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가 누구인가. 번득이고 재치넘치는 문체와 힘 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한국 문학에 있어 굵직한 장편과 대중성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 작가다.

 겨울나그네, 상도, 타인의 방, 잃어버린 섬, 등 다작으로도 유명하며, 최초로 문학에 발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4년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천재 작가이면서 다작을 한 작가였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그 깊이와 진정성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그가 병을 앓고 병을 치유하기 위해 썼다는 오랜만의 신작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만나봤다.

 좀 건조한 문체가 약간은 낯이 설기도 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한 남자 K. 그가 어느 날 눈 뜬 자기 방과 자기 집과 가족을 보고 일상의 편린 안에서 미세한 차이를 느낀다. 늘 버릇처럼 쓰던 화장품의 상표나 아내의 살 내음과 느낌, 딸의 태도.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해버린 애완견.

 그리고 처제의 결혼식에서 만나 15년 전에 죽은줄로만 알았던 장인. 그리고 친구 H를 통해 만난 여러 여자들.

 그리고 누나 JS. 누군가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를 정교한 설계도를 통해 만들어놓고 그럴 몰아넣었다가 미세하게 살짝 바꿔치기한 뒤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넣어놓은 것 같았다. 그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처음에 이 소설을 접하고 떠오른 몇 개의 작품들이 있었다. 최제훈의 일련의 소설이나 소설 <사슴벌레 여자>처럼 도시인이 자신의 일상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길을 잃는 거대한 은유. 그리고 어느날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영화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와도 다른 전개를 보였다. 어딘가 낯이 익으면서 동시에 낯 선 그 상황. 나는 누구인가.

 정말 이 소설처럼 일상은 누군가의 정교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간이 멈춘 그 비현실적인 순간에 내가 내가 아니게, 내가 누군가에게 설계되고 조작된 인물로 바뀌는 것일까.

 오랜만에 보인 신작에 우선은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오래 앓고 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는 작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그 기묘한 울림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닌 것 같을때.

 아니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나를 나로 인식하지만 순간 순간 일상의 작은 순간들은 나를 배반한다.

 길 잃은 숲에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름, 관계, 지위, 학력 같은 걸로 나를 표현해주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묘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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