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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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행성의 실험을 통해 자유와 소유의 본질을 해부하는, 사유를 강제하는 SF문학의 영원한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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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풍요롭지만 빈부격차와 계급이 극명한 '우라스', 그리고 그 체제에 반발한 혁명가들이 떠나와 건설한 척박한 사막의 행성 '아나레스'. 아나레스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오도니안'이라 칭하며 소유와 권력이 없는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렇게 200여 년, 서로를 향한 문을 굳게 닫아건 채 단절된 두 세계. 아나레스의 천재 물리학자 쉐벡은 이상주의적 공동체마저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두 세계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을 허물기 위해 동료들의 비난을 뒤로하고 목숨을 건 우라스행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과연 풍요의 땅 우라스는 그가 꿈꾸던 해답을 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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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소유와 무소유의 대립을 넘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벽'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짓궂게도 이 책에 '애매모호한 유토피아'라는 부제를 붙였다. 소유가 없는 천국처럼 보이는 아나레스조차 시간이 흐르자 '관습'과 '여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서서히 경직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쉐벡은 이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 기꺼이 경계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는 아나레스의 배신자라는 낙인을 감수하고 적들의 행성인 우라스로 향한다. 이곳에서 쉐벡이 마주한 것은 화려한 풍요 속에 감춰진 빈곤과 차별, 그리고 개인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국가주의의 음모였다.

소설을 관통하는 쉐벡의 사상은 지극히 도교적이다. 그는 미래의 거창한 혁명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수단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그의 신념처럼 올바른 과정만이 올바른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우라스에서 완성한 획기적인 물리학 이론인 '앤서블'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꾸지 않고 전 우주에 대가 없이 공개해 버린다.

쉐벡은 빈손이었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무언가를 소유하려 드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가두는 벽을 쌓게 된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결말에서 쉐벡은 다시 척박한 고향 아나레스로 돌아간다. 화려한 성공도 영웅적인 환대도 없는 귀환이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돌아옴이다"라는 문장처럼 벽을 넘어본 그는 이미 떠나기 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벽을 마주한다. 타인과의 벽, 내 안의 편견이라는 벽,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의 벽. 이 책은 그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는 힘이 거창한 무기가 아니라, 움켜쥔 손을 펴는 '빈손'의 용기에서 나온다고 말해준다.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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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유로우니까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에 자유롭지요. 그리고 당신들, 소유자들은 스스로도 소유물이에요. 모두가 감옥에 갇혀 있어요. 각각이 외롭게, 혼자서, 소유물 더미와 함께. 당신들은 감옥에서 살고, 감옥에서 죽어요. 내가 당신들 눈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그게 다예요. 벽이요, 벽!” -p.281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도 그 물건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는 섬뜩한 통찰. 우리가 쌓아 올린 부와 명예가 실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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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해 보이는 유토피아조차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고 경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소유를 부정한 사회는 정말로 권력을 제거할 수 있는가?

🔦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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