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엄지 작가의 <겨울장면> 을 읽으면서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적이 있다. “이해 안 가면 그냥 스킵(skip)하세요.” 라고. 우리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할 때 뒤로 돌아가 그 내용을 다시 한번 더 읽으려 한다. 마치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결혼을 해서 부부로서 당연하게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책을 읽을 때 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해야만 한다’라는 의식 말이다. 말하자면, 무의식적으로 소설의 내용을 파악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은것처럼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김엄지 작가의 ‘글’은 스토리에 얽매여 있지 않다. 오히려 글이 지녀야 할 통념이나 관습에 의한 글쓰기를 거부하려고 한다. 그래서 장면마다 소설을 읽을 때 상상하게 되는 스토리의 배경과 인물묘사보다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느낌이란건 무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규칙적이지 않으며, 직관적이며 감각적이다. 이 지점에서 해석의 영역이 강제된다. 마치 ‘시’를 읽는듯하다고 해야 할까? 어떤 시는 마치 수수께끼와 같아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해석하기가 참 어렵다. 아니 실상 완전한 해석이란 건 니체에 말마따나 없는 것 인지도 모른다. 


사실(들)은 없고, 해석(들)만 있다(Tatsachen gibt es nicht, nur Interpretationen)라는 말마따나 해석들로 가득찬 세계에서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해석이란 퍼즐에서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즐거운(?)포인트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겨울장면>에서는 겨울의 차갑고 공허한 이미지들이 드러나는데, ‘천장’, ‘얼음호수’ ‘마음’같은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천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천장이 묘사되는 장면들은 유일하게 이름을 갖고 있는 R의 시선이 향하고 지점을 묘사한다. 기억을 잊은 주인공이 향하고 있는 천장이란 작가의 말대로 확실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위인지, 아래인지, 허공인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없다. 다만 내가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곤 천장은 상상의 펼칠수 있는 공간이고, 가능성의 공간이다. 겨울장면의 시작은 ‘천장’과 함께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펼칠수 있는 도화지와 같다. 천장을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삶의 부분들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장 안에 뭐가 가득할 것 같다. 천장 안에 빛이 있다면. 빛이 없을리는 없다. 빛 없고, 보는 눈 없이.”


그리고 독특하게도 이 문장은 수미상관으로 끝 무렵에 또 한번 등장한다. 수미상관은 글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거나 강조할 때 주로 쓰인다. 이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마다 ‘천장’을 다시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떤 쓸쓸함, 고요, 고통과 같은 감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체감된다. 이러한 반복과 중첩되는 이미지인 천장은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이자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고찰할 수 있는 부분은 보통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전체적인 밑 그림을 작품 들어가기 전에 완벽하게 설계하는 부류와, 글을 써가면서 스토리가 덧붙이는 부류들이 존재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그 사이로 보인다. 왜냐하면 수미상관의 차용은 보통은 설계를 하지 않고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고, 작가의 그동안의 작품세계를 보았을 때 각 장면들의 공백을 직접적으로 채우려는 노력보다 그 공백을 독자들에게 맡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해석을 강요하게 되는 ‘시’와 같아 보인다. 왜 소설제목을 <겨울장면>으로 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처음에 작가도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인터뷰 중에 작가는 “다시 겨울이고, 다만 겨울이고, 잊히지 않는 것은 장면이다”라고 했다. 겨울이 가진 특별한 온도, 그리고 겨울이 갖고 있는 장면들을 문장 하나하나에서 발산하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의 시선에서의 겨울이지만, 그 겨울이란 이미지를 통해서 독자의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을 하나 둘 씩 꺼내고, 채워나가기를 바라는 시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겨울이 벌써 후반전을 향해 가고 있다. 사실 이번겨울은 춥지 않았다. 코로나는 겨울을 실종시켜 버렸고, 밖에 내리는 눈을 의식하기도 전에 비가 내려버렸다. 겨울이 녹았다. 겨울이 그리워졌고, 겨울을 읽고 싶어졌다. 겨울을 있는 그대로 상상하고 싶어 질 때도 유학을 실패하고 돌아온 나에게는 지독한 격리로 몸과 마음이 지쳤었다. 그곳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서 빨리 겨울이 지나 따스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했었다. 봄이 오면 괜찮아질까? 겨울이 지나가면 괜찮아질까? 그러나 <겨울장면>은 오히려 나에게 ‘현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겨울장면>은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거나 위로를 주지 않는다. ‘겨울’은 겨울이고, ‘나’는 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겨울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겨울을 찍고, 겨울장면을 만들자.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어제는 밖에서 글을 썼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자전거를 눈앞에 세워두고. 

자전거 안장에 노트북을 얹어놓고.

노트북이 거기 얹히는 것도 신기하지만 타자까지 쳐지니.

내가 되게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마우스가 저절로 커서를 움직였다.

뭔가 알아서 완성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쓰고 싶은 말들은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면서 혼자 재미있었다.   <겨울장면 에세이 중>


리딩투데이에서 협찬해주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