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타인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이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누리는지를 주로 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 잘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린다는 생각에 고통을 받는다. 반면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이 지고 있는 무게를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이 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해보는 사람 또한 드물다. p88-89 - P88

로마시대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너는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해방되어야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은 인류가 존재하는한 영원불멸의 진리일 것이다. - P88

슬픔은 사라지는 단어가 아니다. 슬픔은 오겠다는 기별도 없이 제멋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수시로 온다. 눈을 감아도 온다. 슬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눈꺼풀은 없다. - P97

"빛이 안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해." - P116

나는 왜 혼자 힘으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나는 꼭 남들이 알려줘야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어쩌면 이래서 타인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 - P134

나는 우리 인류가 곁에 있던 것이 사라져 두 번 다시 볼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것을 슬퍼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기를 바란다. 우리 인류가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인류가 어떤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 그만둘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 P168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 앎이 아쉽고 소중하다. 너무 늦게 알게 되기 때문에 아쉽다. 그래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어렴풋하게라도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슨 말을 나누면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 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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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우리 인간이 다른 종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곳이다. 인간사 먹고사는 문제는 다른 종에게 신세 지지 않는 것이 없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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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날을 사는 것은 위험한 날을 대비한
예행 연습일지 모른다.
어쩌면.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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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와 반대로 라캉은 우리는 실천적인 안티 휴머니즘을 인정해야 한다고, 니체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고 부른 차원을 넘어서는 윤리, 인간성의 지극히 비인간적인 핵심과 대면하는 윤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 P74

환상이란 내가 딸기 케이크를 원하지만 현실에서 구할 수 없을 때 딸기 케이크 먹는 환상을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어떻게 나는 다른 무엇보다 딸기 케이크를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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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 따르면, 언어는 트로이의 목마 같은 위험한 선물이다. 언어는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진다. 하지만 일단 언어를 받아들이면 언어는 우리를 식민화한다. - P23

우리는 종교를 더이상 ‘실제로 믿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존중의 일부로서 (몇몇) 종교적 의례나 관습을 따를 뿐이다. "나는 실제로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내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라는 태도는 우리 시대의 특징으로, 전치된 믿음의 전형적인 형태일 것이다.
‘문화‘란 실제로 믿지 않고, 진정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행하는 모든 것들에 붙인 이름이다. 이것이 우리가 근본주의자들을 ‘야만인‘, 반문화인, 문화의 파괴자라며 비난하는 이유다. 그들은 정말 자신들의 믿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p50-p51 - P51

자기가 본 것만을 믿는 사람은 핵심을 놓치고 만다. "속지않는 자가 속는다(les non-dupes errent)"라는 라캉의 말이 의미하는것이 바로 이런 역설이다. 자신이 상징적 허구에 던져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자신의 눈만을 믿는 사람들은 가장 잘속는 사람들이다. 오직 자신의 눈만을 믿는 냉소주의자들이 놓치고있는 것은 상징적 허구의 실효성, 즉 이 허구가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善)에 대해 설교하는 타락한 신부들은 위선자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말에 교회의 권위를 부여할때,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다. - P55

라캉의 또 다른 공식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캉에게 인간 욕망의 근본 장벽은 그것이 주어 속격이든 목적어 속격이든 타자의 욕망이라는 점이다. 타자를 위한 욕망, 타자가 원하는 욕망 그리고 특히 타자가 원하는 것을 위한 욕망.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가 지적한 바와 같이선망(羨望)과 원망(怨望)은 인간 욕망의 두 구성 요소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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