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살던 옛 동네로 다시 왔다. 다시 아내가 살던 그 방에 월세를 얻었다. 살림살이랄 것도 없고, 곰인형과 사탕부케만 달랑 가지고.
집주인을 만났다. 예전 그대로였다. 동기들이 모아준 돈으로 석  달치 월세를 미리 지불했다.

나는 집주인의, 이제는 고인이 된 아내에 대한 곱지 않은, 원망에 찬 시선에 당황했다.
“이런 말 하는 게 고인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허위신고만 하지 않았어도 좋은 기억만 있었을 텐데......”
집주인의 말로는 아내가 경찰에 강간 신고를 했었다고 한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아내가 강간을 당했었다는 건가요? 여기서?”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런 적이 없는데 허위 신고를 했으니 내가 원망하는 것 아니우?  

석 달 전에 강간을 당했다면서 이제서 신고를 하면, 게다가 범인의 인상착의도 모르는 상태라면 뻔하지 않수?”

나는 무슨 말인지 의아해했다.
집주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아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어도 고인에 대해 남편에게 그렇게 불만을 드러내는 몰상식은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그 몰상식하고 막무가내인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하기야 집주인에게는 아내가 그 방에서 자살한 것(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이 재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 방은 첫째 방이었는데 원래 감옥에 가기 전에는 아내와 내가, 그리고 감옥에 간 후에는 아내 혼자 살던 방이다. 옆방엔 아가씨가 한 명 산다고 한다. 그 다음 방은 끝 방으로 가족이 살았는데 아내와 함께 살 때도 그 자리에 살던 이웃이다.
내 방의 가구도 그대로이다. 가구까지 딸린 방인데도 들어오는 사람이 이제까지 없었다. 누군가 여기서 죽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끝 방의 가장인 류 氏는 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공장 일을 다니며 그의 아내는 아직까지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일을 하며 일당벌이를 한다고 했다. 한 방에 부부와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큰 개를 키우고 있었으며 그 개의 이름은 내 기억으론 ‘노루’였다.  내가 경찰이었을 때 그들이 키우던 그 개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노루가 취사용 가스통(도시가스 시설은 도시 전체에 걸쳐 붕괴되고 없었다.)의 파이프를 물어뜯을까봐 걱정했던 아내가 생각났다.

밤중에 옆방에서 아가씨가 우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다. 얼핏 울면서 욕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 6시에 잠시 일어나 화장실에서 배변주머니를 비워버리고 나오는 길에 그녀와 마주쳤다.
새로 이사 온 아무개라고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녀는 부은 눈에 퀭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내 방 안에서도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저녁때 맨 끝 방 류 氏에게서 그녀가 룸살롱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는 소리를 들었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요즘은 피곤해서 밤에 곯아떨어지기 때문에 잘 못 듣는데 한 달 전까지는 그녀가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싸움도 몇 번 했는데 소용없지 않겠어요?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 집주인이 했던 말에 대해 물었다. 아내의 신고가 과연 허위인지, 아니면 진짜인데 무시당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진짜 벌어진 사건인데 무시당한 것일까 봐 속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몰상식한 집주인에게 저주를 퍼부은 다음, 안심하라고 말했다. 이 동네가 치안이 안 좋기는 하지만 만일 그런 불상사가 있으면 자기 가족들이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면 왜 아내가 그런 허위신고를 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거북한 표정으로,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대신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도, 저 동네에서도.”

이 말로 그는 대화를 끝맺었다.

방 안에 누운 채 사물들을 살펴보기를 벌써 한 시간째다.

방 안 유리창이 누렇다. ‘저건 아내의 짓이다.’ 아내는 유리에 타르가 끼어 누렇게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담배를 피워대곤 했다. 벽지마저 전체적으로 누렇다.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허위 강간 신고를 했을 때 아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가? 누군가를 무고하기 위해서였나? 그렇다면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을 리가 없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석 달 전의 강간을 나중에 신고하다니......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시간차이긴 하다. 멀리서 노루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