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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중국의 차가운 밤을 한 나약한 지식인의 죽음으로 상징한 소설.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도 별로 크지 않다. 중국은 전쟁중이다. 공습이 울리면 피난을 하고 방공호에 숨어야 한다. 근처까지 일본이 침공했다는 소문과 중국이 이긴다는 소문이 근거 없이 낭설로만 떠돌 뿐 나라 꼴은 점점 엉망이 되고 물가는 오르고 살기는 점점 힘들어 진다.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을 하는 지식인출신 주인공은 죽어간다. 자기가 죽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별 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다.
약도 듣지 않는다. 수술은 돈이 없어 생각도 못하고, 제대로 된 병원도 가깝지 않다.
아름다운 아내는 자기처럼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다. 은행에 근무하며, 월급도 넉넉한데다 아직 젊고 아름답다.
아들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 기숙사 학교에 보냈다. 공부나 친구들 말고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본래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말 수가 적고 얌전한 편이다.
어머니는 아내를 증오한다. 아내 수성을 두고 그냥 '정부' 라고 말한다
아픈 남편을 돌볼 생각을 안하고 그저 바깥에 나가서 다른 남자와 어울리고 놀 거라고 험담을 한다.
아내는 젊고 아름다와서 주위에 남자도 있지만, 아픈 왕 원쉬안을 지키려고한다.
그런 아내에게 어머니는 심한 험담도 마다 않는다. 언젠가 떠날거면서 괜히 착한척하지 말아라. 너를 잘못 만난 탓에 내 아들이 이렇게 됐다.
아내는 아내대로 화가 난다. 서둘러 이 곳을 떠나버릴까 하다가 원쉬안의 착한 심성과 우유부단한 마음에 차마 떠나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는다.
거기다 이 집은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아니면 살아가기 어렵다.
어머니는 늙어 꼬부라진 노파가 되도록 힘든 집안 일을 손수 하면서 더 늙어간다. 집안의 잡동사니를 팔아넘기면서.
마침내 아내는 병든 남편의 수발과, 시어머니의 질타에 지쳐 떠난다. 회사에는 그녀만을 기다리는 젊은 은행 간부가 남쪽으로 전근을 함께 갈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별 사건도 없이 원쉬안은 천천히 죽어간다. 죽어가기 직전까지 회사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일을 한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이야기의 굴곡도 없지만 이상하게 중독성 있게 읽혀나간다. 심지어 재미있다.
아시안게임 개최국으로 눈부시게 화려한 개막행사를 열고,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서 저력을 보여주는 저 중국의 60여년 전 모습이 이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죽어가는 원쉬안은 낀세대일까? 미래 세대는 자기 공부에 바쁘지만 신 문물을 접했고, 자유롭고 밝으며 편안하다.
구세대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집안과 가문을 지키려고 하지만, 역부족이고 희생만 한 채 자기 아래의 세대에 까지 희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천천히 죽어간다. 폐병이 거의 확실한 원쉬안을 아내는 신식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한의사에게 데려가 약만 타 와 먹인다. 아내가 소개한 병원의 소개서를 어머니는 몰래 찢어버린다.
두 여자의 암투와 증오 사이에 주인공은 서서히 죽어간다.
세대를 아우르는 특성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아직도 반복되는 세대의 갈등은 우리도 비슷하다. 유교적 전통과 새 세대 사이에 맞물려 껴 있는 지금 우리 세대는 훨씬 밝지만.
그런데 바진은 그 껴 있는 세대를 왜 느리게 죽어가는 모습으로 그렸을까.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우유부단한 바보 캐릭터라면 죽어 마땅하다는 뜻인지, 청승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나라도 하루빨리 떠나는 게 서로를 위해 낫겠다고 생각된다. 떠나는 수성이 결코 밉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뜻일까, 가만히 생각한다.
그러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세대의 갈등 자체가 아니었을까, 전쟁도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을 대하는 방식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들이 너무 다르다. 전쟁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묵묵히 당하고만 사는 주인공이 제일 한심하다. 답답하다고?
표지의 새빨간 꽃무늬 전통의상과 대비해 뒤의 검고 어두운 배경처럼 칙칙한데도 계속 읽게되는 탁월한 심리묘사의 대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그래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