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에 관장을 하지 않으면 규칙적인 배변은 불가능하다. 아내의 죽음 이후로는 항상 배변이 불규칙적이다. 아무 때나 대변이 인공항문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관장은...... 역시 불가능하다.
교도소에선 이틀에 한 번씩 관장할 때 교도행정인원들이 쓰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월세방의 공동화장실은 수세식이지만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아주 좁은 곳이어서 도저히 관장이 불가능하다.
결국 이런 곳을 벗어나기 전까진, 예전에 아내와 같이 살던 때처럼 하루 종일 배변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한다. 배변주머니. 말 그대로 변을 저장하는 주머니이다.

내 경우에 배변 주머니는 부착식을 착용한다.
비닐로 된 배변 주머니 위쪽엔 접착판이 있어 인공항문 주변피부에 붙일 수 있으며 아래쪽은 밀폐식 구조로 되어 있어 나오는 대변을 모아둘 수 있다.
배변 주머니가 차면 밑을 열어 비우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수명이 다 된 배변 주머니를 교체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약간 복잡한 과정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변비가 심하고 식사량도 적어 2 - 3일에 한 번씩 배변을 한다. 
 

접착판 아래의, 인공항문 주변의 피부가 간지러울 때는 배변 주머니를 떼어내고 긁고 싶은 충동을 참고 손톱으로 꾹꾹 누른다.

 

배변 주머니를 비워 버리는 일엔 월세방의 공동화장실이 나쁜 장소가 아니다. 그 외에 공공장소의 수세식 좌변기에서는 변기 위에 거꾸로 걸터앉아(조준을 정확히 하기 위해) 배변 주머니를 비운다. 배변 주머니가 1/3이 차면 비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너무 변이 많이 차면 배변 주머니의 접합선이 뜯어지는 대재앙(!)이 올 수도 있다.

 

껌을 씹는다든지 입을 벌리고 음식물을 씹는다든지, 음료수를 마실 때 빨대를 사용하는 일 등은 하지 않는다. 가스가 차는 걸 줄이기 위해서. 왜냐하면 나의 인공항문엔 괄약근이 없기 때문에 방귀를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공항문에서 나온 가스는 배변 주머니를 부풀게 한다.

 

언제 대변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주머니가 무거워지거나 따뜻해지면 그것으로 알게 된다.
수액을 투여할 때 쓰이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관장용 도구와, 배변 주머니를 차지 않고 있을 때 대신 배에 난 구멍에 씌우는 인공항문 덮개를 다시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나만의 화장실이 있는 전세로 옮기는 날, 관장을 위해 다시 쓰이게 될 것들이다. 
 

저녁이 되었다.
문 앞에 묶여 있는 노루에게 다가가니 꼬리를 친다.
“이 녀석, 날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구나.” 

 쓰다듬어 주니 털이 한 움큼씩 빠진다.  

 

나는 류 씨 아내가 일을 끝내고 오기를 기다렸다.
집사람은 나와 함께 살 때 류 씨 아내와 친했다. 그랬기 때문에 죽기 전에 그녀가 뭔가 이야기했거나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물어 볼 작정이었다.  

류 씨 아내가 돌아오고 나서 잠시 후 아이들을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절반은 혼내는 소리였고 나머지 절반은 신세한탄이었다. 그래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한 시간 후에 나는 문을 두드리며 물어 볼 말이 있다고 말했고 그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들이 방에서 내다보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과자 값으로 천만 원씩 주었다. 눈치 빠른 그녀가 애들보고 나가서 놀다가 한 시간 내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삶에 찌든, 야윈 얼굴의 그녀가 조심스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죽기 전에 뭔가 나눈 이야기가 없었는지 정중히 물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죽기 엿새 전인 4월 26일에, 빨리 29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아내가 말했단다. 그러나 막상 29일이 되자, 빨리 31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것이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단다. 아내가 그 날짜들을 하도 반복적으로 말해서, 그리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는 것을 안절부절 못하며 세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정확하게 날짜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5월 1일 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가 29일에 중요한 뭔가를 하기로 날이 잡혀 있었는데 그 일이 31일로 연기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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