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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뒤집기 ㅣ 트리플 32
성수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서평단에 당첨되었다.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최진영 작가 님의 작품으로 접해본 적이 있다. 성수나 작가 님의 찻잔 뒤집기는, 소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말, 즉 성수나 작가 님의 에세이를 읽으면 어떤 정서로 읽혔어야 할 책인가를 단박에 알게 된다.
* 스포일러 주의
조각조각
본문에서는 조각난 심상이 자주 드러난다. 현실과 유리된 기분으로, '살게 하는' 자극과 재미와 이유를 좇아 사는 강희, 삶의 이유를 찾듯 살아가는 강희는 재정적인 위협이 없었고 그의 친구 해진은, 오롯이 자극만을 좇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강희를 시기했다.
시기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현실과 유리된 채 살아갔던 건 강희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해진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해진에게는 어린 시절, 타인의 이름을 모방하던 경험이 있고 마치 습관처럼 행했던 '이름 도용'은 강희를 만나서부터 그만두게 되었다. 현실로부터 유리된 채 살아가던 두 인물의 만남 그 자체가 어쩌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제각기의 모양을 한,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사물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사물에게는 마치 무언가와 맞물릴 수 있을 듯한 어떤 홈이 나 있다. 나의 시각에서 강희와 해진은 작중 등장하는 '재미있는 도자기', 즉 지구의 것이 아닌 그 돌멩이를 재료로 만들어진 사물이다. 그것을 오밀조밀 빚어 만든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두 사물은 각자의 기둥과 홈으로 꼭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운명이라고 하자.
2. 운명
두 사람은 얽힌다. 서로를 조물조물 반죽하여 합쳐 두었다가 그것을 조각내는 시기를 거쳤다가, 종국에는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가루를 낸다. 하지만 작가는 말미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렇게 가만 생각하다가 냅다 비약해서
그럼 모든 일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걸까?
생각해 보는데 나는 이 생각이 싫다.
그래서 운명에 대해 나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운명은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총괄하여 세세하고 구체적인 사항까지 잡아주는 관념이 아니라, 정말로 '운명'적으로 맺어지는 아주 특수한 무언가를 뜻하는 관념이라고. 나는 지금껏 운명이란 관념을 이렇게 사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운명이란 말을 아주 좋아한다.
따라서, 강희와 해진은 아마도 각자가 바라는 것, 그러니까 그것이 생김이든 취미든 자유이든 뭔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강희와 해진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엔딩이 꽤 황홀하다. 깨부수어진 찻잔. 그것의 의미는 장대했다.
트리플 시리즈는 얇다. 출판사 북다에서 나오는 '달달북다' 시리즈만큼은 아니더라도, 단숨에 후루룩 읽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그러니까 찻잔 같은 무언가를 우리 마음속에 남겨준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