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전쟁터에서 돌아와서 다시 경찰에 복귀한 후 한참 내 신체에 남겨진 후유증 때문에 좌절하고 있을 무렵, 술을 마실 때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마셔 댔고, 깨어났을 땐 오늘마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허무해 했다.
아내의 직업은 다방 레지였고 한참 좌절하고 있을 무렵, 사건을 수사하면서 만났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데 차 한 잔 사줄 수 있느냐며 그녀가 내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그것이 아내와의 첫 만남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끌 때에도 1분 정도가 걸렸으니 말이다. 재떨이에 물을 붓고 하도 비벼대서 재떨이 안을 꼭 묵사발로 만드는 것이었다. 담배를 피울 땐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담뱃재들을 일일이 눈으로 좇았고 담뱃재들이 테이블 위에 떨어지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양극성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늦게 그녀의 고백으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