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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있는 개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 관계(친구, 연인, 부모와 자식...) 역시 식물이 성장해 가듯 시간에 따라 싹트고, 풋풋함을 자랑하며 자라고, 결실을 맺듯 풍요로와 지다 시들고, 다시 모든 것이 땅속이라는 암흑으로 사라져 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 온갖 물건들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의 상점거리 한 가운데서 소설가는 '삶의 거래에서 능숙하고 기민하지 못했으며 충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고백. 좀 쓸모없는 것. 그저 그런 것'으로서의 자신을 느낀다. 그는 동물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신사는 생후 사주되는 개 추토라를 만나게 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털뭉치에 다름없는 추토라. 만나는 순간 어딘지 모를 은밀하면서도 미스테리함으로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신사로 하여금 끌림을 느끼게 하는 추토라...
추토라는 신사와 그 가족의 삶에 어느 날 이렇게 뛰어 들어온다. 신사와 부인, 테레즈( 가정부 아이)는 추토라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추토라로 인해 신사가 살아가기 위해 세워놓은 규율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되고, 신사는 추토라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 사유한다.
'그것(동물에 대한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팁이나 우편 창구를 통해 만회하려는 겅우처럼 일종의 도피로 보인다. 인간(보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추토라(개별)를 보살피는 경우 피할 수 없는 수치심...인간이 헌신적이라는 것은 '보편'이 아닌 '개별'에 한하며 그로 인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는 경우 다른 누군가에는 적대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충격적이고 우울한 사실을 발견한다. -p.84~86
추토라는 그 무엇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장애에 부딪히면 전혀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주 꼼곰하게 세상을 발견하고, 모든 현상의 본질과 특성을 밝혀내야 한다. 신사에게는 개와 함께 경탄하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다. 신사 스스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상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빛과 소리, 물건과 사람같은 현상들을 파혜치는 것은 추토라 못지않게 신사를 흥분시킨다. -p.89
그러나 신사는 의심으로 괴로워하며, 기적을 기대하거나 신화를 믿지 않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싶은 의욕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피곤하고 권태로울 뿐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신사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개는 왜 이렇듯 호기심이 많은 것일까? -p.91
추토라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는 방법 찾기이다. 신사는 추토라의 젊은 열정에 무한한 찬사를 바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추토라가 자신의 본능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장군 초원에 남지 않는지, 무엇때문에 인가 세계에 남아 있는지 궁금해 하며 그것으로 인해 추토라에게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것은 곧 추토라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자기자신의 모순에 느끼는 분노인 것이다.
그러나 추토라에게도 길들여져야 하는 시기가 온다. 자신이 세상에 길들여졌듯 신사는 사회의 통념에 따라 추토라를 길들이려 하고 개줄을 매고자 한다.
추토라를 보며 신사는 '젊은 시절의 자유, 정열'을 느끼며 부러움과 그 한계를 인식한다. 또한 사람들이 추토라를 바라보는 그 의혹의 시선을 두둔하며 결국 그러나 신사는 점점 '자신만의 성격'을 드러내는 추토라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경험하며 추토라와 자신 사이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암흑의 벽이 있음을 느낀다. '성격'있는 개 추토라는 그 출생의 근본과 성격을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에 결국 '정신분석'을 받게 된다.(심지어 추토라는 개들의 목욕시설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까지도 선동하여 직원들의 원성을 산다)정신 분석가는 '추토라'와 신사의 가족들의 생할 전반을 분석하며 인간의 잣대로 개를 분석하려 한다. 이 분석이후 결국 부인과 신사, 추토라 이들은 제각기 두려움과 정신적인 압박감, 동경을 안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삶과 죽음의 유령같은 환영을 굴욕적인 미미한 자의식을 이용하여 그들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내벼려 두는 편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하여 신사는 추토라를 길들이기로 결심한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굴복시키겠어!" 그러나 추토라는 스스로 지은 죄를 의식하고 말없이 겸허하게 용서의 몸짓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제 주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주인을 부정하는 개가 된다.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하여 추토라는 신가의 가족을 차례대로 물어버린다. 신사와 개는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난투극을 벌인다. 서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그들은 존재 대 존재로 응시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그러다 전혀 에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개가 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추토라가 떠난 후 신사는 새로운 개를 키우게 된다. 개성도 없고 온순하며 한없이 다정다감한 개. 그러나 신사는 자신이 그 개를 사랑하지 않음에 놀란다. 추토라가 남긴 흉터를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그립고 마음이 저려온다. 자신이 추토라에게서 무한한 신뢰를 받았으며 청춘의 모든 마법과 자유분방함을 선사받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신이 이 청춘, 충만함을 손을 내저으며 거부했고 그 동물의 애정을 부인에게 떠넘겼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는다. 인간사이에도 진정한 영혼의 맞닿음을 할 수 있는 대화가 사라지고 '카드놀이'와 같은 대용품을 가진 '담화'만이 가능한 이 시대에 신사는 추토라라는 개와의 소통 역시 자신에게는 의문투성이였음을 알게된다. 과거에 그는 추토라에게 말했다. "이제 알겠지. 젊은이란 그런거야. ...너 그까짓 하찮은 자유 한 조각때문에 신의 를 배반하고 약속과 명령을 허공에 날려버릴 수 있어! 너 , 정렬이 얼마나 시시한건지 알아!" 그러나 결국 이것은 죽 한그릇을 위해 자유와 열정을 포기하고 모반을 일으키지 못하고 기차에 올라타지 못한 그시절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절규이다.
신사는 깨닫는다. 우리는 보통 아름답고 선하고 고결한 것만이 아니라 억눌리고 완전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 이를 갈며 싸우는 것. 풍습과 화의가 아니라 오점과 항의를 뜻하는 것도 사랑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이 교훈을 얻기 위해 어쨋든 개에게 한번쯤 물려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