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정확한 병명은 양극성 우울증과 강박신경증이다. 내가 아내를 지켜본 결과, 증상은 이러했다. 양극성 우울증이란 조 상태( 기분이 들뜬 상태 )와 우울한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기분이 들뜬 상태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행동은 과장되며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우울할 때는, 심할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생각과 말하는 속도마저 느려진다. 조증일 때는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불평을 해대지만 우울할 때엔 사소한 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이 없어지며 불평도 하지 않는다. 강박신경증이란 여러 가지를 쓸데없이 확인하는 병이며, 확인하지 않았을 때는 불안해진다. 아내의 병은 그 뿌리가 깊어 어릴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는 아주 옛날부터 시작된 자신의 비정상적인 버릇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렸을 때 유일하게 받았던, 외삼촌이 사다준 장난감은 탱크 모형이었는데, 여자아이에게 무기 장난감을 사다준 것을 엄마는 싫어했지만 (엄마는 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폭력도, 시끄러운 소리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탱크가 좌우대칭이 아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언뜻 탱크를 앞에서 보면 좌우가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좌우대칭이 아니다. 조종수의 해치, 지휘관의 해치, 기관총의 위치 등이 한 쪽으로 쏠려있는 것이다. 그 때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강박증이 시작된 때이다. 난 삼촌이 가고 나서 탱크를 쳐다보기도 싫었고, 결국 쓰레기통에 갖다버렸다. 좌우대칭이 아닌 것은 가지고 놀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었다.

더 커서 학교에 갈 때엔 오른 발의 보폭과 왼 발의 보폭을 똑같이 맞추려고 노력했다. 산책을 하더라도, 소풍을 가더라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항상 어느샌가 다시 오른 발, 왼 발의 보폭에 신경을 쓰고 몰두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머리에서 상상 속의 물레방아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레방아를 상상 속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여 멈춰 보려 하지만 좀체 그럴 수 없다. 강박증이란 게 그 물레방아 같은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생일선물조차 하지 않았다. 돈으로 바꿔서 술을 마셔 버리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녀가 가진 물건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도 없었다. 그 대신 과거에 그만큼의 술을 더 마셨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술은 나를 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무엇을 폐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부모가 죽은 후 그녀에게 남은 가족이란 오빠 한 명이 전부였다. 그 오빠에게 강박증이 심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확인해대곤 했다.

어느 날, 한 달에 한두 번씩 그러했듯이 그 날도 오빠네 집에 다녀온 후 몇 시간 만에 그 놈의 강박증이 고개를 치켜들었고 그녀는 불안해졌다.

오빠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데워 그녀에게 커피를 끓여 주었다. 그녀는 그녀 때문에 가스레인지를 오빠가 켰으니 가스 렌즈가 안전하게 꺼졌는지 또 밸브를 잘 잠갔는지 확인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 그녀의 오빠가 알아서 가스레인지를 껐을 테지만 그녀는 오빠의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 그것을 확인 - 아! 그 망할 놈의 확인! - 하지 못했다.

만약 가스레인지가 계속 켜진 채로 오빠가 모르고 있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불행한 결과의 책임은 그녀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빠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그는 물론 가스레인지가 잘 꺼져 있다고 대답했다.
그 후 30분도 안 되어 그녀는 가스레인지를 어떻게 끄는지 오빠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전화를 해 가스레인지의 사용법을 오빠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 후로도 네 번 더 전화를 했고 마지막 네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의 오빠는 ‘드디어’ 계속 통화중이었다.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그녀의 오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