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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시선 383
최정례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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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례 시인은 읽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첫 번째는 예상했던 산문시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단편 소설처럼 보이는 시와 두 번째는 너무나 솔직한 말들에, 세 번째는 말과 말 사이에 간격이 너무 넓어서 당황했다.

 첫 번째 산문시에 대해서는 아직 할 말이 없다. 전에 만난 이창기 시인도 그렇고 많은 시인들이 산문시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산문이냐 시이냐 따져보는 것이 시를 많이 보지 않은 나에게는 막연한 논쟁으로 느껴져서 그냥 넘어가겠다.

 두 번째 너무나 솔직한 말들. ‘검은 눈구멍’에서 “강사료 적게 주려고 시험 볼 거냐 강의할 거냐 묻던 그 거만한 교학과 직원 때문이야, 기말고사 답안지 끝에 왜 작품 첨삭 대신 시만 읽히느냐고 번역본도 안 주고 시험에 냈느냐고 갈겨쓴 예비 작가 때문이야,” 또, ‘원고와 궤도’에서 “학기가 끝나는 종강 날에 능소화야 다음 학기에 보자 눈짓하면 흥, 다음 학기에도 볼 수 있을까, 시간강사는 시간강사만큼만 학교 울타리 꽃을 볼 수 있는거야, 나를 비웃었다” 등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심정을 숨긴다. 그리고 잘 지내는 것처럼 말한다. 아무리 솔직하게 써야하는 시라고 해도 은유를 하든해서 숨길 텐데, 직설적으로 다 말해버리니 오히려 읽는 사람이 더 당황스러웠다. 시인의 이런 당당함을 좋게 여겨야할지 아니면 너무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나무라야할지 당황스러웠다.

 세 번째, 말과 말 사이에 넓은 간격이라 한 것은 갑작스럽게 다른 내용의 말이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인터뷰’에서 “사격 선수는 인터뷰하면서 자기 아이에게는 절대 사격을 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모기가 내 다리를 물었다”처럼 갑자기 생뚱맞은 말을 해서 당황스러웠다. 이것들이 마지막에서 잘 정리되어 이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흔들렸다’에 “그는 조금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무릎 위에 꼭 쥔 주먹이 분명 그의 손이었다. 유리창 밖에서 갑자기 비둘기가 날았다. 그의 어깻죽지에서 솟았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가 왜 자기 이름까지 잊고 있는지,”에 유리창 밖에서 비둘기가 날았다. 그의 어깻죽지에서 솟았다라는 표현은 없는 것이 의미 전달이 수월한 것 같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굳이 이것을 왜 넣었을까 생각해보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공간으로의 간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중심을 흩뜨려 놓는 효과(두 번째의 솔직한 말들을 흐리려 하기 위한?) 때문에 넣은 것 같다.

 시집 전체에 산문인지 시인지 구별할 수 있는 키포인트로 시인은 “말들이 빈틈없는 간격으로 쌓여진 것이 산문, 말과 말 사이에 공간을 비워둔 것이 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주장에 대해서 나는 옳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산문은 논리적 흐름이 일관성이어야 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 시이기에 가능한 자유로움을 최정례 시인은 잘 활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중심을 흩트려 놓으면서 흐름을 놓쳐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정례 시인의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재밌게 읽은 것은 장갑 한 짝과 펭귄 생태와 같이 생각지도 못한 우연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잘 융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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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 이상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6
이상 지음, 김주현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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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소설은 지금보아도 재미가 있다. 자신에 대해 시시덕거리는 이상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시시덕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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