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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평점 :
최근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기를 보듯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소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오락으로 소비하고 있을 때에도 현실에서는 크고 작은 범죄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감정 소모를 사명감으로 여기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파일러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표창원, 박지선, 권일용 등의 프로파일러가 TV에 등장하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현재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이 책은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인 앤 울버트 버지스가 쓴 것으로, 사례를 통해 프로파일링 기법의 시작점과 대중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위험성, 목적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문체는 에세이를 읽듯 편하고 쉽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연쇄살인과 같은 범죄에 대한 초기 수사기관들의 기본인식은 합리적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범죄나 특이한 유형의 범죄들을 그저 순전히 정신 나간 행동으로 치부하던 것이었다. 그랬던 시기 FBI가 한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부터 공식적인 범죄자 심리연구 프로젝트로 전환하여 수사기법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복역 중인 살인범을 찾아가 범행의 동기를 듣고 그것을 통해 흉악범죄자들의 행동을 통찰하여 살인범의 생각을 예측해보고자 하는 FBI소속 더글러스와 레슬러의 아이디어였다. 저자는 그들이 조사한 내용에서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접근법과 자료수집 방식의 체계화를 위해 FBI에 합류하게 되었다. FBI에서 범죄자 프로파일링 기법의 방법론을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합류는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이미 성범죄와 성범죄 트라우마의 피해자를 오랫동안 연구한 경험을 인정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무너지나 안 무너지나 보자” 식의 테스트를 감내해야함은 물론이고, 행동과학부의 유일한 여성으로 남성 지배적인 FBI 아카데미 전체에서 극소수인 여상 중 하나라는 사실과 씨름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 일이 사회에 얼마나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스템 수준에서 변화를 만들어보고자 연구에 매진했고 주효했다.
저자의 공개된 연구도 있었지만, 더 많은 연구가 정부기관의 사무실에 묻혀있었는데 저자가 연구의 목적을 많은 대중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양들의 침묵>이나 <텍사스 전기톱 학살>등의 영화들이 실화를 모티브로 오락적 요소로 적합한 악당의 전형을 만들어냈는데, 이러한 매체에서 과도하게 단순화된 범죄자들의 모습으로 인해 대중들이 쉽게 범죄자에게 감정이입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이 범죄로 유명해져가고 살인마들이 끔찍한 학살에서 분리되어 문화적 아이콘의 지위가 되어가고 있다는 위험성, 그 위기의식이 저자를 움직였다.
연쇄살인범들의 마음을 깊고 오래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연쇄살인범들 또한 저자가 연구하고 출판한 책을 읽으며 저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저자의 아이들 이름을 알았고 매년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오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런 공포스러운 자신의 상황도 그저 건조한 문체로 담백하게 쏟아 놓던 그녀가 이 일을 하는 목적만큼은 강한 어조로 분명히 밝힌다.
“연쇄살인범을 연구한 수십 년 동안 내게 이것은 고양이와 쥐 게임 같은 게 아니었고 이들이 엔터테인먼트로서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을 갱생하려는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게 이 일의 목적은 언제나 피해자였다. ... 중요한 사람은 피해자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만큼이나 피해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389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