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가장 논리적이고도 비윤리적인 두뇌 싸움. 범인을 잡아야 하는 이유를 비틀어버린 설정이 탁월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밀려오는 허무와 전율은 가히 압도적이다. 클로즈드 서클의 걸작-🕵️ 깊은 산속에 감춰진 기괴한 지하 건축물 ‘방주’를 탐험하던 열 명의 남녀는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입구가 봉쇄되며 갇히고 만다. 그곳은 곧 수몰될 예정이다. 시간이 없다.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가 닻감개를 돌려 바위를 떨어뜨리고 방 안에 홀로 남는 것. 그리고 물이 차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명이 죽어야 한다.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그야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어야 한다._📜 이 작품은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고전적인 틀에 ‘시간 제한’과 ‘필연적 희생’이라는 장치를 더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수작이다. 고립된 저택이나 섬이라는 전형적인 배경을 지하 건축물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대체하고 생존을 위해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희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뒤틀린다. 희생은 선택처럼 말해지지만 실제로는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자의가 아니라 강요다. 살아남기 위한 합의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을 가리키는 손짓이 된다. 누구도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누군가를 지목할 뿐이다.결말부에 이르면 독자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죽는 것이 정말로 정의인가. 혹은 그 선택 자체가 또 다른 살인인가. 유키 하루오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를 그 방주 안에 남겨둔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판단을 미루지 못하게 만들면서.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살인의 동기다. 범인이 밝혀지면 즉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범인은 왜 리스크를 감수하고 살인을 저질렀는가? 이 모순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파헤쳐가는 과정이 압권이다. 섣부른 지목은 무고한 희생을 낳기에, 추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결말부. 그곳에는 모든 논리를 전복시키는 경악할 만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_🗝️ “영화에도 나오잖아.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자기는 연인이 있다든가 가족이 있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그거, 가족이나 연인이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소리잖아. (중략)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죽어야 하는 건, 그것이 마찬가지로 잔혹한 일 아닐까.” -p.230다수의 생존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공리주의적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는 섬뜩한 대사다. ‘희생’은 자발적일 때 숭고한 것이지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타살이다.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가치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제물로 삼겠다는 합의 뒤에 숨은 다수의 폭력성. 자발적이지 않은 희생은 결국 또 다른 이름의 살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_🔦 살인범을 희생양으로 삼아 탈출하려는 그들의 합의는 정의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살인인가?🔦 범인을 지목하는 행위와 사형을 집행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다른가?🔦 만약 당신이 범인을 찾지 못해 무고한 사람 중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겠는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생명 가치는 사회적 지위나 인간관계의 유무로 환산될 수 있는가?#방주 #유키하루오 #블루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