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뉴엘 - 마지막 숨결 현대 예술의 거장
루이스 부뉴엘 지음, 이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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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그의 유작인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 )이었다. 당황스럽게도 두 명의 여인이 동일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인지, 그들이 별개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인지를 처음에는 알 길이 없었다. 또한 어린 여자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찌질한 남성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이상한 정열>(1953)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났던 부유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가 부뉴엘의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라면 필시 그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문뜩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시인이 시로 자신의 내면에 귀속된 무의식의 언어를 드러내는 발화자라면, 영화감독 또한 그러할 것이다. 을유에서 발간된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은 그의 영화 인생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유한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자들을 함께 첨부함으로 하나의 흥미로운 대서사시로 완성되었다. 루이스 부뉴엘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영화와 삶을 설명한 책들은 많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이 책은 오로지 그의 회고로만 쓰였다. 


1983년 7월 29일 멕시코시티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이 책을 사망하기 전인 1982년에 발표하였다. 간격이 짧은 만큼 그의 전 생애를 각별하게 관찰할 수 있는 책이다.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학창 시절은 쥘 베른Jules Verne『그랜트 선장의 아이들Les Enfants Du Capitaine Grant』연극에 대한 황홀했던 기억으로 시작하여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관한 의심을 가졌던 것과 당시에 횡행했던 매춘행위를 시도했던 내용들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청년을 맞이한 그가 알베르티, 로르카, 달리와 같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건 그들의 작품을 체감하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주인공이 당대의 예술가들과 얼굴을 대면할 때만큼이나 이 책에선 그를 스쳐 지나갔던 최고의 예술가, 감독들을 직, 간접적으로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찰리 채플린, 조셉 폰 스턴버그,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자크 페데르 등이 언급되는 건 시네필들에게 감개무량한 일이다. 


무엇보다 내가 부뉴엘이 살아있다면 질문하고 싶었던 점은 <안달루시아의 개>(1929)에 관한 것이었다.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의 첫 번째 영화인 <안달루시아의 개>(1929)가 어떤 방식으로 촬영이 되었고, 제작 동기에 대한 구체적인 그의 코멘트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그를 인터뷰하러 외국이라도 갈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 : 마지막 숨결에는 내가 원하는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두 개의 꿈이 만나면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꿈의 이미지만을 형상화한 영화이다. 설명할 수 없는 아이디어와 이미지만을 수용하는 규칙을 통해 생성된 이 영화는 그의 초현실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기묘함 때문에 정상적인 제작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부뉴엘의 어머니의 지원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지점에서 나는 그가 어떤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야망보다 그가 언급하듯 초현실적 예술에 대한 일종의 호소 혹은 포효처럼 느껴진다.


아마 이 영화의 아이러니한 성공에는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는 일종의 균열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긴 모욕과 위협의 시작이었던 <안달루시아의 개>(1929)는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발점이었다. 그는 취미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고, 알지 못할 나라들에 대해서 어떤 호기심도 느껴본 적이 없으며, 자신이 살았던 장소, 추억이 서린 장소에 계속해서 되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스페인 내전 등의 상황과 자신의 영화의 가치를 세상에 꺼내놓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방랑객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마지막 숨결을 그가 내뱉을 때까지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늦추지 않았다. 이번 을유에서 출간된 <루이스 부뉴엘 : 마지막 숨결>은 그의 전 생애를 연결하는 초현실주의자의 삶과 영화를 동시에 포착할 수 있는 고백록(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의 글을 인용하자면)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직 감상을 마치지 못한 그의 영화들을 다시금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의 숨결은 국경을 넘어 그리고 의식을 넘어 나에게도 끝끝내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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