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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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미스터리의 절대 원칙을 깨트린 문제작. 열린 공간 속의 심리적 밀실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전작을 뛰어넘는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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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버지의 유산으로 남겨진 섬 에다우치지마. 리조트 개발을 위해 섬을 찾은 이들은 평화로운 시찰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마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부동산 회사 직원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며 섬은 순식간에 살인의 현장으로 뒤바뀐다.

현장에 남겨진 것은 범인의 기이한 메시지뿐. "사흘간 섬을 떠나지 말 것, 그리고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하지 말 것." 범인은 열 가지의 계율, 즉 ‘십계’를 제시하며 이를 어기지 않으면 모두를 살려 보내겠다고 제안한다.

범인은 분명 이 안에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가장 금기된 행위는 바로 추리다. 추리 소설의 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이 불길한 거래 앞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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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것이 기존의 ‘클로즈드 서클’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보통의 고립된 섬이라면 외부와의 통신이 두절되고 태풍이 불어 닥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곳은 스마트폰 감도가 양호하고 날씨마저 화창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음에도 인물들은 스스로를 섬에 가둔다. 그것은 물리적인 감옥이 아닌 ‘규칙’이 만든 심리적인 감옥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강제된 무기력’에 있다. 독자와 등장인물 모두 범인을 잡고 싶은 욕망을 거세당한다. 생존을 위해 의심을 거두고, 질문을 삼키며, 범인의 계율에 복종해가는 과정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는 인질들을 지켜보는 듯한 서늘함을 준다.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공포는 순응으로, 순응은 점차 공범 의식으로 변질된다. 보이지 않는 범인을 신처럼 떠받들며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잔혹한 사회 실험을 방불케 한다.

전작 <방주>만큼의 폭발적인 충격보다는, 책을 덮고 난 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그들의 침묵을 다시 심문하고 싶게 만드는 묵직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며 다음 성서 3부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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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은 된다. 날씨도 좋다. 그렇지만 여기서 나갈 수는 없다.” -p.120

닫힌 공간이 아니라 닫힌 선택. 이 짧은 문장은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장르의 정의를 뿌리째 흔드는 결정적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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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전반에 깔린 조용한 복선들이 결말의 반전과 만났을 때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는가?

🔦 우리는 자유로운 일상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규칙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 생존을 이유로 판단을 멈추고 침묵하는 순간, 그 도덕적 책임은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 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것은 범인인가, 아니면 공포에 굴복한 사람들 자신인가?

#십계 #유키하루오 #블루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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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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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가장 논리적이고도 비윤리적인 두뇌 싸움.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비틀어버린 설정이 탁월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밀려오는 허무와 전율은 가히 압도적이다. 클로즈드 서클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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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속에 감춰진 기괴한 지하 건축물 ‘방주’를 탐험하던 열 명의 남녀는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입구가 봉쇄되며 갇히고 만다. 그곳은 곧 수몰될 예정이다. 시간이 없다.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가 닻감개를 돌려 바위를 떨어뜨리고 방 안에 홀로 남는 것. 그리고 물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명이 죽어야 한다.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그야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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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고전적인 틀에 ‘시간 제한’과 ‘필연적 희생’이라는 장치를 더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수작이다. 고립된 저택이나 섬이라는 전형적인 배경을 지하 건축물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대체하고 생존을 위해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뒤틀린다. 희생은 선택처럼 말해지지만 실제로는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자의가 아니라 강요다. 살아남기 위한 합의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을 가리키는 손짓이 된다. 누구도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누군가를 지목할 뿐이다.

결말부에 이르면 독자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죽는 것이 정말로 정의인가. 혹은 그 선택 자체가 또 다른 살인인가. 유키 하루오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를 그 방주 안에 남겨둔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판단을 미루지 못하게 만들면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살인의 동기다. 범인이 밝혀지면 즉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범인은 왜 리스크를 감수하고 살인을 저질렀는가? 이 모순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파헤쳐가는 과정이 압권이다. 섣부른 지목은 무고한 희생을 낳기에, 추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결말부. 그곳에는 모든 논리를 전복시키는 경악할 만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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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중략)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이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 -p.230

다수의 생존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공리주의적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는 섬뜩한 대사다. ‘희생’은 자발적일 때 숭고한 것이지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타살이다.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가치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제물로 삼겠다는 합의 뒤에 숨은 다수의 폭력성. 자발적이지 않은 희생은 결국 또 다른 이름의 살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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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범을 희생양으로 삼아 탈출하려는 그들의 합의는 정의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살인인가?

🔦 범인을 지목하는 행위와 사형을 집행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다른가?

🔦 만약 당신이 범인을 찾지 못해 무고한 사람 중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겠는가?

🔦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생명 가치는 사회적 지위나 인간관계의 유무로 환산될 수 있는가?

#방주 #유키하루오 #블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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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바다 TURN 9
이수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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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의존해 파국을 외면하려는 인류에게 보내는 묵직한 경고장이자,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치열한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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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바다 TURN 9
이수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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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의존해 파국을 외면하려는 인류에게 보내는 묵직한 경고장이자,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치열한 추격전


🕵️ 2056년, 타클라마칸사막의 심장부. 다국적기업 SG는 사막 한가운데 지하 염수를 끌어올려 거대한 호수를 만들고 신종 해조류로 탄소를 흡수하겠다는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명분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여 기후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것. 세계가 이 혁신적인 기술에 환호할 때, 단 한 사람만이 반기를 든다.

SG가 키워낸 천재 해양생명공학자 아이서. 그녀는 이 프로젝트가 사막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인근 주민들을 수장시킬 ‘기만적인 쇼’라고 폭로하며 잠적한다. 이에 SG는 최고의 사이보그 용병 오하나에게 아이서를 찾아내라는 은밀한 지령을 내린다.

인류의 구원인가, 기업의 탐욕인가.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서, 탄소 중립이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 감춰진 검은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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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기후 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이보그 용병과 과학자의 추격전이라는 날렵한 장르적 문법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은 SF 영화를 보듯 생생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메시지는 묵직하고 서늘하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 우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탄소 포집 기술이 다 해결해 주겠지’라며 면죄부를 사려 하지 않는가. 소설은 기업의 탐욕스러운 ‘그린워싱(Greenwashing)’과 그에 기생하여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대중의 안일함을 정조준한다.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가 열리면 누군가는 무역의 호재라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이 모순적인 세상. 작가는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 속에서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정말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파국을 잠시 유예하는 마취제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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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옆 나라들은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를 못 미더워했고, 자기 땅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마침 위구르스탄 정부는 돈이 필요했고, 그러니 모두가 공범이었다. -p.76

어떤 거대한 악행도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혐오 시설은 떠넘기고 싶고 환경은 지키고 싶은 국가들의 이기심과 자본이 필요한 약소국의 절박함이 만나 끔찍한 ‘공범’ 관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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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이런 신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희망 아닐까요? (중략) 기술이라는 게 핑계를 제공하는 거죠. 이대로 살아도 신기술이 다 해결해줄 거야, 하면서요.” -p.145

우리는 기후 위기조차 상품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편을 감수하고 삶을 바꾸는 대신, 기술이라는 편안한 핑계 뒤에 숨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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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피가 흘러야 쳐다본다는 거예요. 희생이 있어야만 관심을 갖죠. 그것도 어지간해서는 안 돼요. 세상에 불공정한 일이 너무 많아서, 그것마저 경쟁해야 하거든요.” -p.239

비극마저 경쟁해야 하는 ‘관심 경제’ 시대의 잔혹한 자화상이다. 수많은 경고음이 울려도 우리는 자극적인 피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이 둔감함이야말로 기후 위기보다 더 무서운 재앙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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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부패 아닐까요? (중략) 전 뭔가에 실망했다고 바로 팽개쳐버리면, 그런 행동이야말로 그 길을 쓸모없게 만든다고 믿어요.” -p.18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자포자기가 가장 큰 적이다.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내딛는 작은 걸음들이 모여 결국은 방향을 튼다는 믿음,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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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지독한 무력감을 당신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 인류 구원이라는 거창한 명분 아래 특정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는 ‘환경 불평등’은 정당한가?

🔦 기업의 부패와 기술 발전은 분리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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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막의바다 #이수현 #한겨레출판 #서포턴즈 #턴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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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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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라는 괴물 앞에서 개인이 소거되는 과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SF 마니아들을 위한 듀나 월드의 가장 거칠고 강렬한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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