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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의학 콘서트
이문필.강선주 외 지음, 박민철 감수 / 빅북 / 2018년 1월
평점 :
서평을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일단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고 전달되는 정보량이 무지막지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안 하나하나에 대하여 별도의 단행본을 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단행본들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구요.) 또한 역사적 흐름에 따라서 살펴보고는 있으나 소재가 매우 전문적일 수밖에 없는 소재라서 어렵게 느껴지는 대목들도 적잖았습니다. 그래도 이 책 자체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학사에 관심 있는 초심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 합니다.
다만 성공적인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류로 보이는 대목들이 명백히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감정적인 글쓰기
저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감정 과잉인 태도를 취할 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중세 유럽의 조산사에 대한 대목인데
산과에 무지한 조산사들 때문에 중세 산모들은 산욕열과 난산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 (중략) ... 심지어 분만이 임박한 산모들에게 계단을 오르내리게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게 하는 등 우매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 (중략) ... 원시 부족의 산파들도 중세 조산사보다는 그 기술이 앞서 있지 않았을까? (230~231쪽)
중세 유럽의 의학 수준이 현대 의학보다 낮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꼭 이런 식으로 기술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리고
혈액순환 이론을 확립한 윌리엄 하비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써내려갔다. 비록 악필의 극치였지만 (252쪽)
하비의 악필을 굳이 언급했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비가 악필이라는 사실에서 독자가 딱히 재미를 느낄 것 같지는 않은데요.
2. 영국사와 관련해서는 무슨 참고문헌을 보신 건가요?
이 책의 영국사 관련 기술이 유독 괴상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찰스 1세와 찰스 2세를 악착같이 "찰리 1세"와 "찰리 2세"라고 표기하는 문제가 그렇습니다. (253쪽, 254쪽, 256쪽, 273쪽, 274쪽, 279쪽, 291쪽) "찰리"가 '찰스'의 애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찰스 1세와 찰스 2세를 "찰리 1세"와 "찰리 2세"로 표기해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찰스 1세, 찰스 2세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헨리 8세는 의학의 발전에 고무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 (중략) ... 당시 영국은 종교적 변혁의 회오리에 휘말리지도 않았거니와 (241쪽)
이게 사실이 아니란 건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린드는 ... (중략) ... 1753년 ... (중략) ...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괴혈병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바로 선원들의 식사 메뉴 가운데 레몬주스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 (중략) ... 영국해군은 매일 반드시 21g의 레몬주스를 섭취하도록 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린드가 세상을 떠난 뒤 이미 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지만 말이다. 레몬주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괴혈병은 영국 해군함대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전력이 크게 증강한 영국해군은 1797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327쪽)
이건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을 해야 할지 난감한데, 18세기에 활동했던 린드가 "세상을 떠난 뒤 이미 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레몬주스 섭취가 의무화되었다고 해 놓고, 레몬주스 덕분에 전력이 증강된("증강한"이 아닙니다! 문법도 참...) 영국 해군이 1797년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기술했네요. 게다가 "스페인의 무적함대"? 솔직히 이런 대목에서는 저자의 지적수준을 의심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1세는 1806년 공장에서 석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을 공표했다. (460쪽)
1806년 당시 영국 국왕은 조지 3세였을텐데 에드워드 1세가 왜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하다못해 1806년 당시 영국 수상 중에도 에드워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3. 교차검증의 필요성?
이 책의 401쪽부터는 처음에 웃음가스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마취제로 사용하게 된 "이산화질소"(NO2)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이용한 최초 사례는 미국의 치과의사 호러스 웰즈가 자신의 제자의 이를 뽑은 사건이었다고 하구요. 그런데 A. 섯클리프와 A. P. D. 섯클리프가 공저한 [과학사의 뒷얘기 III](전파과학사, 1974)에는 이 마취제가 "이산화질소"가 아닌 "아산화질소"(N2O)라고 하며, 호러스 웰즈는 자신의 제자가 아닌 본인의 이를 뽑은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4. 그 외
최근 관련 분야 학자들이 위성과 레이더를 이용해 이미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철옹성을 발견했다. 이곳은 성경을 비롯해 각종 이슬람 문헌, 그리고 아랍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던 유향의 무역 중심지로 밝혀졌다. (47쪽)
그래서 그 철옹성이 어디인가 하고 봤는데 끝내 구체적인 위치는 나오지 않더군요.
장중경의 스승 장백조(張伯祖)는 한나라 영제(靈帝) 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후에 장사 태수에까지 오른 인물로 (70~71쪽)
장사태수가 된 사람은 장백조가 아니라 장중경 본인입니다. 후한대에 과거제가 없었다는 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테구요.
3년 후 뒤낭은 자비로 <솔페리노의 추억>이란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시의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국제기구 창설을 촉구했다. ... (중략) ... 붉은 바탕에 흰색 십자가로 구성되어 있던 스웨덴 국기에서 영감을 얻어 그는 국제적십자회의 로고를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로 정했다. (446~447쪽)
다들 아시겠지만 "스웨덴"이 아니라 '스위스'가 맞습니다.
1910년 처음으로 제정된 노벨 평화상의 영광은 뒤낭에게 돌아갔다. (447쪽)
앙리 뒤낭이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해는 1910년이 아니라 1901년입니다. 1910년이면 앙리 뒤낭이 사망한 년이네요.
일단은 이상으로 서평을 마칩니다. 솔직히 지적하면서도 좀 찜찜한 감이 있는데, 만약 이 책을 지은 저자들이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면 보다 더 꼼꼼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