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9
허진희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평점 :
🕵️ 빨간 구두를 신은 보하와 흙 묻은 손의 구니. 너무도 다른 두 소녀의 만남은 우정의 시작이었다. 가난하지만 단단한 구니와, 화려하지만 불안한 보하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세상의 중심이 되어 준다. 그러나 보하의 아버지가 회사 돈을 횡령해 감옥에 가면서 두 소녀의 삶은 다른 궤도로 흩어진다.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둘은 각자의 상처를 감추며 서로에게 매달리지만, 수능을 앞둔 어느 날 아침 보하가 사라진다.
_
📜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은 서로의 결핍을 닮아가던 두 소녀가 세상의 어둠 속에서 잠시나마 서로를 밝혔던 이야기다.
처음엔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로 읽기 시작했지만 곧 이 작품이 훨씬 더 깊은 층위를 가진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구니와 보하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라기보다 서로의 어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구니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보하는 결핍을 감추려 도망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있음’과 ‘없음’을 오가며 세월을 지나 어른이 된다.
보하는 늘 구니를 부러워했다. 구니에게만 있는 초연한 기운,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힘, 그리고 버텨내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한 안정감. 반면 구니는 그런 보하를 향해 알 수 없는 경계심을 품었다. 서로 닮고 싶고 닮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하는 그 감정선이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이다.
구니의 삶은 할머니의 가르침 아래 ‘버티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단단함은 역설적으로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보하에게조차 솔직해질 수 없었다. 반면 보하는 언제나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처럼 구니의 세계에 갑자기 들어와 잠시 빛나고는 사라진다. 구니의 세상은 그 빛으로 환해지지만 동시에 다시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보하가 남긴 말과 기억은 결국 구니를 성장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상처가 없었다면 결코 어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샴페인의 거품처럼 화려했던 시절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의 잔향은 오래 남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두 소녀의 관계가 ‘사랑’과 ‘우정’, ‘집착’과 ‘의존’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관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결국 ‘외로움’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독자는 자신이 지나온 시절의 친구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_
🗝️ “할머니와 보하에게 조금씩 매정하게 굴고 있지만 두 사람에게 버림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는 다만 두 사람에게 내가 누리는 지금 이 시간을 그저 보아 넘겨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지요.” -p.47
누구에게나 있는 이중적인 마음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 관계만큼은 잃고 싶지 않은 욕심. 구니는 그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_
🔦 구니가 끝내 보하에게 닿지 못한 건 외로움 때문일까 자존심 때문일까
🔦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없음’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일까
🔦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관계의 빛은 남을 수 있을까
.
출판사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샴페인과일루미네이션 #허진희 #현대문학 #핀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