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한 오후 잠깐 장을 보러 가다. 제과점에서 (별 생각도 없이) 피낭시에 하나를 산다. 작은 여 점원이 손님을 도와주다가 말한다: 부알라voila. 마망을 돌볼 때 그녀에게 필요한 걸 가져다줄 때면 내가 늘 말했던 단어. 거의 돌아가실 즈음, 한 번은 반쯤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그녀는 메아리처럼 그 단어를 따라 했었다: 부알라("나 여기 있다." 라는 그 말. 그녀와 내가 평생 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
여 점원이 무심코 흘린 이 단어가 결국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운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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