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위계급을 단 50은 되어 보이는 군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앞을 지나쳐 가려는데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맞는지 확인했다.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군인이 나를 만날 일이 없었기에 당황했다. 그는 내게 경례를 했다. “무공훈장을 타셨지요? 세 명의 목숨을 구한 일로...... 존경합니다.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부인의 일로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그의 말은 미리 몇 번 준비해온 것 같았다.

“제가 온 이유는 고인께서 가지고 계시던 탄환 다섯 발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에게도 말했지만 그건 내 소지품도 아니었고 나에게서 나온 물건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궁금합니다.  

탄환의 출처보다도 왜 아내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럼 암시장에서 구입했을 수 있겠네요.”

“암시장에서 왜 그런 물건을 구입했는지 모르겠군요.”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이라니요?”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아시다시피 낙태는 불법이기 때문에 종종 낙태제로 총알의 화약을 더운 물에 타서 마시는 형태로 쓰입니다. 이것을 총알낙태라고들 부릅니다만...잘못된 믿음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민간요법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겁니다.”

 

“낙태 말고 다른 질환이나 부상의 치료제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는 없습니까?”

“내가 알기론 낙태제로 쓰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가 내게 이야기를 하기 전 잠시 망설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사실을 아는 이상 내 부인이 낙태를 시도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거북했을 것이다.

낙태같이 불법행위가 아니라도 전쟁이 끝나자 병원과 약품이 부족하여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낙태 효과는 전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다시 물어보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글쎄, 머리는 엄청 아플 겁니다. 군용 자동소총탄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이 소량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이 머리의 혈관을 팽창시켜서 엄청난 두통과 혈압하강 등의 중독증상이 생기겠지만 효과는 전혀 없지요.”

“니트로글리세린에도 치사량이 있습니까?”

“있지만 치사량에 요구되는 니트로글리세린의 양이 워낙 많습니다. 탄환 다섯 발 정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죠.”

 

‘아내의 친구들 중에 ‘총알낙태’의 효력을 믿는 여자가 있어서 친구의 부탁으로 구해다 주려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주인의 이야기 때문에 발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친구’가 아닌 ‘아내 자신’으로 말이다. 

과연 아내가 임신한 상태였는가? 그리하여 28일에 불법낙태시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가? 의문이었다.

아내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구였는지 류氏 부인에게 물어볼 작정으로 저녁때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이미 집에 돌아와 방안에 아이들과 같이 있었고, 아이들을 야단치고 나서 신세한탄을 하던 중이었다.
문을 두드린 후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미장원 박 양.

미장원 위치를 물어본 후에 그 곳 앞에서 안을 관찰하며 서성거렸다. 의자가 세 개 놓여 있었고 바닥엔 장판이 깔려 있는, 전형적인 마을 미장원이었다.

일단 미장원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으러 왔다고 말했다. 박 양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내 말을 되풀이했다.

“박 양? 여긴 나 말고 딴 사람은 없는데. 그런데 박 양이라고 누가 그랬어요? 혹시 박씨라고 듣지 않았구요?”

난 그랬던 것도 같다고 말했다.

“내가 박씨인데, 여기 처음 오신 분 같은데.”

머리를 감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깎기 전에 머리를 한 번 감아야만 했다. 대걸레 빨 때 나오는 시커먼 물이 한참 동안 나왔다.

박씨에게 말했다.
“죽은 아내의 남편입니다.”

아주머니가 잠시 가위질을 멈추었다.

“죽기 전에 아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과 모든 생각들을 알길 원해서 왔습니다.”

아주머니가 다시 가위질을 하며 말했다.
“난 말하기 곤란해요. 내가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아내가 임신한 상태였습니까?”
그녀의 가위가 내 귀를 쪼았다.

“나도 잘 몰라요. 알아서 뭘 하게요? 이미 끝난 일인데 안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나요? 속만 상하지.”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내 비록 살아있을 때 남편 노릇을 못했지만 죽은 후라도 남편 노릇을 하고 싶어서요.”

그녀가 거울 속의 내 얼굴을 5초 쯤 쳐다보았다.

“아저씨 상태를 보니 남편 노릇 하기 전에 뭐 좀 먹어야 하겠네.  

곧 쓰러질 사람으로 보이는데.”

 

“아내가 낙태시술을 받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겐 알 권리가 있어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끈질기시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받으려고 했어요.”

 

“병원에서?”

“합법적인 낙태시술은 받을 자격이 안 돼서 불법낙태시술을 추진했죠.”

“그래서 결국 받았습니까?”

“29일에 받을 예정이었지만 31일로 연기되었어요. 막상 받았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31일 오후에 표정이 밝았던 것으로 봐서 이변이 없는 한 그날 밤에 받았을 거예요. 29일에 연기됐을 때는 얼마나 실망스런 표정이던지...”

“몇 월 달 말인가요?”

“4월요.”

“임신 중이었던 건 확실하네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누군지 압니까?”

“그건 몰라요. 당신 아내는 처음에 당신처럼 이 자리에 앉아서 고민거리를 이야기했었죠.”

“멋지네. 멋져.”

난 그냥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게 된 내가 자기 가게에서 난동이라도 부릴까 봐 걱정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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