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자면 첫 권은 흥미롭게 빠져들었고, 3권쯤으로 가면서 피로감을 약간 느꼈다가, 4권부터 막권까지는 쉼없이 읽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초반부터 쏟아지는 주석 달린 용어들이 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작가님의 문체가 담백하고 서술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당장 눈앞 페이지에 모르는 얘기가 펼쳐지고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술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정의 눈이 품은 판타지적 능력과 이안의 등장이 호기심을 붙잡아 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주변인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정의 모습에서 답답함 농도를 쌓은 데다가, 능글맞은 이안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기 신공에 두드려 맞다 보니, 각자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이 피로감을 계속 견디고 읽어야 할까 싶은 고민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세트를 결제했으니 끝은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읽었는데, 이안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남인 것 같던 인물들이 어떤 관계로 얽혀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어색했던 외국 이름이 차츰 혼동 없이 구별됐다. 아버지 대의 사연에 관한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하자, 주인공의 연애는 어떻게 되든간에 사건의 결말을 봐야겠다는 열의가 돋았다.
그런데 기대와 다르게 L이 살아났다. 좀 흐릿하지 않나 싶었던 로맨스 감정선이 상대방을 위해 제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내던지겠다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걸 보았다. 정과 이안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인물인데 이야기 자체의 매력이 취향을 한 수 접게 했다.
항상 고민하는 것이 있다. 전권구매를 해서 할인 혜택을 최대화해야 하나, 아니면 1권씩 사서 맛보며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나. 전권구매로 겪은 후회가 많아 요즘은 후자 쪽에 마음이 기울고 있었는데... 전권구매하지 않았다면 프라우스 피아는 3권에서 멈추고 마는 아쉬운 선택을 했을 것 같아서 다시 전자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