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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주인공 나는 30대 공무원. 편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오래 고시공부에 매달려 합격하고 공무원이 되었으나 도무지 하는 일이라곤 없어 답답할 정도로 하루 일과가 단순하다.
그러다 알게 된 권박사의 소개로 13호 캐비닛을 관리하게 되었는데 온통 별나고 이상한 사람들 뿐이다.
이들은 과학적, 의학적, 생물학적 이상은 없으나 보통 사람들과는 심하게 생태자체가 다른 이상자들로 '심토머' 라는 이름으로 분류된다.
혀에서 도마뱀이 자라나 도마뱀과 동거를 하는 여자,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들,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도플갱어, 그리고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해서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이야기 등.
이들을 타자화하면서 기가 막혀 이해를 못하고 타박만 하며 겨우겨우 상담전화를 끊고 마는 주인공이지만 이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디서도 뚜렷한 답을 주지 못한다. 더구나 권박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이들을 관리하는 일에서 발을 빼지도 못하고 어디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압력을 받기 시작한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이 기댈 곳은? 그를 구할 사람은?
어디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들과 소재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의 향연으로 빠져들어가는 신기한 소설. 각각의 이야기에 그럴듯한 학자의 소견과 의학명까지 붙어있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이게 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물론 저자는 이것이 창작되거나 변형된 창작자의 상상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혹시 그런 작가의 말 자체도 창작된 액자 소설 속의 일부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한국 소설들을 보면 속 시원하게 완결 되지 않은 진행형 결말을 본 적이 간혹 있다. 이걸 한국 소설의 특징이라고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지만 그런 면들은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이 있다. 물론 장점도 있다.
캐비닛 같은 소설도 주인공의 뿌리가 없다 보니 결말도 미래도 확연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이런 점은 소설을 진행형으로 인식하게 하고, 작품 속 인물들을 완전시 타자화하기 어렵게한다.
혹시 소설 속 심토머는 진짜가 아닐까? 아니, 적어도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타자화하는 것은 현실과 같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말단 공무원으로 심심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한 때 178일동안 캔 맥주만 마시면서 지냈던 일화를 읽으면 평범한 사람과 심토머의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질문과 질문을 연속해서 낳게 하는 신기한 소설.
많은 소설가와 작가들, 평론가들이 기념비적인 수작, 괴상한 작가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이해가 간다. 괴이한 소설 하나를 만난 것은 나 하나뿐은 아니었나보다.
다만, 아쉬운 점 하나.
어딘지 모르게 소설과 작가가 캐비닛 안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만의 감정어린 목소리일 수도 있지만, 캐비닛 밖으로 나온다면 어땠을까. 캐비닛 안에 머물러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미래와 희망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