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사러 동네로 나갔다.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들은 항상 내 등 뒤로 몇 미터씩 떨어진 채 모여서 서로 수군거렸다.
그들을 등 뒤로 한 채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남편 되시는군요?” 하고 가게 주인이 물었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이럴 땐 '돌아가신 분의 남편 분 되시는군요?'라든가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요?'라고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자는 그냥 “남편 되시는군요?”라고 말한 것이다.  

누구의 남편을 말하는 건지 말 안 해도 다 통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잘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거요?”

“그냥 인사나 하려고요. 별 뜻 없었어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쌀 사는 걸 포기하고 화를 내고 나와 버렸다.

‘나와 인사를 나눈 후 내가 가면 또 모여서 안색이 어떻더라 하고 말들을 나누겠지.’하고 생각을 하니 화가 났다.

무엇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상하는 걸까? 마을 사람들의 어떤 시선이 날 불편하게 하는가?
그들의 시선은 자살한 아내의 남편을 보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측은한 시선, 또는 자살의 책임이 내게 있다는 듯한 눈길이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기구한 팔자에 놓인 사람을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딱하게 보는 시선이다. 또는 동네 바보를 딱하게 보는 시선이다. 이 시선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자살한 아내의 남편을 무엇 때문에 동네 바보처럼 바라볼까?

 

옆 방 아가씨와 정식으로 인사했다. 괜히 기분이 으스스했는데 다행히 그 방에 내가 들어와서 기분이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장마철이 시작되면 손님이 뚝 끊길 테니 한 번 놀러 오라고 그녀가 덧붙였다.  

  

이틀 후에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난, 부은 얼굴의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내가 남편인 줄 몰랐다며 사과했는데 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음날 저녁에 나는 퇴근해 들어오는 류와 마주쳤다. 류氏가 자기 아내에게서 들었다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보고 고인이 생전에 뭔가 이상했던 점을 찾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고인의 죽음에 이상한 점이 있느냐고 또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던 날의 전날, 밤중에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류氏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었을 때는 쉬는 날이었으며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자다가 깨어났고, 몇 분간 들렸는지, 중간에 끊겼다가 다시 소리가 났는지 등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잠결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는 대문 앞까지 차가 들어왔었다고도 했다.

월세방 세 개가 붙어 있는 이 집은 문턱이 제법 높아서 문턱 앞에 벽돌 하나를 세입자 중 누군가 갖다 놓았다. 그 벽돌은 오래 전부터 발판 역할을 하며 거기 있었다.

자동차가 이 좁은 골목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누군가가 발판으로 쓰이던 벽돌을 대문 앞에서 치워 버렸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 발목을 심하게 다쳤으며, 그래서 그날 밤 자동차가 왔다 간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보시다시피 골목길은 자동차 한 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데 도중에 삐죽 나온 벽돌이 있으면 한 쪽 바퀴가 벽돌을 타게 되지요. 그래서 이 골목으로 차가 지나갈 때면 -무척 드문 일이지만- 운전자가 벽돌을 치워 놓아요.”

 

한밤중의 소음에 대해선 처음엔 옆 방 아가씨에게 따지려 했는데 아가씨가 새벽에서야 집에 들어오더란다. 그래서 내 아내에게 따지려 벼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덧붙였다.  

 

“내 생각에 말입니다. 자살을 하려는 마당에 방 청소할 생각이 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게 이상한 점이지요.”

나는 말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난 실망했다. 오히려 한 밤중에 방청소를 했다는 그 비상식적인 행동 때문에 아내가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 근거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주변을 청소한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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