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스 솔루스 환상의 숲
레이몽 루셀 지음, 오종은 옮김 / 이모션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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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안 읽었지만 책소개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다 영어식이라 원본 번역인지 궁금함. 重譯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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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의학의 탄생 -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이매진 컨텍스트 11
미셸 푸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이매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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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론이야 추상적 사고를 요하니 그럴 수 있다 쳤지요. 이제 본론을 보는데....이거 영 이상하네요.
프랑스어 원문(공개된 것)을 구해서 새로 해봤어요. 영 다르게 읽히는데요? 30쪽 첫 두 문단입니다. 사소한? 것들은 관두고, 중요한 차이만, 빨강색 칠했습니다. 책과 비교해서 보세요.
 

 진부해진 우리 눈에, 인간의 몸은, 자연법에 따라, 병이 기원하고 병이 배분되는 공간을 이룬다. 공간의 선들과 용적들, 표면들, 그리고 통로들은, 이제는 친숙해진 지리학을 따라서, 해부학적 지도책을 통해서,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육체를 고형적인, 가시적인 질서로 보는 것은, 의학이 질병을 공간화 하는 데 있어 - 단연 제일간다고도, 또 가장 근본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다른 질병의 배분이 [과거에]있어 왔고, 또 [미래에]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알러지 반응들의 진행을, 몸의 비밀스러운 체적 속에서, 추적하는 구조들을, 언제 정의할 수 있게 될까? 신체 조직 일부분의 얇은 층에서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양상에 대해, 그 특유의 기하학을 누가 한번 그려 본 적이라도 있는가? 이런 현상들이, 그 공간화의 법칙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유클리드적 해부학 안에서인가? 그리고, 요컨대,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즉, 교감성에 관한 옛날 이론이, 해부학이 지각한 공간은 그에 상응하는 어휘를 조금도 제시하지 못하는, 대응, 근린, 상동 같은 용어를 구사했다는 것을 기억해 보라. 병리학 상의 위대한 사상들은 모두, 저마다 질병에 대해 어떤 배치 방식configuration을 지시하지만, 그 공간적 필요조건들은 반드시 고전적 기하학의 그것은 아니다.

Pour nos yeux déjà usés, le corps humain constitue, par droit de nature, l'espace d'origine et de répartition de la maladie: espace dont les lignes, les volumes, les surfaces et les chemins sont fixés, selon une géographie maintenant familière, par l'atlas anatomique. Cet ordre du corps solide et visible n'est cependant qu'une des manieres pour la medecine de spatialiser la maladie. Ni la premiere sans doubt, ni la plus fondamentale. Il y a eu et il y aura des distributions du mal qui sont autres.

Quand pourra-t-on définir les structures que suivent, dans le volume secret du corps, les réactions allergiques? A-t-on même jamais fait la géométrie spécifique d'une diffusion de virus dans la mince lame d'un segment tissulaire? Est-ce dans une anatomie euclidienne que ces phénomènes peuvent trouver la loi de leur spatialisation? Et il suffirait de rappeler, aprés tout, que la vieille théorie des sympathies parlait un vocabulaire de correspondances, de voisinages, d'homologies : termes pour lesquels l'espace perçu de l'anatomie n'offre guère de lexique cohérent. Chaque grande pensée dans le domaine de la pathologie prescrit à la maladie une configuration dont les requisits spatiaux ne sont pas forcément ceux de la géométrie classique.

*교감성sympathie. 인체의 여러 부분 간에 친근관계가 있는 경우를 가르킴. 현대의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개념

*알라딘 에디터가 프랑스글자 악상을 깨버리네요.  http://blog.daum.net/jamzam/12

에 가시면 37쪽까지 원본을 게시하고 번역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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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의학의 탄생 -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이매진 컨텍스트 11
미셸 푸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이매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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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번역 아닌, 거의 개작 수준.

맨 처음 14-15쪽 내용을 영문과 한글 번역을 싣겠습니다. 책과 비교해서 보십시오.

(영문판의 반괄호는 원저자주,  밑줄 부분은 번역자 주 표시임)

This book is about space, about language, and about death; it is about the act of seeing, the gaze.

  Towards the middle of the eighteenth century, Pomme treated and cured a hysteric by making her take 'baths, ten or twelve hours a day, for ten whole months'. At the end of this treatment for the desiccation of the nervous system and the heat that sustained it, Pomme saw 'membranous tissues like pieces of damp parchment...peel away with some slight discomfort, and these were passed daily with the urine; the right ureter also peeled away and came out whole in the same way'. The same thing occurred with the intestines, which at another stage, 'peeled off their internal tunics, which we saw emerge from the rectum. The oesophagus, the arterial trachea, and the tongue also peeled in due course; and the patient had rejected different pieces either by vomiting or by expectoration'1)

  Less than a hunded years later, this is how a doctor observed an anatomical lesion of the brain and its enveloping membranes, die so-called 'false membranes' frequently found on patients suffering from 'chronic meningitis:' 

  Their outer surface, which is next to the arachnoidian layer of the dura mater, adheres to this layer, sometimes very lightly, when they can be separated easily, sometimes very firmly and tightly, in which case it can be very difficult to detach them. Their internal surface is only contiguous with the arachnoid, and is in no way joined to it.....The false membranes are often transparent, especially when they are very thin; but usually they are white, grey, or red in colour, and occasionally, yellow, brown, or black. This matter often displays different shades in different parts of the same membrane. The thickness of these accidental productions varies greatly; sometimes they are so tenuous that they might be compared to a spider's web..... The organization of the false membranes also displays a great many differences: the thin ones are buffy, like the albuminous skins of eggs, and have no distinctive structure of their own. Others, on one of their sides, often display traces of blood vessels crossing over one another in different direcitons and injected. They can often be reduced to layers placed one upon another, between which discoloured blood clots are frequently interposed2)

  Between Pomme, who carried the old myths of nervous pathology to their ultimate form, and Bayle, who described the encephalic lesions of general paralysis for an era from which we have not yet merged, the difference is both tiny and total. For us, it is total, because each of Bayle's words, with its qualitative precisions, directs our gaze into a world of constant visibility, while Pomme, lacking any perceptual base, speaks to us in the language of fantasy. But by what fundamental experience can we establish such an obvious difference below the level of our certainties, in that region from which they emerge? How can we be sure that an eighteenth-century doctor did not see what he saw, but that it needed several decades before the fantastic figures were dissipated to reveal, in the space they vacated, the shapes of things as they really are?

이 책의 내용은 공간, 언어,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시선에 관한 것이다.

18세기 중엽쯤, 폼므는 한 히스테리 여성을 치료하는데 "꼬박10개월간, 하루 10시간 내지 12시간씩, 매일 입욕"을 하도록 해서 치유시켰다. 이 치료법은 신경계의 건조를 막고, 건조를 지속시키고 있던 열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던 것인데, 치료가 완료되었을 때, 폼므가 본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물기 가득한 양피지 쪼가리 같은, 점막의 부스러기가......가벼운 통증을 동반하며 떨어져 나왔고, 매일 오줌과 함께 배설되었다. 다음으로는 우측 요관이 벗겨지고, 같은 방식으로 통째로 나왔다" 또 다른 시기에, 장관[腸管]의 내막도 마찬가지로 "벗겨 떨어져 항문으로 나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식도, 기관, 그리고 혀도 차례로 벗겨져서 구토, 또는 가래를 통하여 갖가지 부분들이 배출되었다 "

이로부터 100년도 되지 않아서, 한 의사는 뇌와 뇌막의 해부학적 손상을 다음과 같이 지각한다. 그가 본 것은 '만성뇌막염'에 걸린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위막[僞膜]'이다.  

"이 위막의 외표면은 경뇌막의 거미줄 층[거미막]에 접하여 있으며, 여기에 붙어 있는데, 때로 매우 느슨하게 붙어 있는 경우에는 쉽게 분리할 수 있지만, 어떨 때는 아주 꽉 밀착되어 있어서 떼어 내기가 쉽지 않다. 위막의 내표면은 거미막과 단순하게 인접하여 있을뿐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위막은 때때로 투명하다. 아주 아주 얇은 경우에는 특히 투명하다. 하지만 보통은 하얀색, 회색 또는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드믈게는 노랗거나 갈색, 또는 검은 색인 경우도 있다. 같은 막에서도 부분에 따라서 물질의 색조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연의 소산인 이 막은 그 두께에서도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거미줄에 비교될 만큼 아주 얇은가 하면....위막의 조성에도 또한 많은 차이가 있다. 예컨데, 얇은 위막은 의막성[義膜性]이어서 달걀 흰자의 단백질 박피와 비슷하며 자기 고유의 특징적 구조를 갖지를 않는다. 어떤 위막은 그 표면에 때로 혈관의 흔적을 보여주는데, 이 혈관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하면서 서로 교차되어 있고 충혈되어 있다. 위막은 가끔 중첩된 박편으로 환원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박편들 사이에 변색된 응고 혈액 덩어리가 끼어 있는 것도 드믈지 않다."

폼므의 문장은 신경 병리학상의 해묵은 신화들을, 그 구극적 형태까지 추구해간 것이고, 바로 앞의 벨의 문장은 진행마비의 뇌손상을 묘사한 것으로서, 벨이 이를 기술한 시대로부터 아직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차이는 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그러나 전면적인 것이다. 그 차이가 우리에게 전면적인 것은 왜냐면, 벨의 단어 하나하나가 그 질적인 정밀함을 가지고 우리의 시선을 항상적인 가시성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반면, 폼므의 문장은 지각의 뒷받침 없이 심상[心象]의 언어를 말한다. 이러한 명백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떤 근본적 경험일 것인가? 우리들이 가진 확실성이라는 것들은, 확신 이전의 지점에서 생겨나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인데, 그런 확실성 이전의 지점에 있어서의 어떤 근본적인 경험이, 이상과 같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18세기 의사들은 자기가 눈으로 본 것을 보이는 그것으로서 지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십년 뒤에 환상적인 형상들은 흩어지고, 그 비워진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윤곽이, 시각에 드러나게 되었다 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확증할 수 있을까?

1) P.폼므 '양성의 신경증성질환개론' P.POMME, Traité des affections vaporeuses des deux sexes(4e éd., Lyon, 1769) 제1권, 60-65쪽 

 

2) A.L.J.벨 '정신질환신학설' A.L.J.BAYLE, Nouvelle doctrine des maladies mentales(Paris, 1825) 23-24쪽

<번역자 주>
language  영어의 language 에 대응되는 불어 단어는 langue와 langage가 있는데 여기서는 langage임. 소쉬르적 개념일 때는 한국에서는 언어활동이라 번역됨 (http://blog.aladin.co.kr/mramor/3183123 로쟈의 저공비행)
die so-called 'false membranes'   "소위「위막」이라는 대동(臺胴)"
arachnoidian layer of the dura mater 현대에는 거미막과 경뇌막은 질적으로 별개의 것으로 규정되고 있음
vaporeuses = 발산기성이라고 번역된다 - 프로이트 이전에는 신경증이 체내의 발산기 이상에서 온다고 보았다


번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각주는 번역도 안했고 그나마 주1의Traité des affections  부 분은 띄어쓰기도, 철자법도 맞지 않군요. 그리고 이만한 책에는 색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blog.daum.net/jamzam/10 블로그에 에 서론부분 전체를 영어번역본, 일본어 번역본과 대조 번역해 두었습니다. ) - 최근에 (2009년 1월) 불어 원문을 입수하여 재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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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동문선 문예신서 142
미셸 푸코 지음, 박정자 옮김 / 동문선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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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는  재미있습니다. 이게 철학인지 역사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갑니다. 이야기의 군데 군데에서 아하 그렇구나 하는 발견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요컨데 푸코는 푸코의 문장에서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독서도 그러해야 하겠지만, 푸코의 문장을 음미하는 것이 첫째가는 독서법이라고 생각되네요. 문장을 읽으면, 그에 "대해" 말하는 글들에서는 희미하기만 했던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던진 질문이 기억에 남으며, 그게 질문의 답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권력이 무슨 경제적 재화냐? 계약하고 양도하고 그러게?" "마르크스주의는 자유주의하고 경제주의라는 공동의 유산 위에 서있지 않냐?" 이런 질문들. 또 "설령 그렇다고 쳐도 권력을 경제로 분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냐?"라는 질문. 참 신선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 질문이 강의 마지막까지 내용 전개를 이끌고 있음을 보면 매우 호흡이 길다는 것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 밖에도 책 여러 군데에서 푸코는 질문 세례를 퍼붓곤 합니다. 수사적인 질문이 아니라, 무지의 공백을 짚어내는 질문들이죠. 문장을 짚어 가며 읽으면 문맥의 전후 관계속에서 그의 문제 제기 방식이 주는 즐거움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가진 전략을 폭로한 것도 매우 즐거운 읽기였습니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사회계약론 속에 로크, 루쏘와 함께 등장하던 그의 이론이 이처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절대주의의 전략을 가지고 있음은 생각지도 못했었지요(흔히 학교에선 보댕이나 보쒸에의 절대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도식화되어 암기되어 왔지요) 

 권력이 원래 인종간 전쟁과 역사의 담론으로 분석되다가 이런 담론이 식민화되는 지점으로서 프랑스 혁명 전후 시기를 들면서 네이션(a nation에서 the nation으로)의 담론화를 설명하는 대목은 역사공부의 새로운 지식을 주는 부록같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사에서 국민의회를 이끌었고, 총재로서 나폴레옹쿠데타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그 시에예스가 이런 의미를  가지는구나 처음 알았지요. 그와 함께 오귀스탱 티에리라는 사람, 몽로지에라는 사람(다 역사가들인데)을 거쳐 가면서 드디어 the nation 즉 국가가 나오네요. 라틴어 어원이 "태어나다"와 관련되어 있고, "태어남에 따른 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래서 민족이라는 아시아어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 nation이 다른 nations 들과 공존하다가, 상대적 집단이 아니라 state(절대주의로 볼땐 국가를 state라고 해 왔죠)를 떠맡아 절대화하는 과정, 통치권을 획득해가는 논리과정. 즉 the nation이 되는 과정은 매우 역사적 관점을 새롭게 해 주었습니다.  (  4강? 5강 이던가? 권력에 관한 전쟁 담론을 영국 내전을 통해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그동안 청교도와 전제 왕권의 대립으로만 보았던 평면적 역사 인식에 색슨적 묵시 사상의 역활, 의회 주류파의 분파성 등이 그려져 있어서 역사인식에 입체적 지평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7,8강이던가? 프랑스의 경우를 불랭빌리에와 (소위 후위투쟁이라고도 불리는)귀족층의 반동에서 대항사=역사의 탈 중심적 담론화를 보여 준 것도 새로운 공부가 되었습니다. )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반 절대주의적 권력 분석 담론(그러니까 1강에서 푸코가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했던 비경제적 분석)은 모두 제3신분에게 식민화되었습니다.  "로마가 다시 혁명을 정복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푸코가 1강에서 미리 제시하며 염려했던 문제, 즉 분산된 국부적 공격을 가하는 계보학이 전체적 일반적 과학에 식민화되어 버리는 사례를 보는 듯했습니다. 푸코가 왜 그렇게 계보학의 일반적 전체적 담론화 즉 권력화를 경계했는지 실감했습니다. 절대주의는 극복되지 않은 채  대중에게 승계되었을 뿐이죠(이 대목에서 감탄했습니다. "사유와 정치적 분석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도 왕의 목을 치지 못했다"라고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에서 한 말이 생각나더군요)  

  마지막 부분 9강 10강은 이제 푸코가 70년대 후반에 본격화하는 새로운 권력 분석을 예비 하기 위한 배치입니다. 이제 역사와 전쟁의 권력 분석 담론이 전체적 담론에 식민화되어 재 배치된 마당에서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그것을 식민화한 과정을 까발려 내는 일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푸코는 인간 종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하여 통치성을 구축한 과정에 주목하고 공격의 날을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18세기부터 두드러진 발전 과정을 거치, 나찌즘과 스탈린주의로, 그리고 현대적 권력으로 자리잡은 바이오 권력, 그것이 가진 안전 메커니즘에 대해서 말이죠. 이의 계보학적 분석은 다음 번 강의인 "안전 영토 인구"에서 상술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책을 읽어 가시다가 이해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이 계시면  blog.daum.net/jamzam/1 에 있는 잘못된 번역문 정정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참고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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