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와 보니 예숙이가 여전히 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먹자고 했다.

 

“그럼 구멍가게까지 나도 가야 하는가?”

내가 물었다.

그녀가 웃으며 당연히 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나오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역시 동네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들이 우리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을 보면 또 뭐라고 생각할까?’

예숙이는 그녀의 직업 때문에, 나는 아내가 자살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동네에서 거동이 썩 자유롭진 못했다. 게다가 우리가 함께 가면 시너지 효과마저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구멍가게 주인의 따가운 시선을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몰랐지만 그녀는 태연히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왔다. 
 

그녀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불쑥 말을 꺼냈다.
“군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었나 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군인이 찾아왔었는데 깍듯이 경례를 하더라고 들었거든요.”

“아니, 높은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받은 훈장 때문이었어.”

“군인이었어요?”

“몇 년 동안. 경찰이었다가 군인으로, 다시 군인이었다가 경찰로 신분이 바뀌었지. 그 다음은 교도소에서 3년 있었고. 훈장은 교도소 갈 때 박탈되었어.”

“그래도 훈장을 받은 적이 있다면 훌륭한 일을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어느 대도시에서의 전투 중에 행한 행동 때문이었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으니까 네 말대로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 도시에서의 일들은 깨끗이  잊고 싶다.”

거대한 콘크리트 언덕이 고지였고 부서진 콘크리트와 시신들의 뒤범벅 속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길거리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광경도 보았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지금 드는 생각은 그 도시가 그렇게 많은 인육을 제물로 바칠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동네에서 가장 높은(높다고 해도 사실 언덕 수준이지만) 곳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언덕에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동네를 훑고 언덕까지 올라왔다.

“우린 골목골목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느 전봇대 옆에서 누가 누구와 입을 맞추었는지 알고 있다.”

바람이 내 귓가를 스치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불쑥 말하기를 자기에게 반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두세 명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한때 바에서 일했었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런 말을 갑자기 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그러냐며 놀라는 척 했다.

집으로 돌아와 부케에서 사탕 몇 개를 더 뽑았다. 꼭 살아있는 닭의 깃털을 뽑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부케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오늘 저녁은 아이스크림과 사탕 몇 알로 때울 작정이다.

 ‘죽은 후라도 남편 노릇을 하고 싶다.’ 내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무슨 권세로 죽은 아내에게 남편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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