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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의승 옮김 / 뜻이있는사람들 / 2003년 3월
평점 :
Savior vivre
(사부아 비브르)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김의승옮김/뜻이있는사람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재즈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그것의 무너짐을 다룬 걸작이다. 이 소설은 제이 개츠비라는 인물이,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재건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다루고 있다. 개츠비의 사랑은 순수하면서도 집착적이며, 그의 인생을 모두 걸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의 비극성과 인간의 이상 추구의 허망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위대한 개츠비의 사랑>
때로 그들은 개츠비를 아예 만나보지도 않고 왔다 가기도 했고, 그저 단순한 마음 하나만으로 파티에 왔던 것인데 그것이 파티의 입장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황금모자를 쓰고 뛰어오르는 내 사랑이여,
내가 당신을 차지하리라!“
개츠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신의 신분을 초월해 성공하고자 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성장했다. 그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하나, 상류층의 상징인 데이지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이지는 현실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하며 톰 뷰캐넌과 결혼했고, 개츠비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부족했던 ‘물질적 가치’를 충족시켜 데이지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그의 사랑은 소나기의 소년처럼 순수하고 강렬했지만, 그 사랑은 현실에 부딪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개츠비의 파티는 데이지를 향한 열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어, 데이지가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며 그 희망을 유지한다. 그러나 개츠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과거에 집착하는 사랑이었다. 그는 데이지와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고자 했고, 데이지가 그에게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이러한 집착은 결국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며 비극을 초래한다. 개츠비는 자신의 삶을 사랑에 바쳤으나, 데이지는 자신이 선택한 물질적 안정을 지키고자 개츠비를 외면했다. 이처럼 위대한 개츠비의 사랑은 사랑을 통해 성숙하기보다는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며 파멸로 치닫는다. 그로 인해 추구한 삶의 목표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비극적인 사랑이다.
<소나기의 순수한 사랑>
황순원의 <소나기>는 시골 소년과 서울에서 온 소녀의 짧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다. 작품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사회적 배경이나 물질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자연 속에서 순간적으로 피어나는 감정이며, 서로의 마음을 조약돌과 호두알로 주고받는 소박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소나기가 잠깐 지나가듯, 이들의 사랑도 소녀의 죽음으로 인해 짧은 시간 안에 끝나버린다.
소나기의 소년은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성숙하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다. 소녀가 그에게 남긴 감정은 소년의 유년기를 마무리 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녀와의 관계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이별의 슬픔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게 만든다. 소나기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 비극을 강조하면서도, 그 사랑이 소년에게 남긴 감정적 흔적을 통해 인간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다.
<위대한 개츠비>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
왜 개츠비는 ‘위대한’가? 개츠비가 단순히 실패한 사랑과 무너진 꿈을 가진 인물이라면, 그의 이야기는 그저 비극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며, 그의 이상을 향한 끝없는 추구를 강조한다. 개츠비는 자신의 사랑이 비현실적이며, 데이지가 자신을 떠났을 때부터 그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가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시도와 이상은 위대함을 가진다. 피츠제럴드는 바로 이 점에서 개츠비의 삶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다.
개츠비의 이상은 단지 데이지와의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출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간다. 그러나 그의 꿈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는 데이지를 잃고,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아메리칸 드림마저도 실현되지 않는다. 이는 개츠비뿐만 아니라 1920년대 미국 사회가 품고 있었던 부와 성공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이면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재즈시대는 물질적 풍요와 사치가 넘쳤지만, 그 아래에는 정신적 황폐화와 인간관계의 허망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개츠비는 바로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그의 삶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삶을 어떻게 즐기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개츠비는 자신의 삶을 즐기기보다는 과거의 기억과 이상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는 화려한 파티를 열고, 부와 명성을 쌓았지만,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데이지의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소모해버린다. 개츠비의 비극은 바로 이 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현실의 즐거움이나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잃게 된다.
<삶을 삶답게>
“모두가 그에게서 부패를 찾아내려 애썼지만, 사실 그는 가장 깊은 곳에 순수함을 숨기고 있었다.”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나의 삶은 저 빛처럼 돼야 해. 끝없이 올라가야 하지”
위대한 개츠비와 소나기에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실패하고 마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친 집착과 이상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개츠비는 자신의 인생을 데이지에게 맞추어 살아갔지만, 결국 그 사랑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나치게 한 가지 목표에 집착하거나, 현실을 외면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반면에,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는 짧지만 행복한 순간을 함께하며, 그 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처럼 삶을 진정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주변의 사람들과 교감하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때로는 이루지 못한 꿈이나 사랑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결국 진정한 삶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인간의 이상 추구의 비극성을 담고 있는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개츠비의 삶이 보여주는 실패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이상을 향한 끝없는 노력과, 그 안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에 대한 물음이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소나기>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을 통해 성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년은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이별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는 우리가 사랑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목표나 이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성장임을 시사한다.
<위대한 개츠비>와 <소나기>는 각각 사랑을 통해 인물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개츠비는 자신의 사랑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깨닫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만, 소나기의 소년은 사랑을 통해 자신이 성숙해감을 경험한다. 두 작품 모두 사랑이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고 실현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사랑은 순간의 감정일 수도 있고, 인생 전체를 걸고 추구할 가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이다. 원효대사가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동굴이 무덤이었고, 한밤중에 목이 말라 주변에 물이 담긴 바가지를 발견해 벌컥벌컥 마신 달작지근한 바가지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은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고서야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순간에 깨달았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진리가 내 마음에 있으니 원효는 멀리 중국으로 유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 우리는 삶을 삶답게 살기 위해 너무나도 먼 여정을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savoir vivre(사부아 비브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즐기며 사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며 이것을 살 줄 안다라는 뜻을 나태내는 프랑스어다. 우리는 savoir vivre 하는가?
송정림 시인의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라는 시를 읽으며. 세상에 누구에게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 공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풍류를 즐기고 생활의 멋을 찾는데 많은 돈을 소비하느라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