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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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년도부터 영화 웹진에 기고자로 활동하면서 영화와 미술의 관계가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최근에 <미션임파서블 : 루벤>(2018)이란 애니메이션에서 나열되는 12개의 작품들은 기존에 정형화된 회화에서부터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들이 변형된 형태로 표현된 것을 감상하면서 예술의 기원과 의미의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먼저 나는 장 뤽 고다르가 즐겨 인용하는 앙드레 바쟁의 “원근법은 서구 회화”의 원죄라는 금언에서 그 관계의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근법은 오랜 시간 동안 서구 회화를 장악하고 있었던 코드였으며,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사실’을 묘사할 뿐이었다. 

발터 벤야민 역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었다. 예술이 “제의”적 가치에서 “전시”적 가치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분명 인식론적인 틀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칭할 수 있는 속성의 것이었다. 신적 가치를 수여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에서 일상적 세계로 내려온 예술이란 매개는 필시 그 계기란 존재하는 법이다. 그 중심에는 세계대전이 있었다. 이상과 관념을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등장은 예술계의 지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예술은 ‘의미’와 ‘해석’의 문제로 진전되었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생애는 물론이고, 그들의 이름, 작품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다만 왜 그들이 전복적인 시도를 했는가에 대한 희미한 펼쳐진 동인들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각각의 ‘작가’들의 생애와 작가의 성향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일목요연한 서술이 특징인 책이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 주로 피카소의 그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의미를 파악할 수없이 조각 조각난 혼재된 ‘선’과 ‘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들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미학의 문외인인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현실주의 작가를 한 대로 묶어 ‘피카소’의 큐비즘으로 치부하는 선입견들이 있다. 당장 르네 마그리트만 보더라도 그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했지만, 그 안에 예술이란 부조리를 담아내는 불합리한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다는 점들을 미뤄보아 다양한 부류의 작품이 작가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고 있었음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반항아 적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작품에선 동등했다. 

그들 중에 대다수는 초현실주의 공동체를 조직하여 협업을 하면서 예술의 지평들을 넓혀나가기도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에서 가장 큰 별미는 화가들의 생애에 대한 묘사이다. 작품의 광기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이성 관계, 부부 관계에서 무너진 삶을 살았다. 예술계의 혁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과연 세계를 변화시켰는가를 묻는다면 적확하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예술의 자율성을 개방했다는 지점에서 그들의 업적은 충만하게 내재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며 루이스 부뉴엘과 살바도르 달리가 함께 작업한 <안달루시아의 개>(1928)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한없이 인간적이면서도 기묘하게 혼재된 이미지들은 의식 너머 무의식에 착상하는 영화의 또 다른 출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덕분에 나는 교양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예술을 보는 시각을 확장할 수 있었다.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렇게 유형의 예술과 무형의 의식을 창출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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