웠던 학문과 예술의 자취를 느껴본다.


드라마 같은 기구한 운명을 펼쳤던 유배의 삶에서, 그들의 진솔한 인간적인 면모도 알아보고, 천추만세에 슬픔을 알리라면서 한 맺힌 고통을 삭혀야 했던, 그 슬픈 영혼의 한을 조금이나마 가늠하고 위로해 보는 계기도 마련한다. 그들의 울분이 담긴 작품에서 영혼이 서린 자취를 만난다.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을 기약하건만, 꿈 속에서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원치 않던 머나먼 유배지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권력을 지우려 했던 마음속에는, 그래도 세상과의 인연을 곱게 다지려 했던 삶도 묻어나고, 죽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현실에 체념도 한다.

 
완도에 유배 되었던 원교 이광사에 의한 동국진체의 완성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일을 비롯한 대단한 사연이 많다. 추사도 그랬지만 원교도 '벼루를 먹으로 구멍 내겠다'는 결심으로 하루 1000자의 글씨와, 귀한 종이 대신 베를 빨아 써가며 글을 쓰고, 쓰고 버린 붓이 항아리로 가득 담길 정도라고 한다. 푸른 바다에 몸을 씻거나 달빛에 마음을 닦는 호된 아픔의 세월이었다.


임금을 시해하려는 음모에 휘말려 3대에 걸쳐 4 차례나 귀양살이를 하기도하고, 아버지가 해야 했던 유배의 땅 고금도에는, 아들인 추사 김정희도 유배된 기막힌 운명도 있다. 이제는 섬에 다리가 놓여 육지가 된 이 지역은 유배지였던 흔적이 사라져 유배의 역사는 찾기가 어렵다. 다만 시련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가 담긴 삶을 통해 숨결이 전해진다.


"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중략 )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한 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 P 37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선비의 의지가 담긴 혹독한 유배의 역사가 담겨있다. 권력의 싸움보다 학문의 꽃을 피운 다산 정약용과 형제들, 자신의 처소를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는 곳’이라 칭했던, 조희룡은 그 예술의 경지를 화폭에 담아냈던 사연이 눈에 띈다.


유배지 보길도에서는 국문학의 금자탑이라 칭송되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탄생하였다. 그 외의 유배지인 절해고도의 외로움을 시로 달랜 유배문학이 지금도 전해져서 유배의 아픔을 살펴보게 한다. 이 책도 인물의 문학적 면모를 사진과 함께 여행기처럼 소개하고 있다. 역사는 흘렀지만 삶의 숨결은 면면히 흐른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아꼈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들의 기구한 이야기와, 인물의 자취를 찾아 보여주려는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대 낮인데도 햇빛이 비치지 않으니 산 무덤 같다’는 유배지에서 펼쳐진 조선 지식인의 드라마 같은, 인간이 겪는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 삶을 감동적으로 만난다.


만약, 지금의 시대에 마음의 감옥으로 유배를 보낸다면, 누구를 택해야할까?  백담사에서 유배 아닌 유배를 보낸 전두환을 비롯한 부패 정치인을 유배를 보내면 어떨까? 유배지인 감옥에서 아픔을 겪으면,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치가 되살아날까? 보내야할 인물은 많지만, 새사람으로 변화될 지는 의문이다.


마음의 유배지로 보내는 형벌로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아픔을 맛보게 하면, 참된 민본 사상을 깨닫는 정의의 현실을 되찾게 될까? 유배의 참뜻을 살리는 마음의 고향을 찾게 하고, 권력의 맛에 살던 부패의 싹을 자르는 마땅한 조치인 감옥에서, 가치관의 정립과 정치 이념의 믿음을 확실하게 되찾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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