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계절은 전부 내 감정이었다 - 오래 품은 나쁜 감정을 흘려보낸 나날들
원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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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계절은 모두 내 감정이었다》는 마음의 병이 찾아오는 방식과, 그것을 회복해 나가는 시간을 아주 조용한 언어로 그려낸다. 공황장애를 겪으며 무너진 저자는 어린 시절에는 약한 몸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무너지는 마음으로 삶의 여러 계절을 통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그 감정의 조각들을 다시 모으는 기록이자, ‘나’라는 사람을 회복해 나가는 고백이다.

처음엔 담담해 보이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뼈에 닿는다. 감정도 경험을 통해 자란다는 문장은 단지 위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직한 안내다. 작가는 말한다. “힘들지? 괜찮아. 울어도 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묻어둔 감정이 튀어나온다. 이 책은 그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 그것이 이 책이 내미는 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감정을 지나왔는가. 언제 내 마음을 닫았는가. 지금 나는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독자 자신에게 수사를 의뢰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행복해, 진심으로.” 그 문장이 왜 맨 마지막에 남겨졌는지,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감정을 기억하게 하고, 마음을 다시 여는 길로 안내한다. 단지 치유에 그치지 않고,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를 천천히 일깨운다.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의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경험.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이 계절의 주인공은 결국 나의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출판사 미다스북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나온계절은전부내감정이었다 #원울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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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인간
염유창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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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인간》은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힘든 소설이다. 반성문 대필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윤은 병든 딸의 병원비 때문에 수상한 의뢰를 받아들인다. 의뢰인은 유명 심리상담센터 원장 조찬식. 그는 산사태로 붕괴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8명을 인터뷰해 트라우마 회복을 돕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어딘가 이상하다. 모두가 기억에서 지운 듯한 존재, 전경석. 자진해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가 익사했다고 알려졌지만 그의 수색 구역은 지하 2층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최대 탑승 인원은 8명. 생존자도 8명.

전경석은 정말 스스로 내려간 걸까, 아니면 누군가 그를 밀어 넣은 걸까.

이 책은 단지 진실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가 직접 사건의 실마리를 추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표현이 중반 이후 결정적인 단서로 떠오르고, 말미에 이 모든 퍼즐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순간은 짜릿하다. 특히 인물 간의 대화 속에 숨어 있는 긴장과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돋보인다. 독자는 어느 순간 사건의 공조 수사자가 되어 단서를 따라간다. 작가는 불필요한 맥거핀 없이 이야기의 모든 조각을 회수하며 완성도 높은 구조를 보여 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전경석이라는 이름이 있다. 처음 책소개를 보고 의심의 대상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오히려 가장 애잔한 존재로 다가온다. 정당하지 않은 선택이 누군가의 고통을 은폐하고, 결국 그 책임이 모두에게 되돌아온다는 메시지는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인간이 도덕적 무력감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를 끝까지 묻는다.

당신이 9명을 태울 수 없는 8인승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피를 묻히지 않았지만 실은 모두가 그 결정에 참여했을지 모른다는 의심. 이 책은 그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않는다. 독자는 단서의 재미를 넘어 그 단서들이 가리키는 방향과 그 끝에 놓인 의미를 함께 체험하게 된다.

* #우주서평단 모집, #해피북스투유 출판사 도서지원으로 #우주클럽_장르문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마이너스인간 #염유창 #해피북스투유 #우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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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는 세계사 - 인간이 깃발 아래 모이는 이유
드미트로 두빌레트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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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는 세계사》는 우리가 매일 스치고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깃발’이라는 상징을 통해 세계사를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다. 거리와 뉴스, 올림픽 중계와 달 착륙 장면까지 깃발은 언제나 가장 뜨거운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이 책은 단지 국기의 의미를 해설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깃발에 담긴 색과 무늬, 상징의 기원은 물론 그 깃발이 어떤 역사적 흐름과 함께 생성되고 소멸했는지를 추적한다. 성조기와 프랑스 삼색기, 유니언잭처럼 잘 알려진 국기부터 낯선 나라의 깃발까지, 깃발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역사의 요약본이자 욕망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깃발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국기 하나하나에 스며든 수천 년의 서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프랑스 혁명의 함성이 삼색기에서 느껴지고, 우리가 초등학교 때 외웠던 색과 문양이 제국주의의 흔적이거나 종교 전쟁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작고 가벼운 천 조각이지만 그 아래 담긴 정체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는 국기를 마치 사건 현장처럼 분석하며, 깃발이 바뀐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은 독자에게 ‘보는 눈’을 새롭게 만들어 준다. 어느 순간부터 색과 도형의 배열만으로도 한 나라의 지배 구조, 종교, 역사적 상처를 읽어내는 감각이 생긴다. 국기가 단지 상징물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이상을 압축한 요약본임을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200장이 넘는 깃발 이미지와 함께 읽는 이 책은 시각적인 즐거움도 크다. 깃발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세계사의 넓은 지도를 다시 그려 보게 되는 경험,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woojoos_story 모집, @willbook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펄럭이는세계사 #드미트로두빌레트 #윌북 #우주서평단 #온라인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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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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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여자 안과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고통받는 남자 정한의 이야기다. 이들은 과거 ‘블루진 프로젝트’라는 생체 실험의 피해자이자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이유 없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이다. 기억이 사라졌는데도 그리움이 남는다면, 그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가 이미 반쯤 들어와 있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클라우드, AI 같은 기술에서 기억 보조 장치만 제거하면 곧 오늘이 된다. 그렇기에 더 불편하고 더 두렵다. 읽는 내내 마음에 남는 질문은 ‘내가 나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억은 무엇일까’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이름, 손을 잡은 온기, 함께 웃었던 기억. 그것들을 지워도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안과 정한은 기억을 다루는 실험의 피해자이자 감정의 저항자다.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다. 기억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읽고 나면 묘하게 설득된다.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고,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정은 남는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보여 준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은 기억과 감정을 통해 자아와 존재를 되묻는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이름, 너무 아파서 지우고 싶었던 장면, 아무렇지 않게 떠오르는 얼굴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나를 이루는 기억을 일부러 지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더 편해지기 위해 감정을 없앤다는 건 진짜 자유일까.

책을 덮고 나면 막연한 따뜻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남는다. 기억은 단지 데이터가 아니라 마음의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국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과거, 그러니까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기억이 없는 AI는 매 순간 다른 말을 해대죠.” -p.70

이 문장은 단순히 AI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 없는 AI가 일관성을 잃듯 감정 없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인간도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우리가 매일 나눠 온 대화, 지켜 온 관계, 쌓아 온 감정은 모두 기억이라는 재료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이 문장은 날카롭게 짚어낸다. 사랑은 그래서 단지 기분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잊었는데도 그리운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출판사 허블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시의소문과영원의말 #나인경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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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는 남자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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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단 하나 ‘먹는 것’

주인공 제영은 음식을 섭취하는 순간 얼굴을 아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평온한 죽음이 아닌 잔혹하고 폭력적인 죽음. 그는 음식을 멀리하고 물만 마시며 살아간다. 고립된 삶 스스로를 지우는 방식으로 죽음을 피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 ‘솔지’가 그의 삶에 스며든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연결되며 삶의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죽음을 향한 예지력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본래 죽을 운명이었던 이가 살아남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죽는다. 죽음이 ‘이동’하고 있다. 누군가가 죽음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엔 ‘중개인’이 있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 맞을 사람을 사고파는 자

제영은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저 방관자인가?

《못 먹는 남자》는 《홍학의 자리》 이후, 정해연 작가가 다시 보여주는 설정 스릴러의 진수다.

음식을 먹을 때만 죽음이 보인다는 설정, 얼굴을 알아야만 죽음을 볼 수 있다는 룰, 생의 운명은 바꿀 수 있어도 사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냉혹한 원칙. 제영의 능력은 결코 축복이 아니며, 예지도 아니다. 고문에 가까운 능력이다. 그는 세상과의 접촉을 피하고 의도적으로 ‘아는 얼굴’을 늘리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에 반해 중개인은 이 능력을 정반대 방향으로 활용한다. 죽음을 사유화하고 목숨에 값을 매긴다.

희망이 아니라 거래. 존엄이 아니라 가격
이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정말 괴물은 죽음을 보는 자일까, 아니면 죽음을 정가에 매긴 자일까?

《못 먹는 남자》는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붙잡는다.
죽음의 예지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의 고립, 인간 존엄,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치밀하게 풀어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이렇게 묻게 된다.

“나는, 그 능력이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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