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체제이든 세대가 넘어갈수록 개혁이나 혁명의 가능성은 감소한다. 세대가 넘어갈수록 점차 그 체제가 디폴트로 받아들여지면 다른 체제에 대한 상상력은 뜬구름잡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세기의 반이 지나가면 이 모든 희망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인식으로 무장한 이 책은 절박한 실존적 물음을 제기한다."우리는 끝장났는가?" 우리는 인류를 멸종 위험에 몰아넣고 있는 이 시스템을 해체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시스템이 낳은 복합 위기 전반을 힘모아 함께 해결할 수 있 을까? ‘단지‘ 지구 가열, 우리의 집단적인 공적 행동 역량의 전진적 파괴, 서로를 돌보고 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능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그 피해가 빈민층과 노동계급, 인종화된 대중에게 전가되는 것 등등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해악이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전반적 위기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 까? 우리는 다양한 사회운동, 정당, 노동조합, 그 밖의 집합 행위자들의 투쟁을 조율하는 비전을 갖춘, 충분히 포괄적인 대항해게모니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을까? 그 생태적-사회적 변혁의 프로젝트가 식인 행위를 영원히 종식되도록 할 수 있을까? 현 국면에서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아니면 결실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는 바다.
더욱이 일단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하고 나면, 이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지에 관한 비전 역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든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은 시스템의 경제 영역 재편만을 목표로 삼을 수 는 없다. 경제 영역이 현재 제 살 깎아먹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저 모든 형태의 부가 경제 영역과 맺는 관계 역시 재편해야만 한다. 즉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의 관계,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 P22

따라서 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화된 측면‘과 ‘비시장화‘된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외적 현상이나 우연적인 경험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DNA에 각인된 특징이다. 사실 ‘공존‘은 이 둘의 관계를 포착하기에는 너무 약한 단어다. 더 나은 단어는 ‘기능적 중첩 imbrication‘이나 ‘종속‘이겠지만, 이런 말들도 이 관계의 도착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앞으로 논의를 통해 더 분명해지겠지만, 이러한 측면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은 ‘제 살 깎아먹기 cannibalization‘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