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나에게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일상들 가운데 소소한 행복을 찾아 누리는 '소확행'은 계속해서 우리삶에 유효한 화두이다. 그러나 아직은 행복에 관한 논의 자체가 물질적인 것에 국한 된 아주 협소한 규격안에 함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꿈꾸는 "특별한 삶". 우리는 그 특별한 삶을 , 누군가보다 더 나은 연봉을 받으며, 더 나은 차를 타고, 더 나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 정도로 정의내리는데 익숙하다. 이처럼 '물질'을 욕망하고 성취함으로써 얻어지는 감정이 행복의 완성인 것 처럼 여겨질 때가 많으며 지금의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은,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하는 모양새일 때가 많다.
욕망함은 삶의 진보를 위한 원동력이 된다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욕망을 성취하는 것으로 얻어진 행복은 알다시피 성취 직후 또 다른 욕망을 부르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내용에 공감하지 못할수록 현재를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일상을 한 폭의 스케치로 담아내는 것이 행복한 작가 박조건형.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에서 보여지는 현재에 발 딛는 그만의 방법은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자주 가는 단골식당, 예술극장, 헌책방 골목 등의 평범한 일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가족부터 주변의 모든 평범한 것들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그의 행복인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막상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있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그런 일들은 참 많다. 대단한 삶의 진리나 원칙들을 깨우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때론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p.73
사실 그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심하게 겪는 사람이다. 책을 내기로 출판사와 출판계약까지 하고 와서는 우울증 때문에 책을 펴낼 자신이 없어져,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했다. 그의 아내인 소설가 김비가 다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계약대로 책을 쓰겠다고 말하고는 남편 박조건형이 이 책을 완성하도록 자신의 글로 힘을 실어준다. 그렇게 이 책은 각자의 특기인 그림으로, 글로 채워지게 되었다. 각자의 그림과 글은, 이 책안에서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구현되었고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진다.
이 책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이 부부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 부부의 삶은 우리사회가 규정한 '평범한' 삶은 아니다. (평범이 도대체 뭔지..) 우리나라의 결혼제도는 두 남녀의 결합이라기 보다 가족과 가족의 결합에 가깝다. 그렇기에 결혼 제도에 부조리한 허례허식이 많다. 이 부부는 우리사회 통념적 결혼문화의 틀을 깨고,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물론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철저하게 두 사람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부모를 배제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이 부부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틀리다’고 말하는 가족형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족형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삶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온 삶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 그렇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어쩌면 평범한 일상은 그들에게 오히려 특별할지도 모르겠다. 멋진 삶이다! - 그렇게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삶에 대한 그들의 진심은 이 한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들의 평범하고도 유쾌한 삶을 통해 받은 많은 위로는 선물이다.
"기념일이던가? 그날은 웬일로 순순히 그러자고 대답해서 바로 다음날 약속을 잡아 손가락 위에 서로의 이름을 새겼다. 결혼반지나, 웨딩 사진이 없는데도 괜찮냐고 누군가 물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털끝만큼도 서운하거나 속상하지 않다.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 사랑도 모두 다른 사랑. 그 모든 것들이 다 똑같아야 한다는 말 자체가 오히려 어불성설일 뿐, 달라야 당연하고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만의 사랑을 했고, 우리만의 징표를 남겼다. 그리고 지금 역시 우리만의 방식으로 같이 산다." p.61
소소한 행복을 지향한다고 해서 목적 없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큰 꿈을 꾸지 않는 삶이라고 해서 가치 없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내 삶이, 욕망을 욕망하는 맹목적인 삶이 아니라, 평범한 시간들 속에서 소소하게 주어진 것에 늘 감사하는 삶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같이 평범한 일상의 특별함을 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다.
brunch.co.kr/@siljonler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