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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잘래.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가끔 모든 것이 다 싫을 때가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강아지도, 심지어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조차 나를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가고, 마치 건전지가 다 닳아버린 벽시계처럼 아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릴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초월하여 그 어떤 것과도 관계맺기를 거부하고 그것들이 내 마음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아픔과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처럼 눈과 귀를 막고 나의 온 감각을 의식적으로 막아, 세상이 나와 상관없게 만듭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분도도 즐거움도, 미움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픔과 두려움, 모멸감, 분노, 우울 등의 상처는 우리가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상처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자, 죽어 있는 자에게는 그 어떤 상처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태어난 자, 살아 있는 자에게만 있는 상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죽은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태어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말입니다.
저는 태어난 아이로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저처럼 태어난 아이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처럼 자신의 삶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속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걸어가다 넘어지고 깨지고, 물리고, 쓸리고 긁히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우리 삶의 상처에 붙일 반창고와 그것을 붙여줄 그 무엇입니다.
태어난 아이에게 그것은 "엄마가 붙여주는 반창고" 였습니다. 엄마여도 좋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이웃, sns 상에서의 낯모를 이가 반창고를 붙여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에게는 여행, 스포츠, 음악이나 미술, 요리, 식물, 반려견이 그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더라도 내 삶의 상처가 아물고 다시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반창고만 나에게 있다면, 이 아프고 피곤한 삶도 살아볼 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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