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 문학과지성 시인선 462
정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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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 시인의 시에서는 처절한 절망의 소리가 들린다. 시에서 괴물들이 등장하고, 잘려지는 신체들이 나오는 등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 기괴하다.

그 중 ‘혈관을 꽂아 넣는 슬픔’의 시는 그 절망감을 가장 절절하게 드러낸다. 절망으로 가득 찬 감정적인 존재가 말한다. “발가벗고 팔을 날개처럼 퍼덕이는 천사가 되어 불타버리고 싶어 하는 아이” 우리는 이러한 것과 같다고. 그 다음 가장 이성적인 존재가 대답한다. 이렇게 만든 게 룰이라고. 그러면 “증발하는 방법이 없습니까?” 하고 여기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하는 감성적인 존재의 절망적인 질문에, 가장 이성적인 존재는 말한다. 그것이 룰입니다 라고. 그만큼 절망적인 세상. 시인은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습니까?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하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에 세상은 냉혹할 만큼 고요하다.


 시인은 그러한 절망 속에서 사랑을 외친다. 사랑이 자신을 구원한다고 믿고자 한다. 그래서 ‘가련한 사전’ 이란 시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늘 밤에도 빌딩 꼭대기에 가서 외친다 사랑한다고” 시인은 사랑에서 희망을 보는 걸까?

보통 희망은 하늘을 나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이상의 ‘날개’도 절망스런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날자 날자 하며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는가. 이 시에도 날개짓으로 하늘을 날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도 절망으로 변하여 ‘사랑은 반항하는 새와 같아서’ 에서는 “허공이 무덤이고 그 무덤이 바람인 지난밤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저들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의 막막함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날개를 접고 흩어진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것은 날개 뼈가 부러지는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구원하리라는 희망도 꺾여버리고 결국 절망만이 남았다. 그 속에서 희망을 꿈꾸며 날아갈 수 있을까.


 사람은 어두움, 절망보다 밝음, 희망을 추구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아니면 종교를 믿거나 한다. 문학도 대부분 희망을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감동을 얻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데 정영 시인의 시는 희망보다는 절망만 보이고 감동보다는 허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시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 나는 이 시집에서 처절함이라는 진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 같은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반항하는 새와 같아서’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더러운 길목엔 내가 이 생에서 보지 못한 처음 보는 깃털 하나” 처절한 상황 속에서 놓인 작은 깃털 하나. 이것은 너무나 간절하고 아름다운 작은 구원과도 같다. 처절한 상황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강렬하게 빛나는 그 아름다움. 이 시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시인의 작품이 기대된다. 절망 속에서 아름다움은 더욱 더 강렬하게 보여질 것이기에. 강렬한 이미지와 절망에서 울리는 강한 외침이 매력적이다. 다만, 필터링이 없는 직설적인 시어들은 부담스럽다. 시 중 ‘생일 파티’라는 시가 그랬다. “여기 태어난 나를 어르고 달래는 극악한 찬미” 라든가 “악마들의 축하 카드가 도착하고 모두가 공감을 표하는 흉측한 박수를 치고 있을 때” 등 너무나 표현이 직설적이다. 물론 다른 시도 그런 면이 몇몇 있었지만, 이 시는 너무나 감정에만 휩쓸려 있어 너무 부담스럽다. 이 점을 조금 유의하면 강렬하고 아름다운 시가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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