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무휴의 사랑 - 나와 당신을 감싼 여러 겹의 흔적들
임지은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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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미경의 큰 딸인 지은의 서사를 무연이 따라가다 이 대목에서 목울대가 울렸다. 가슴뼈 어디껜가가 욱신욱신 거려서 도무지 읽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아마도 60년대 생일 듯한 이혼한 미경이 낳은 90년대 생인 지은이 아프지만 덤덤히 써내려가고 있는 고추없이 사는 서사가 70년대 생인 이혼한 내가 고추없이 2000년대 생 딸을 데리고 지금을 버티며 살아가는 삶의 궤적들이 곳곳에서 맞물려서 일 테다.


말하자면 내가 지난 십 년간 살아온 곳은 "이혼시 고추없어구 여자셋만 살아동 만만한번지”일 것이다. 그곳의 거주자들은 남성의 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리를 비워둔 가난한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온갖 형태로 꾸준히 감각해야 했어서. 나는 곤죽이 된 마음으로 자주 미래를 의심했고 어느 새벽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p. 31


이혼 후, 별별 기막힌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특히 잦은 이사를 겪으며 비열하고 무례한 고추들로부터 숱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때문에 이사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라니. 책이 많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여자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사짐을 나르는 내내 인상을 써대며 육두문자를 날리던 씨발고추도 있었고, 2년 내내 사람 좋은 집주인 인냥 굴다가 만기가 되어 이사를 가려고 할 때는 이미 이사갈 집을 계약했음에도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고는 (아무때나 쳐들어와서는 일장연설로 여태 이런 법은 없었다며) 절대로 돈을 빼주지 않겠다고 우겨대던 늘근 꼰대고추도 있었다. 결국 이사 날짜가 다가와서 건강하고 힘센 고추를 내세워(타투를 몸에 감은 남동생) 돈을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나의 딸 다연은 아빠와 오빠, 삼촌들 두 명(위탁한 동생들)그야말로 고추밭에서 살다가 초등학교에서 따돌림으로 도망치듯 내게로 온 후, 내제화된 모성 환상성에 의해 실제 엄마의 모습에서 느낀 좌절감을 견디지 못하고 짐을 싸고 다시 고추밭으로 갔다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내게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길" 때문이었다. 아빠 집은 일산 성석동의 외진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중학교를 다니려면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한참 걸어나와서 버스를 타야만 한다. 그랬다. 다시 내게로 온 이유는 그 길이 무서워서였다.

“엄마, 난 그 길이 너무 무서워서 혼자서 다닐 수가 없어요.” 


다연은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내게 온 이유를 말했다.그런데 그때 70년대 생 아빠와 2000년대 생 아들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 길이 뭐가 무서워?”


고추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길이 우리에겐 존재한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에게도 존재했고 그 길은 되물림되듯 나에게로 왔고 서글프게도 나의 딸에게도 그 길은 피해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고추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길, 그 길이 무서워서 고추밭에서 내게로 온 딸을 보며 90년대 생 임지은이 쓴 "연중무휴의 사랑"을 끌어안고 신열을 앓듯 며칠동안 속울음을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야 그 길이 모두에게 안온하고 안전해 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참 신묘하고 기묘하다. 소설도 아닌 것이 내가 미경이 되었다가 지은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와서는 나의 딸의 미래를 그려보게 되는 책이다.


우리에게 무섭고 두려운 저 길을 아는 모든 여성 동지들이 어머니와 딸과 함께 미경과 지은을 만나기를 간곡히 바란다. 아니, 아니, 이 책은 저 길의 두려움을 알 길이 없는 이 땅의 모든 고추들이 반드시 봐야만 하는 책이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에게 안전하고 안온한 길이 생길 터이니. 


“그 길이 무서울 수 있구나. 너희들에게는 그게 기본값이었구나.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라고 말해주는 선량하고 다정한 고추들이 많아지는 세상이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이혼시 고추없어구 여자둘만 살아동 만만하지않을번지에서. 


*주의! 이혼과 관련 없는 분들이 읽어도 좋을 작가의 다양한 시선이 넘치는 책이랍니다!!!!


#백만년만의_책감상평
#연중무휴의_사랑 #임지은 
#도서출판_싸이더웨이
#작지만강한_1인출판사를_
#가열차게_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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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6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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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재밌고 흥미롭고 신박하다! 결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히어로를 이렇게나 따스하고 뭉클하게 창조 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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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6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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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닮은 히어로를 찾아서. . .


각기 다른 다섯 빛깔의 이야기는 누가 봐도 평범하기 보다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들은 딱히 영웅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영웅을 동경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소시민,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었다.


아니, 아니, 그 보다는 무수한 다수의 존재들로부터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고 옮거나 맞다고 정의 내려지는 것들과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삶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옹송그린 삶을 사는 소수자의 삶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들이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과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만남으로 인해 자신의 초능력을 알게 되거나 발화된다는 설정이 '마이너리티 히어로'의 주된 스토리이다. 물론 다섯 개의 이야기는 하나 같이 나의 상상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기발하고 신박하고 재밌고 눈물겹다. 


특히나 천선란의 “서프 비트”의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 울고 말았다. 늘 함께 하던 쌍둥이와 같았던 존재를 어이없이 잃고 나서야 자신의 초능력의 한계를 넓혀 간다는 것에 허우룩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렇듯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아프고 아프다. 


나도 지금 더 성장하기 위해 무언가를 잃어가는 중이니까. . .


지리멸렬한 코로나와 양극화로 지칠대로 지친 이 혹독한 시절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우리와 닮은 '마이너리티 히어로'라도 만나야하지 않을까? 또한 우리와 다른 세상 사람인 화려하고 멋진 히어로에게 지친 그대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슈퍼마이너리티히어로 #범유진외 #안전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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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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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구상하며 꿈과 상징, 신화 공부를 하다가 느닷없이 펼쳐든 책, 미친듯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완독! 무려 448p. 읽는 내내 어떤 영화가 떠올랐다. 제목은 모르겠고 태어나자마자 (짐캐리가 주인공인데)그의 모든 일상을 자신만 모르게 촬영되어 전국에 방송되는 스토리인데....뭐였더라? ?


무튼 영하 41도의 혹한기에 선택받은 자들만이 살아가는 따스하고 안락한 스노볼 안에 액터(연기자)는 보여주는 삶을 살고 디렉터(연출가)는 액터를 이용해 최고의 드라마를 만든다. 그리고 춥고 빡빡한 스노볼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저들의 드라마같은 삶을 동경하며 보는 자들(시청자)이다..가장 멋진 고해리를 만들기 위한 디렉터의 무시무시한 계략이 거침없이 자행되는데 ...진짜 나로 살아가길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겠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소설보다 내 삶이 더 무지막지한 것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깊고 시린 겨울밤이 애잔한데, 뭐 수없이 절망의 순간들과 위기가 닥쳐와도 존버하며 해피앤딩으로 끝나면 그만이니까! 아니 아니, 해피앤딩까진 안 바라고 그저 언제까지나 열린 결말이면 참 좋겠다. 부디


#스노볼 #박소영장편소설 #창비청소년문학98 #제1회카카오페이지창비영어덜트장르문학상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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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나는 한국신화
이경덕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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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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