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들 걷는사람 소설집 4
임성용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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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란 뭘까. 기록이란 개인과 공동체가 살아온 삶의 발자국을 순수하게 보관하는 일일텐데, 저자가 발화하고 싶은 ‘기록’이란 대체 어떤 행위일까? 더 나아가 기록은 사회 시스템과 체계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가령 조지오웰의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는 대사는 전체주의를 대변하는 내용으로 비유되듯 권력에 의해 기록이 조작될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하고, 이에 대하여 개인, 혹은 속한 공동체의 시선에서 기록에 대한 반발로 투쟁의 역사를 그려내기도 한다. 임성용작가도 역시 창작가로써 ‘기록’이란 인간의 나이테를 풍자하면서 각 인물들의 갖고 있는 삶의 끈들을 정밀하게 직조해나간다.

저자가 집중하는 하나의 시선은 ‘남자’가 갖고 있는 과부장적 사고의 해체라고도 보여지며, 또는 이데올로기와 직업, 사랑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현상을 소수자의 입장에서 대변해나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을 담당하는 ‘남자’들은 가족으로부터 해체되는 아픔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선명하게 인간의 실존과도 결부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하생활자와 아내가 죽었다의 단편들이었는데, 지하라는 어쩌면 지상과 분리된 어쩌면 ‘소수자’를 상징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찝찝하지만 우리네의 삶이 닮아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고, 아내가 죽었다는 이혼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담담하게 풀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국밥’에 담긴 이미지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지하생활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생은 어떠한 사건과 계속적으로 충돌하는 무한한 슈뢰딩거의 우주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록자들’의 단편을 예를 들어 보면 ‘왜’ 아버지가 그러한 기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조물주’를 상징하는 완전한 ‘시작’과 ‘끝’인 <알파>와 <오메가>가 왜 세계를 창조했고, 인간사회에 개입하려 하는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의 세계는 조물주의 개입보다 자신이 처한 ‘실존’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하생활자’의 단편에서 그런 결정적인 힌트로 이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용하면 ‘세계-내-존재’에 있는 우리 각각의 ‘현존재’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우리의 실존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망치라는 사물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사물을 수리할 때 보통 사용된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살인자에겐 그 망치는 살인을 도모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언어가 그렇다. 언어는 ‘기록’되어졌고, ‘기록’되고, 앞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현재의 삶의 현현 앞에서 우리가 기록해야 할 삶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책을 통해 경험하기를 소원해본다. 늘 그렇듯 좋은삶을 기록하기 위해 살아보기로 결단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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