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의 수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2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토예프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 이 글은 1부(지하의 세계)와 2부(진눈깨비의 연상에서)로 나뉘어져 있고 1부에는 주인공의 독백형식의 일기체 문장으로, 2부에는 이 주인공이 지하 생활을 하게된 일련의 사건들과 단상들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읽고 놀란 점은 독백체의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주인공의 심정이 잘 표현되고 이해되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관념적인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쓰는 사람이 중도에 지쳐버리거나 다 썼다할지라도 읽는 사람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빠져드는 느낌을 주었다.

사회부적응자 이면서 스스로 주위의 누구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 그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운 의욕을 중시여기며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일반인을 바보로 규정짓는다. 그러면서도 항상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안달이지만 그의 성격상 남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글 안에서 자신이 타인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을 사회 전체에 대한 조소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자는 허풍을 떨거나 남들을 비웃는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듯 하다.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과내 동아리에서 내 별명은 '해방이후 가장 건방진 새내기'였다. 합평회에서 선배들이 다른 선배의 글을 칭찬할 때면 난 '왜 선배들이 xx선배의 글을 칭찬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말로 시작해서 나의 건방짐을 끝도 없이 발설했었다. 그 당시 난 내가 글을 아주 잘(?) 쓰는 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선배들이 내 글에 대해 야단칠 때도 속으론 '아~ 내 글을 이해 못하는 구나.'하며 혼자 시니컬한 웃음을 짓곤 했다. 장그르니에가 그의 저서 <섬>에서 말한 시니컬하다고해서 총명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 글을 통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책읽기로 인해 사람의 의식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보다 매력적인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들 세계사 시인선 107
송재학 지음 / 세계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가슴속에 자신이 만든 덩어리를 안고있다. 어떤 이는 마음속에 절(寺)을 짓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커다란 바위를 만들기도 한다. 그 흔적들은 살면서 부대낀 세계와의 마찰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생기기도 한다. 송재학시집 <기억들>에서 보이는 황무지의 이미지 또한 이러한 이력들이 만들어낸 무늬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있기 위해 필요한 몽리면적을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사막은 자꾸 넓어져야 한다/ 선인장의 뾰족한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앎은/ 각주가 많은 흉터이다
-<황무지로의 접근> 中에서

이 구절에서 우리는 세계의 문법을 체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험한 싸움인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바라는 자신의 황무지는 단순히 황폐함이나 방임을 뜻하지 않는다. 바람만 손님인양 들리는 그곳에는 생명이 있다. 중국대륙의 젖줄인 황하와 장강의 발원지 또한 황무지인 것이다. 시인은 황무지가 가진 이러한 속성을 찬양하며 이런 말을 한다.

제 안에 놀라움을 숨기려면 무엇보다 몇천년은 자신을 비워야 하지 않을까 바람만 찾아와서 머무는 곳, 귀기울이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의미없는 아지랑이 같은 고요, 손바닥을 슬쩍 허공에 부딪쳐보는 고요의 간이역을 황무지라 부르겠다
-<황무지란 바람을 숨긴 이름이기도 하다> 中에서

자신을 비워야 큰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논리. 시인은 세기의 음담패설과 제 속의 불신 증오들을 비우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선을 속내로 돌려 '내 안쪽의 수용소 같은 어둠'을 지켜본 후 '나에 속한 죄를 끄집어내어 바다에 행구어' 보기도 하고 '내 안으로부터 그 소리의 덩어리를 제발 밖으로 끄집어내 달라고 애원'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덩어리들이 터져 나올 때 그는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오는 그 무서운 것들에 당황하며 성급히 그것들을 수습하려한다.

나는 지금 많은 피를 흘렸다 나를 꿰매다오 창자가 터지고 복수가 흘러나온다 더 무서운 것들이 나오면 어쩌나 나를 닫아다오 알 수 없는 익명의 육체가 꾸역꾸역 나오면 다시 뱃속에 집어넣을까 나를 꿰매다오 먹는 것과 뱉어내는 것은 삶의 반대쪽이라는데 작은 창자는 어둡고 긴 터널이라는데 텅빈 뱃속에 다시 무엇이 채워지려나 그 속을 보지마라 어서 입구를 꿰매다오…중략…이것은 악몽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집어삼킨 자루를 묶는 방법이다
-<자루를 묶는 방법> 中에서

그는 성급히 자루를 묶었다. 구토에 가까운 감정표출로 낭패를 본 그는 그 덩어리들을 분출하기 위해 더 적확한 방법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닿은 곳이 제주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바람의 갈퀴로 제 안의 응어리들을 긁어내는데 성공한다.

바람이 가진 갈퀴 손가락도 아름답다고 말해주고싶다 제주 산록에서 온몸을 드러내면 그렇다 발서슴하는 바람은 연달아 터지는 폭죽의 뇌관을 내 몸에 장치한다 두려운 것은 문득 바람의 힘이 폭풍주의보를 빌려 한꺼번에 몸의 중심을 뻥 뚫고 지나간다는 느낌, 내 몸은 이제 출구와 입구가 생겨 이것저것 꺼내고 집어넣을 수 있다 자세히 보니 십이지장 아래쪽 구릉이 가렵더니 이미 구름체꽃 군락이 터를 잡으면서 점점 넓어진다
-<風化-제주시편> 전문

시인에겐 이제 바람이 훑고 지난 자리마다 '텅빈 허공이 생겨서 좀씀바귀마다 꽃이 피게' 할 수 있으며 '내 입김 안에 빈터가 있으니 어서 기둥부터 세워라'며 호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나의 왕오천축국전>이란 시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황무지가 수십 수백년 지나도 싹을 틔우는 보리수 염주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사도라 덩컨의 무용에세이 범우문고 144
이사도라 덩컨 지음 / 범우사 / 198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사도라 덩컨, 그녀에게 있어 예술의 원천은 자연이다. 따라서 무용은 자연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찾아 이들 형태의 혼을 표현하는 동작을 발견해야 하는 것인 동시에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을 뜻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속에서 춤춘다고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용 의상을 벗어 던진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자연의 조화된 흐름 속에서 충분히 용해된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가는 누구보다도 살아 있는 것의 힘, 건강, 고귀함, 구속 없는 한가함, 정적을 표현하는 동작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이 자연스런 춤이 모든 것을 되는대로 내맡긴다는 뜻은 아니다. 무용가의 춤이 자연에 거슬리지 않는 다는 것. 즉, 자연이라는 커다란 원천 속에서조차 생소한 구상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그녀처럼 자기 세계관이 뚜렷한 예술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의 혁명적이고도 자유스러운 사상에 비하면 내 사유는 협소하다 못해 옹졸하다. 우리과에서 자신의 이름에 양친의 성을 함께 쓰는 여학우들이(예> 김문**, 박권**) 속속 생겨나는 것도 아마 그녀처럼 여성의 몸과 정신에대한 혁명적 사상을 가진 선각자들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녀의 무용론은 단순히 무용 그 자체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써야할 시에 대한 시론이며 더 나아가 예술론이다.

「이상적인 춤」이란 단원에서 그녀는 작곡가의 세 부류를 들고 있다.
첫째는 학문적 음악을 고안해 내는 사람들로서 지성을 통해 감각에 호소하는, 교묘하고도 미묘하고 효과적인 음악을 탐구하고 편곡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자기의 감성을 소리라는 매체로 바꾸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는 사람들로, 음악을 창조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을 직접 청중의 마음에 호소하고, 그 음악이 환기하는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에 청중의 감정을 사로잡는 부류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잠재 의식적으로 그들의 혼이 어떤 다른 세계의 멜로디를 듣고 있는 사람들로 덩컨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음악가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좀 거칠게 말하자면 잔머리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경우인데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을 쓰다보면 내 감정에 도취되어 간혹 자신도 모르게 신파를 넘어 청승에 가까운 작품이 나올 때도 많다. 나는 언제쯤 그녀의 말처럼 이 자연의 소리, 우주의 소리를 연주하는 훌륭한 악기가 될 수 있을까. 사뭇 진지한 고민을 해본다.

무용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훌륭한 방법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