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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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행복이 뭔데? 다들 그 의미는 생각도 안 해보고 그냥 행복해야 한다는 말만 하잖아, 강박적으로. 왜 행복해야 하는데? 끝내는 건, 왜 안 되는 건데?29

    

1. 마음이 아픈 것도 심각한 질병이다.

이 소설은 심각한 우울증 등 마음의 병 또한 몸의 질병과 같은 것으로 인정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시대가 배경입니다.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을 수 있고, 합법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센터들도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설정이죠.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마음이 아픈 것을 질병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지"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힘들어. 넌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긍정적인 생각을 좀 해봐" "그래도 살아야지"

그리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들. 조금씩 멀어지는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속을 드러내는 대신 가면을 써야 했다. 22

 

주인공 서우 또한 심각한 마음의 상처로 말을 잃고 수년째 방에 칩거하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번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서우에게 죽음은 두려운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번에 걸친 자살시도에서 고통스러움에 대한 두려움을 학습했죠. 서우는 마지막 선택지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안락사 센터’를 선택합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지낸 후엔, 약을 받아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는 것을 연장할 수도 있고, 퇴소해서 사회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이 설정이 꽤 타당해 보입니다.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만큼 회생불가능한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건네는 어설픈 충고의 말은 더 큰 폭력일 뿐입니다.

 

육체의 건강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면 연명치료를 중단해도 좋다는 존엄사법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마음의 건강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면 육체와 동등하게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도 타당한 이치 아닐까요. 마음이 아픈 건 심각한 질병입니다.

 

 

 

 

2. 죽음은 삶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서우는 센터에 입소해서 죽음과 가까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이 왜 죽음을 원하는지 듣게 됩니다. 각기 다른 사연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에 의한 상처였고, 이는 각기 다른 폭력의 모습으로 입소자들의 마음을 회생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죠.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육체를 훼손한 것만이 살인입니까? 진짜 복수는 잘 사는 거라고요? 나를 위해 용서하라고요? 그런 형편없는 사람에게는 분노조차도 아깝다고요? 네, 네, 말은 쉽죠. 하지만 상처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 278

 

서우는 서로의 얘기에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이며 말 대신 함께 호흡해주는 사람들과 각자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하면서 어느 샌가 삶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감촉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성대에 마른 진흙처럼 들러붙어 퇴적된 말들이 이제 서우의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중학교이후 성장하지 못한 서우의 세상이 학교에서 집으로, 집에서 자신의 방으로 그 면적을 점점 좁혀 가며 혼자 ‘죽음’을 생각했을 때와 다르게, ‘죽음’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죽음으로 가득했던 서우의 세상은 오히려 조금씩 ‘삶’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죠.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방에 처박혀 있던 하루하루는 죽은 시간이었는데,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는 1분 1초가 전부 살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저 바깥세상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더 진하고 깊었다.” 146

 

이 책이 말하는 ‘삶을 이야기 하기위해 반드시 죽음은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허울 좋은 핑크빛 희망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삶에 대한 태도가 분명히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함일 것입니다. 또 한가지, 사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전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아이러니 하고 흔한 말이지만, 사람으로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3. 이 책만의 장점

소설 <미 비포 유>, <안락>에서 다뤄진 존엄사와 이 책에서 다룬 존엄사의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격인 인물들이 결국 존엄사를 선택한 앞의 두 소설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 소설에서는 앞 두 소설과 다르게 회복의 키워드가 들어있어서 더 삶을 논한 느낌이 들어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만 인정하는 존엄사법에서 한 발 더 나가 마음의 질병까지 존엄사의 영역으로 확장한 작가만의 세계가 무척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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