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조증일 때는 갑각류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다가도 우울할 때는 파충류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곤 했다. 조증일 때는 길거리의 모든 술집 간판들이 다 그녀의 흥미를 끌었고, 종업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내부 장식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든 술집에 다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길거리를 걷다가 계속 새로운 골목들이, 전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들이 나오는 것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자치구를 두세 개씩 지나 있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우울한 상태에선 내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지만 조증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나로부터 진저리를 치며 멀어져간다.’  

 

아내 자신은 조증과 울증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울함의 반대는 쾌활함이나 활기, 열정이겠지만 사실은 우울함의 반대는 분노와 폭력, 그리고 비천한 생동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는 우울함과 비천한 생동감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상태가 서로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는 그 중간 어느 지점엔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비천한 생동감과 고상한 우울함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때로는 개망나니가 되어도 짜릿짜릿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생동감이 더 좋다. ‘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녀가 조증일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진 그녀의 오빠의 마지막 전화번호를 포함하여 아는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해서 비슷하지도 않은 사투리 흉내를 내거나, 어떻게 해서든 농담을 해보려 애썼고, 상대방이 싸늘한 반응을 보이면 금세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변하여 상대방을 비난하고 전화를 끊어 버리곤 했다.
우울할 땐 아내는 자신의 표현대로 고상해 보였고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잠자는 숲 속의 백설 공주’같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강박증.

기본적으로 집에서 모든 확인은 아내 대신 내가 했다. 강박증이 심해졌을 때, 그리고 내가 밤에 집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아내는 두 시간씩 확인을 할 때도 있었다. 가스밸브를 제대로 잠갔는지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갔는지 냉장고 문을 닫았는지 이 세 가지를 확인하는 것에 두 시간씩 걸렸다.  

 

내가 생각한 강박증이란 처음엔 이러한 것이었다.
물이 흐르듯 강박적 사고도 그러하다. 처음엔 어느 곳으로도 흐를 수 있지만 점점 물길이 생기면 그곳으로만 흐르게 된다. 물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물의 양이 많아지고 유속도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처음의 생각은 곧 아내의 말을 들은 후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신체적인 문제라는 아내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부검시 보게 되는 시신의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가 주는 허무함 때문이다. 직업 때문에 이 시계태엽 같이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를 지속적으로 보게 된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에 영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한 구조물들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단지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기엔 인간의 신체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은가? 이 장기는 이런 역할을 하고 저 기관은 저런 역할을 하고, 다 따지다 보면 영혼이 할 일은 없어지고 만다.‘  

 

아내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몸에 니코틴도 들어왔다 나가고 알콜도 들어왔다 나가고, 항우울제들도, 기분 안정제들도 들어왔다 나가면서 내 기분과 판단을 좌지우지한다. 난 그냥 이런 물질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터미널 같은 것이다. 그 외에 영혼의 영역이라고 불릴 만한 활동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터미널과, 터미널로 들어온 물질들을 느끼는 신경다발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복잡한 생각을 그만두고 벽에 정성스레 아내의 이름을 썼다. ‘서 진수, 비천한 생동감과 고상한 우울함 사이에서 살다 잠들다.’

그리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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