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박민정 후기 / 플레이타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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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키우라는 건 크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소리 내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라는 뜻이죠. 우리가 원하는 게 있을 때 기어이 주저하고 말죠. 난 작품에서 그러한 머뭇거림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자 해요. 머뭇거림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과는 달라요. 주저한다는 건 소망을 물리치려는 시도예요. 하지만 여러분이 그 소망을 붙들어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면, 그땐 속삭여 말해도 관객이 반드시 여러분 말을 듣게 돼 있어요.”

p.19 본문 중에서

이 대목에서 한참을 숨을 죽였다. 우리에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머뭇거림이 있었을까?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된 이후의 삶까지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깊고 시린 겨울밤, 죽음을 향한 여행지에서 길을 잃고 외딴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 집에서 만난 여성이 푹신한 담요를 내어 준다. 어찌 보면 아이 같고 어찌 보면 백발 노파 같은 여성이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낡은 벽난로 앞에서 입을 꾹 다문 채 죽음의 방식을 생각하고 있는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는 그녀, 그녀는 이 작고 파란 책의 저자 '데버라 리비'였다. 이렇게 꿈을 꾸듯 몽환적으로 읽게 된 책.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마다 우는 그녀가 자꾸만 같은 말을 던진다.

"소리내어 크게 말하라"

언제부터였을까?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인식하게 되며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던 때가. 그렇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비로소 타인의 삶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토록 아팠던 것만큼 오래도록 짓눌려 살았던 가부장제에서 해방되는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물론 때때로 오랜 시간 나를 지배해 온 가부장제의 검은 그림자가 삶을 흔들곤 하지만, 이젠 머뭇거리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는 법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을 그대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궁금해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데버라 리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시린 겨울을 데워 줄 그녀의 목소리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게 할 것이며 이야기 곳곳에 인용된 빛나는 문장들이 머뭇거리는 그대들에게 분명 위로가 될 터이니.

여전히 주저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여성들이(소수자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속삭여 말해도 반드시 들을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며. . .

#알고싶지않은것들 #데버라리비지음 
#플레이타임 #처음만나는출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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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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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사람은 많이 가지거나 많이 배울수록 자기 성찰은커녕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오만을 부린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소위 지식인이나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내제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나의 열등감도 한몫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만의 견고한 지식의 성에서 벽을 높게 세운 채로 보통의 사람들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소수자들과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지식은 종이 쪼가리보다 못 하다는 건 변함없는 생각이다. 


'무리 짓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 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읽던 책을 미루고 읽기 시작한 책. 출판인이자 작가인 박지원이 묻고 칠십 평생을 고독한 독서인으로 살아 온 박홍규가 답을 하고 그 답을 다시 명쾌하게 박지원이 정리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가는 형식이 꽤나 흥미로웠다. 

나도 따라 내내 읽다가 은빛 머리카락 흩날리며 늙는 상상을 하면서 책을 덮을 때까지 몇 날 며칠 숨을 죽이며 가만가만 조용히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방향성을 잃지 않은 질문과 사려 깊은 답 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독서를 통한 )지식이 자기만의 틀에 갇힌 것이 아니어서 놀라웠다. 


더욱 나를 들뜨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세우지 않고 글과 말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 고독한 독서가이지만 세상의 부조리함과 불의를 모른 척 하지 않으며 가장 열악한 곳에 있는 소수자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참혹한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닮고 싶은 든든한 어른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외롭고 쓸쓸한 그대들이여,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를 얻고 싶다면 내내 읽다가 늙어버린 고독한 독서인 박홍규를 만나보시라. 책을 통해 지혜를 건지는 건 오롯이 그대들의 몫이지만, 긴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머니가 땅속 깊이 묻어 둔 김장독처럼 따스하고 든든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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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박민정 후기 / 플레이타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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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늦겨울 어느날엔가 만났던 ‘데버라 리비‘를 다시 만나며 2019년을 떠나 보내려 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을 알게 되어 버린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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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예술 -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 아르테 S 1
강성은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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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다시 느리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나와는 결이 다른 책들을 힘겨이 읽다 지치면 손을 뻗어 이 책을 연다. 네 명의 여성 시인의 뮤즈가 된 그녀들을 만나며 부박했던 나의 삶을 떠올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만, 슬픔은 더 큰 슬픔을 부어야만 사라진다고 했던가.

시인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조차 무색한 오늘,
그럼에도 여성인 그녀들이 사모하는 그녀들을 만나는 일은 황홀한 만큼 아프고, 눈물겹게 시리도록 아름답다. 

아고라 크리스토프, 엘리너 파전, 마릴린 먼로, 버지니아 울프, 이사도라 덩컨, 마리 로랑생, 김혜순, 마돈나, 이연주 . . .익숙한 이름들과 낯선 이름의 그녀들을 잊지 말아야지.

우린 이렇게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각자의 슬픔에서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여성이라는예술 #강성은박연준백은선이영주지음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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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박홍규.박지원 지음 / 사이드웨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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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참 반갑고, 더군다나 삶과 글이 일치되는 지식인을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몹시 궁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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