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 - 우리를 둘러싼 아름답고 위대한 세계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물학에 관한 관심은 지난 세기를 거쳐 오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학문 중에 하나다. 왜냐하면 인간의 세포를 이용한 생명연장에 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앞으로의 삶의 광의적인 가능성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은 생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촉발되는데,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는 책이 최근에 까치글방에서 출판 된 <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라는 책이다. 물론 생물학을 접근하는 태도는 실용적인 측면으로부터만 야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생물과 상호적으로 존재하는 공간과 환경이 시대를 관통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생존하며 진화해왔는지를 관망하는 경험은 아름다운 탐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사라시나 아사오는 분자고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주로 동물의 골격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생물학에 대한 아름다움과 흥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그는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상들을 직관한다. 과학은 사실의 학문이자, 가설의 학문이다. 가설에 대한 연역에서 100퍼센트로 도달하는 길은 없으며, 점진적으로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저자가 학문의 겸손하게 다가가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의 챕터는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장의 이야기는 단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내용의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게끔 친절한 예시로부터 시작하여, 비교적 깊은 과학적인 논의까지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령 보수신학을 전공했던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다빈치가 이전에 다뤘던 노아 시대의 대홍수를 부정했다는 사실을 재해석하는 부분이었다. 노아의 홍수로 인해 지상의 생물이 완전히 멸종했다는 성서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먼저 다빈치는 쌍각류 조개를 근거로 노아의 홍수를 반박하는데, 조개껍데기가 탄산칼슘으로 구성되어 단단하지만, 유기물이기 때문에 한없이 약한 부분도 존재한다. 만약 인류를 휩쓸어 버릴 홍수가 일어났다면 쌍각류 조개의 약한 부분인 질긴띠가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지역에 2개의 껍데기가 붙어 있는 조개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노아의 홍수를 반증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이는 근본주의신학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것이지만, 반대로 성서해석이 논파해야 할 가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전공이 더욱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나에게 인상 깊었던 점이 직립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장, 단점을 나열하는 것이었다. 장점 몇 가지를 말하자면 햇빛에 노출되는 면적이 감소한다던가, 에너지 효율이 좋다던가, 두 손이 자유로워 서 식량을 운반할 수 있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를 인류 문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진화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일부일처 사회에서 자손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직립 이족 보행으로 진화 되었다든지, 다른 동물들이 공격의 수단으로 송곳니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짐승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숲이나 동굴 속에서 살았고, 후에 송곳니와 같은 무기를 만들었다는 그의 논의들은 단순한 생물학이 과학의 영역에서만 연구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모두를 위한” 생물학 강의다. 생물학을 입문하기엔 이만큼 적절한 책이 어디있을까 싶다. 저자가 지금까지 발행한 책들인 <화석 분자 생물학>, <잔혹한 진화론>, <절멸의 인류사>, <폭발전 진화>들은 독자들에게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생물학의 묘미를 맛 볼수 있게 해준다. 과학을 어려운 영역으로 항상 스킵 했 던 이들에게 사라시나 이사오라는 이름은 생물학의 다른 이름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감은 지능이다 - 신경과학이 밝힌 더 나은 삶을 사는 기술
자밀 자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타인의 마음상태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 시대에 아무리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일지라도 공감능력이 뒤처지면, 훌륭한 직원으로 거듭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공감능력은 하나의 경쟁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 시장의 다양화가 가속화 되면서 여러 시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고객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의견에 공감해주는 기업들을 찾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성취도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능력이란 건 천부적인 것일까? 아니면 지능으로 개발 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 있다. 자밀 자키의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이다. 자밀 자키는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통해 공감하는 방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집필 했다. 방법론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시를 통해 공감이란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공감의 중요성을 서두에 이렇게 밝힌다.


“공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친절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친절함이란 대가를 치르면서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다른 동물들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은 서로 표정을 읽고, 관심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며 저마다의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진 침팬지도 자기 무리에겐 친절을 베풀지만, 그 외에는 잔인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공감을 연습하면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것이 기술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100퍼센트 완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상태보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공감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자밀 자키는 역설하고 있다. 책의 챕터는 총 7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더 큰 챕터로 나눈다면 3가지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신경과학적으로 뇌가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어떤 원리로 인간이 공감하게 되는지에 대한 논의이다. 이 지점의 서술은 대표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어왔던 이 전의 고정주의의 반론으로 공감의 방향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내용에 힘을 실어 설명한다. 심지어 그것은 사이코패스에게도 해당 된다. 


두 번째는 접촉을 통해 편견을 줄이고, 증오의 감정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나눈다. 특별히 한 명의 인물을 토대로 이를 훌륭하게 반추하는데, 반유대주의자인 토니 매컬리어가 어떠한 접촉의 경험을 통해 극단적인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 유대인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극복하고 반성하게 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는 디지털을 비롯한 사회 시스템의 체계가 어떤 공감가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친절한 시스템은 친절한 마음을 키울 수 있고, 공감에 바탕을 둔 훈육은 문제아로 여겨졌던 아이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앞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게 될 관계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한다. 이를 객관적이며 포괄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부록을 삽입함으로써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책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관찰 할 수 있다. 자밀 자키는 앞에 공감의 중요성에 ‘친절함’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도 저자의 그 친절함이 어김없이 묻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공감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공감이 투쟁이라고 비유하듯 인류와 나의 선의를 위해 인간은 계속해서 공감하기를 결심해야 할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편견을 갖지 않는 친절함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3(공동번역)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오래된 금언과 함께 세계의 흥망성쇠이란 언덕을 꾸준히 넘어왔다. 바로 그렇다. 공감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허물과 직면 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자신이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공감은 세계를 이끄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돌아보는 연습을 할 때, 공감은 저자가 밝히듯 미래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급속도로 세계화 되는 미래사회의 자명한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니스와프 렘 - 미래학 학회 외 1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소설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기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 식탁 위에 놓인 인류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한세희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먹고 마시는 것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의식주에 역사라는 건 인류의 시작만큼이나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든지 삶의 유희를 위해서 요리라는 행위는 역사에 필연적 요소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음식을 어떻게 정의할까? 국어사전에 개시 된 음식의 뜻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밥이나 국 따위의 물건 혹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는 첫 번째 뜻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한 “음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라는 물음 말이다. 이러한 질문에 간단명료하면서 명쾌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책을 한권 소개한다. 바로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라는 책이다. 


책은 총 1장의 <인류를 창조한 자연이라는 식량 창고>라는 제목으로부터 8장까지 <콜드 체인과 세계화>라는 챕터를 시대 순서와 그 시대의 주류를 이룬 음식의 기원과 발달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1장에서 인류가 채집 사회에서 식자재의 획득과 더불어 부패를 막기 위해 음식이 개발 되었다는 사실은 음식은 우선적으로 생존을 위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각 지역의 기후와 지형적인 특성과 맞물려 문화, 문명으로 점차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음식이 세계에서 어떤 영향을 주었을 지를 예상하게 한다. 몇 가지의 내용을 짧게 살펴보자면 음식을 효율적으로 보관하거나 음식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미료를 찾고 개발하는 과정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실 수 있는 커피나 홍차 등이 이슬람의 문화에서 우연히 이뤄졌고, 홍차를 차지하기 위해 감행 되었던 정치적인 사건들이 프랑스 혁명의 주춧돌이 되었다는 기가 막힌 사연, 민족주의로 자행된 유럽에서의 장기간의 전쟁을 위해 개발 된 식품 보존 기술이 통조림의 역사로 이어졌고, 산업 혁명을 통해 음식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음식의 세계화가 결과적으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을 밝히면서 문명의 시작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음식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우선적으로 이 책의 특징은 단순히 음식의 역사를 동서를 막론하고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는 지점에 있다. 또한 저자는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사로 지도한 노하우들을 십분 활용하여 역사책을 처음 읽는 어떤 이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간다. 그 친절한 손길을 서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책의 전체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보게 함으로써 책을 읽어야 할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 분명 음식의 문화는 각각 나라마다 다르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음식을 추구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음식의 미래는 세계화의 흐름과 더불어 무궁무진한 발전과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는 친절한 교양서적이고, 식탁의 올려 져 있는 음식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되는 가이드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처럼 타오르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포효.


서아프리카 황금해안의 판틀랜드에서 시작되는 이 방대한 이야기는 300년간 7세대를 관통하면서 이 세계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혹은 차별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된다. 에피아라는 여성으로부터 마조리에 이르기까지 <노예>라는 주제의식이 사건과 사건의 꼬리를 물어 연쇄적으로 연결되면서 비극적이면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깊숙히 응시하게 한다. 


첫 번째 인물인 에피아의 출생은 시작부터 기묘하다. 한 남자가 노예출신인 생모 마메를 강간하여 에피아가 출생된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노예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던 에피아는 영국 총독 제임스에 눈에 들어와 결혼하고 아들 퀘이를 낳게 된다. 사람의 운명이란건 참으로 기구한 것처럼 보여서 퀘이는 분명히 가족으로부터 부와 명예 누 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산티족 여자와 결혼해서 가난하게 삶을 살게 된다. 또한 노예의 비참함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메의 둘째 딸 에피아의 동생 에시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에 전쟁이 발생하고, 적의 포로로 잡힌 에시와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지옥을 맛보게 된다. 이는 앞으로 험란한 노예로서의 삶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미국 남부에서 목화를 따는 농장에서 노예로 산다. 그러나 이내 노예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도망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노예제도가 점차 개선되면서 일정한 기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 자유와 해방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해방 노예 신분을 갖게 된 코조와 그의 아내 애나는 8명의 아이들을 낳고, 마지막 아이의 이름을 H라고 짓게 된다. 그러나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던 코조는 도망 노예 송환법으로 인해 자유를 박탈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결국에 그의 가정은 몰락하게 된다. 


2부에서 첫 번째 인물인 H는 슬프게도 태어날 때부터 노예 였고, 가족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누명을 써서 감옥에서 강제로 노동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H는 출소하고 이제는 노예를 벗어나 탄광촌에서 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등 열심히 삶을 꾸려 나간다. 그리고 흑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노조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미약하지만 점차적으로 자유와 해방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H의 가정에서 나온 딸 월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남편과 함께 탄광촌을 떠나 꿈을 향해 뉴욕으로 간다. 노래를 참 잘했던 월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포기 한채 생계의 문제로 청소 일을 하며 삶을 연연한다. 그러던 중에 허약하고 소심했던 남편은 월리를 배신하고 떠났고, 엘리는 아들 소니를 혼자 키우면서 가정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껴안게 된다. 소니는 미국사회에 대한 환멸 같은 것을 경험하고, 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의회와 차별 반대 시위등에 참여하지만 삶의 무력감속에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그러나 월리에 끊임없는 사랑으로 소니는 어두운 삶을 이겨내고, 가정을 꾸려 자신의 자녀인 마커스를 현명하게 키운다. 그렇게 인종에 관한 대한 성찰을 마지막 부분인 마조리와 마커스와 서로 만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H는 누구일까.


H가 무슨 약자일까를 소설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고민해봤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는 그 약자가 Human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1부와 2부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지점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의지가 적극적으로 선포되어 지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H는 1부에서 등장하는 백인들의 억압적이며 구속하려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노조’를 가입하여 함께 백인들과 정당한 권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 사건은 마치 흑인 또한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저자의 숨겨진 은유처럼 들려온다. 출소한 후에 H는 백인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탄광촌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백인 노조원과 이런 대화를 한다. 


“누가 우리의 파업에 관심을 갖겠어요?” H가 물었다. 그는 회의들에서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야, 임금을 올려 주거나 더 안전하게 해줄 때까지 일을 안하겠다고 통보해야죠. 그들은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어요.” 백인이 말했다.

H는 코웃음을 쳤다. “백인이 언제 흑인 말에 귀 기울인 적 있나요?”

“내가 여기 있잖소, 안 그래요?” 난 귀 기울이고 있어요? 백인이 말했다.

“당신은 전과자고.”

“당신도 전과자요.”


H는 흑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명사로 결부되어 소설이 점차 인간이란 주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사람들이 각기 속한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고, 그 차별이 결국 인종에만 결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부분은 결국에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까지 연결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역사는 권력을 가진자 들의 역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지오웰의 1984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격언과 같은 말은 역사에서 수없이 자행되어졌던 무수한 차별에 대한 암울한 보고요, 세계의 어두움이다. 비록 밤불의 딸들은 밤에 피워 놓은 딸들의 이야기라는 말로 어두운 서사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은 밤에 피우는 희망의 등불이자 인간 모두의 삶의 서사다. 불같이 타오르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포효처럼 보이는 밤불의 딸이라는 소설은 짓눌린 차별의 역사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오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찾으라고 요청하는 알람처럼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꿈의 서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