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드로 미샤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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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넘치는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심리 서스펜스 장르를 구축한 그의 ‘세 여자’라는 작품은 구조적이면서 서사적인 글 솜씨가 돋보인다. 특히나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그러한데, 캐릭터가 갖고 있는 사회적 배경과 가정 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의 몰입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가령 첫 번째 피해자인 ‘오르나’는 이혼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에란’을 키우면서 정신적, 경제적인 결핍을 갖고 있는 여자로 묘사된다. 


이혼남녀를 주선하는 만남 사이트를 통해 이성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이성에 대한 갈증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갈증은 결과적으로 파국을 맞이 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길’이라는 남자가 자리하고 있다. 둘의 만남이 ‘이혼’이란 전제로 만나고 있다는 것과 오르나가 자신의 상황을 쉽사리 남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다. 두 번째 피해자인 에밀리아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노동자인 미혼인 간병인인 그녀는 환자를 돌보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여자다. 이런 환경을 훤히 알고 있는 ‘길’은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녀를 자신의 욕망에 희생자로서 이용한다. 이처럼 길은 한편으로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가스라이팅’ 기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세 여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활짝 오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연락을 끊고 상대방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어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범죄에서 패쇄적인 공간을 활용하는 ‘길’의 용의주도함도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소설에서 만남은 주로 ‘길’의 집과 여자들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이뤄진다. 그 공간은 범죄의 참상을 숨 막히게 묘사하는 상상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소설에서 여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라는 말을 매번 등장시키는 것을 보아 현재 계획되고 있는 범죄, 앞으로 계획 할 범죄를 설계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사이코패스적인 기질 또한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길’의 삶에 대한 특정한 묘사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장르적인 질감을 더욱 더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길’의 삶과 죄의 동기 확인하는 순간 길을 ‘이해’의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고, 이 소설에 갖고 있는 추리적 요소보다 휴머니즘적인 요소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여자라는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피의자인 ‘길’이라는 남자와 맞부딪히면서 후반부에 추리를 하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되는 독자들은 추리소설이 갖고 있는 장르적인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드로 미샤니가 이러한 장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유는 범죄 소설의 역사를 전공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범죄의 기법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세 여자는 분명한 특징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한계도 명확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을 함의하고 있는 것 같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길이 세 여자 중에 마지막 여자인 엘라에게 논문주제인 ‘홀로코스트’를 왜 정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솔직히 나도 더 이상 모르겠어요. 전에는 야심이 컸어요.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이 나한테 자신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세 여자는 분명 장르적인 면모가 부각됨에도 이러한 주제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범죄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며,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잊지 말고 기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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