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이 건넨 요구르트가 찝찝하고, 홀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보다는 가족 단위의 이용객을 볼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나‘ 또한 중산층적 교양과 인구 구성의 경계에 예민한 사람이다. ‘나‘는 분노를 어떤 정치적 자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원한과 복수의 재생산으로 지탱되는 ‘인간의 짓‘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인가, 아니라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간의 짓‘을 발명할 것인가. <공원에서(저자-김지연)_오은교 해설 중>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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