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배경은 근미래입니다. 

이전에도 흡입 낙태시 공기색전증으로 인한 사망사례가 얼마나 있었는가 알아보기 위해서 또다시 경찰서를 찾아갔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후배에게 더 이상 묻는 것은 실례였다.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동료에게 물어 봤다가 그 사실이 그에게 들어가는 것은 더 실례였다. 그냥 담당형사였던 그에게 물었다.

“논리가 뜀박질을 한 게로군요.” 
 

그러면서 그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읊조렸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수사할 경험 있는 인력이 부족한 판에 자살케이스를 가지고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길거리에 변사체가 누워 있어도 시신 수습하기 바쁜 것이 현실입니다. “

전화 벨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가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전화를 받았다.
“응, 바쁘다. 이따가 전화해. 경찰부 장관님께 보고중이야, 끊어.” 전화를 끊고 그는 잠시 숨을 내쉬었다.

 

“근데 하시는 일은 있는 겁니까? 밥벌이 말이에요.”

“없다.”

그는 낙태 얘기를 하려면 2층으로 올라가서 맨 오른쪽 사무실의 넙치를 찾으라고 알려 줬다. 계단을 올라가 사무실 문을 열고 넙치를 찾는데 한 사람이 이쪽을 쳐다보며 수화기에다 말을 했다. 

  

“그래, 지금 왔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는 자기가 넙치라고 했다.
난 과거의 사건들 중에서 흡입낙태의 경우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흡입낙태시라기보다 사인이 공기색전증인 경우 자체가 드뭅니다. 아니, 들어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지금 병원에서 공기색전증으로 인한 사망의 경우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건수는 한 건 있는데,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자전거 타이어용 펌프로 낙태를 시도하다 아내는 즉사, 남편은 아내가 죽은 직후 목을 매고 자살한 경우죠. 불법시술업자가 개입한 것은 아니었고. 물론 이것이 전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불법낙태는 드러나는 일이 드물거든요. 불법낙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더라도 병원에 가질 않습니다. 낙태 받은 자들도 처벌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실태를 파악하기란 힘듭니다. 어느 정도 수치가 있어야 데이터가 만들어지는데 역시 힘듭니다. 관내도 파악이 안 되는데 도시 전역은 파악이 불가능하죠. “

 

그에게서 들은 전형적인 불법 낙태시술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었다. 낙태 시술 후 비위생적인 도구나 자궁에 부주의로 아직 남아 있는 태아의 일부나 임신산물로 인해 감염이 일어난다.  

그 다음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남에 따라 병세는 악화되어, 결국 환자 본인이 자기가 죽을 것을 느끼게 되거나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죽기 전에 여인은 불법 시술을 받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후회스런 한탄을 하거나,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것 같으니 남아 있는 아이들을 잘 키워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한다.

 

남편은 불법 낙태에 대한 신고 때문에 병원에 데려갈 수 없어서 민간요법 등에 의지한다. 낙태업자에게선 치료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아내가 죽은 후 낙태업자를 찾아간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보상비를 받고 입을 닫는 것이다.  

경찰에겐 낙태 계획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외견상’ 아내 혼자 저지른 일이 된다.

 

그가 덧붙였다.

“과망간산칼륨 같은 근거 없는 헛소문에 의지하는 낙태법은 더 비참하죠.
여자들이 과망간산칼륨을 그곳에 집어넣고 사고가 터져도 병원에 갈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잡혀 갈까 봐.  

현명한 여자들은 병원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몇 번 봤는데 몸이 고통 때문에 거의 반으로 접히더군요. 과망간산칼륨은 궤양과 출혈을 일으키지 낙태를 일으키진 않거든요.  

이런 상황들은 무언가 정책에 문제가 있으니까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생각에 과망간산칼륨이나 총알낙태같이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의지하는 것은 그들이 무식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바로 그들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절망적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잠시 있다가 그가 다시 한 마디 했다.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임기구를 다시 생산하던가......”

내 입장은...생각해본 적이 없다.  

“휴우, 난 정치적인 것들은 잘 모른다.”

 

그가 자료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한 건 있네요. 담당형사는 이름이 돼지님과 같은데 동일인물인지 모르겠네요. 부검기록은 없고, 사인은 공기색전이지만 어떤 낙태수단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진공청소기와 비슷한 소음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그가 말했다.
“그런 소음이 들렸다면 수동식 주사기가 아닌 전기식 펌프를 사용한 것일 테죠. 수동식은 소음이 없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만약 희생자가 시술업자에게 찾아가서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했다면, 그의 위치를 대충 가늠하기란 쉽습니다.  

공기색전증이라면 희생자는 몇 발자국 걷질 못하고 죽게 됩니다. 죽음이 설사 지연되더라도 희생자는 대부분의 운동능력을 상실한 상태일 것이며 역시 몇 발자국 걷지 못할 것입니다.  

낙태업자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희생자가 계속 발생하다 보면, 다른 말로 계속 시체를 유기하다 보면, 시체가 발견되는 장소들은 결국 그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좁은 원을 그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거나.

하지만 시술업자가 자동차에 기구를 싣고 다니면서 기동력을 발휘한다면 장소를 짐작하기란 불가능해지죠. 지역구분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니까요. 같은 경기북도나 경기남도, 충청권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시술을 할 테니까. “  

한숨이 나왔다.
‘맞다. 그 놈은 자동차에 기구를 싣고 다닌다. 그러니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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