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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으로 우울을 지나는 법 - 지긋지긋한 슬픔과 무기력, 우울에서 벗어나는 8주 마음챙김 명상
마크 윌리엄스 외 지음, 장지혜 외 옮김 / 마음친구 / 2020년 7월
평점 :
몇 년 전 우울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아 병원에 가서 한 달 정도 약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나서 10분 정도 면담을 하고 첫 진료에 약부터 처방을 받았다. 내 마음의 감기가 깊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상담이나 치료가 아닌 약물치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처음 병원을 방문한 나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약을 먹자 우울한 마음은 가라앉고 우울한 마음에 가려져 있던 의욕이 나타나 평소 일들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과 마찬가지로 다른 기쁜 감정들도 뭔가 둔화된 기분이었다. 의사는 꾸준히 진료를 받으라고는 했으나 증상도 나아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방문을 끊게 되었다.
당분간은 괜찮았지만 가끔씩 마음이 많이 무너지는 날에는 이 우울을 일으키는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약도 한때일 뿐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이 들었다. 평생을 우울한 감정과 잠깐씩 비치는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 속에서 치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너무나 암담했다.
그 와중에 읽은 이 책은 나에게 우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해 주었고, 어떻게 우울을 대면해 나가야 하는지 깊이 일깨워 줬다.
이 책은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40만 부를 판매한 베스트셀러를 번역한 책으로 심리학, 의학, 명상의 전문가들 4명이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표지는 하얀 배경에 파란 타원이 있고, 타원 안에는 일렁이는 파도 위에 떠다니는 주황색 배가 보인다. 마치 광활한 마음이란 하얀 공간 안에서 거울이 요동치는 감정의 바다에서 방황하는 나(배)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명상에 관련된 책인 만큼 책 표지의 양 날개에 QR코드와 함께 명상 안내 음성이 실려 있어 책을 읽고 스스로 명상 프로그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마음의 습관을 벗어나게 해주는 법을 알려준다. 우울 자체를 이겨내지 말고 받아들이고 그마저 인정하고 안아줄 때 오히려 더 깊은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구성하는 네 가지 핵심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알아차림을 키우는 핵심 기술로 마음챙김을 계발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런 명상을 부정적 사고와 느낌, 신체감각, 행동에 이어 온전한 삶 전체에 확장하여 적용하는 방법에 알려주고 8주간 직접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시해 준다.
우울증에 빠져본 사람이 기분이 처질 때마다 우울을 구성하는 느낌, 생각, 신체감각, 행동이 서로 더 강렬하게 연결되어 더 쉽게 처진다는 것이 너무나 새로웠다. 자주 오는 기분 변화에 할 일을 못하고 걱정에 빠져있던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일까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그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우리는 상황(A)과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C)는 보면서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석(B)은 잘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상황 '자체가' 감정과 신체반응을 일으킨다고 여기지만 사실 반응을 일으키는 직접 원인은 상황에 대한 해석이다.
같은 일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일어나는데 이를 감정의 A-B-C 모형이라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관적으로 감정, 신체감각,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 생각이 나의 감정을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신의 해석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 나는 이 부분에서 우울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마음챙김으로 우울을 낫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것이라고 한다. 명상을 하면서도 호전이 없다고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미리 명상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명상 자체에 의미를 두라고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힘든 일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고 사소한 일들의 긍정적인 면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챙김 수련을 한다고 해서 힘겨운 상황과 걱정, 기억과 사람이 마술처럼 수월해지거나 거기에 초연해지는 것은 아니다. 힘이 들더라도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리면 널따란 마음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이 공간은 현재의 힘든 경험보다 더 넓기 때문에 힘든 경험이 자기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마음 공간은 자기 존재의 온전한 스펙트럼을 깨닫고 실현하는 공간이다. 그러면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신뢰하게 된다. 지금 이대로 괜찮으며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삶이 지금과 달라야 한다며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삶에 감사한다. 순간순간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이로움을 알아보고 음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챙김의 위대한 모험이자, 살아있음의 위대한 모험이다.
마음챙김 프로그램(건포도 명상, 호흡 명상, 바디스캔, 요가, 걷기 명상, 즐겁고 불쾌하고 중립적인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혐오반응에 대한 마음챙김, 듣기 마음챙김, 생각과 감정에 대한 마음 챙김) 중에 아직 건포도 명상, 호흡명상, 바디스캔, 걷기 명상까지만 해 보지 않았지만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다 보니 내가 경험하는 것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바람이나 아이의 부드러운 살결, 맑은 웃음소리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는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영양제도 먹고 따뜻한 옷을 입고 수분을 자주 섭취한다. 몸으로 오는 질병에 대해서는 열심히 예방하기 위한 일들을 하지만 정작 마음의 감기인 우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마음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의 기분을 케어하여 우울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처방전이다.
읽기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지만 우울의 메커니즘과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관점을 알려준 것 같아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 책이 잦은 슬픔과 무기력, 우울이 찾아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삶의 한 면만 보지 않고 다채롭고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안경이 되어주길 바란다.
*위 포스팅은 도서만을 무상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고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