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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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웅진지식하우스



1.

논리적이고 단호한 허지웅의 글을 좋아했었다. 확신에 찬 글은 강한 힘이 있었고, 내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허지웅이 이전 보다 더 마르다 못해 헬쓱해 진 얼굴로 땀을 뻘뻘흘리며 악착같이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발악에 가까웠다. 요가가 저렇게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이었나.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그가 혈액암을 앓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전쟁 같은 요가가 이해되었다. 예전엔 집에 있거나 쉴 때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쉴 줄도 알고, 소소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웃으며 인터뷰 하는 허지웅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사실 투병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온 세상의 아픔을 혼자 다 짊어진 모양새로 구구절절 내 아픔 다 알아달라는 투정으로 느껴진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나 허지웅은 허지웅이었다. 그의 활자는 담담하다. 또 여느 때처럼 날카롭지만 따뜻하다. 달라진 것이라면 정말로 아파봤고 그 아픔을 버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짜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마저도 허지웅 답다.


"그렇다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거나 당신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걱정할 것 없으니까 삶을 즐기세요, 어머니는 강합니다, 따위의 해괴한 덕담이나 쉽고 따뜻한 말로 에두를 수도 없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얼마든지 외워서 해답처럼 중얼거릴 수 있는 명제와 구호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쌀로 밥 짓은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없다. "71



2.

허지웅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착하는 고충, 하소연에 자기 능력이 닫는 만큼 일일이 답을 해준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가 사람들에게 제시한 방법 중 하나를 알게 되어 해봤는데 꽤 재밌다. ‘삶을 일곱 가지 장면으로 요약해보기’


<굿 와이프> 일곱 번째 시즌 열한 번째 에피소드의 첫 장면은 일곱 개의 컷으로 되어있는데, 태어나 걷는 순간부터 총알에 맞아 사망하게 된 딸의 삶을 일곱 개의 장면으로 편집한 것이다. 허지웅은 우연히 이 장면을 다시보다 자신의 삶을 일곱 가지 장면으로 요약하라고 했을 때 자신은 무얼 골랐을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백 명의 관객 가운데 두 명밖에 웃기지 못한 실패한 농담 같다고 여태 생각했지만 이 일곱 가지 장면을 꼽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 입체적인 것을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건 아니지만 혼자서 해볼 만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펼칠 때쯤엔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 강추!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 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 테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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