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외출을 위해 토트백을 한 손에 들고 쓰레기장에 버릴 꽉 찬 쓰레기 봉지 두개를 양손에 나눠 손가락사이에 끼웠다. 요즘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고양이 배설물이 뒤섞인 묵직한 두부 모래가 대부분이다. 엄청난 무게를 손가락으로 버티며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서 1층 버튼을 누른 뒤 찾아 온 평화 속에 쓰레기 봉지의 묵직함에 생각이 멈췄다. 마치 쓰레기봉지의 무게가 그동안 반려묘 로이와 지내며 느낀 행복의 무게인 것 같다는 대단한 자각과 함께 문득 고양이를 안 데려왔으면 지금 내 인생에 그나마도 웃을 일이 없었을 것 같다는 행복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며 풍요로운 미소가 지어지는 동안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쓰레기장에 도착해 행복의 증거물 두 봉지를 던지듯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은 지 20년 된 오래된 아파트라 집과 주차장이 연결되어있지 않은데 지하주차장으로 한참이나 걸어가야 하는 일이 귀찮다고 생각하며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라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려고 토트백을 든 손을 뻗었다. 순간 쓰레기장에 버린 것이 내 토트백임을 알았다. 토트백을 찾으러 쓰레기장으로 달려가며 혼잣말을 했다. 미쳐가는구나.


  이게 요즘 내 일상이다. 개인적인 일로 얼이 빠지고 생각이 분산되어, 살고는 있지만 사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맨 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것인가?

  모든 사고가 중지되고 활자 정체기를 맞았다. 책의 리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신에 좋은 약인 것처럼 활자를 투약만 하고 있지, 활자 비슷한 것도 내 안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무언가 쓰고 싶어진 책을 만났다. (에세이, 철학서, 인문학, 소설 모든 장르 상관없이 책은 내게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영감을 주는 책, 그렇지 않은 책. 구분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나서 내 마음이 무언가를 쓰고 싶은가 아닌가를 객관화해보는 것.)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Furiously Happy)의 저자인 제니 로슨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우리사회에서 격리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글로 책으로 써냈다. 큰 행사에 가면 테이블 밑에 숨어야 안심이 되고, 빨간색 무도회 드레스를 질질 끌며 맨발로 묘지 안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자해를 일상적으로 하며, 자동차 키를 정신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저자의 행동을 글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놀랍게도 내가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 존재했다. 공감이 가는 말, 힘이 되는 말에 마구 밑줄을 치며 마구 접어가며 읽었다.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어? 정신 질환 앓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며? 공감을 한다고? 너도 정신병자 아니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의 토트백이 쓰레기장과 조우한 사건으로 요즘 내 정신상태를 설명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순간을 대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토트백을 쓰레기봉지 대신 쓰레기장에 처박는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나 자신을 온전한 정신으로 이해하기도, 견디기도 힘든 순간의 연속이 바로 우리 삶이 아니던가.


 엄밀하게 우리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경계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단지 정신 질환 진단을 받지 않았을 뿐, ‘정상인’ 행세하는 ‘비정상인’도 주변에 널리지 않았는가.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판을 보라.내 말이 단박에 이해갈 것이다.


  한 달여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라도 하고 있는 건 제니 로슨 덕분이다.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것이 마치 무시무시한 병균쯤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 편견에 위축되기는커녕 아주 시원한 논리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며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서 ‘격하게 행복하기(Furiously Happy)’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저자의 모습이 내게 울림을 준 것이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보편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삶을 낭비했던 나여서 였을까?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게 바로 ‘지금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정신 나가 있는 동안, 진짜 정신 나간 사람의 정제되지 않은 아슬아슬한 사유가 자유로운 쾌감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 토트백을 쓰레기장에 버린 일은 정신나간 짓이 맞지만 살짝 미친 것 같아도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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