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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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TC가 진 빚은 $가 아닌 시간의 빚이었다! 참, T라고 해야 하지. 어쨌든 싫든 좋든 그게 현실이었다. 달리 말하면 평생 갚아야 한느 주택 담보대출금은 결국 인생을 저당 잡힌 결과라는 게 자명했다. TC는 자신이 가진 T를 모두 팔아버린 것이다.                                               -25 쪽

TC는 T의 판매가 체제에 위험을 이야기할 뿐 아니라, 어떤 상품에는 위협이 되고 어떤 비즈니스에는 잠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T가 없다는 것이 바로 사람들의 수많은 필요와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T의 판매는 소비 사회의 위협이었다.                               - 90쪽 

                                                                                    

금융권은 국민들에게 $를 빌려주고, 국민들은 자신의 T를 전적으로 일하는데 투자해야 지금의 체제가 돌아갑니다. 국민들은 결코 자기 T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파멸입니다! 심각한 위험입니다. 자유주식회사는 자유 T가 많으면 그다지 많은 상품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 햇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소비를 하지 않도록 유도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제 가용 노동력이 없고, 태업과 유사한 행태가 증가일로 에 있으며, 국민들의 은행 잔고는 줄고, 국민들의 월급도 삭감되면서 비소비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재앙이 아닐 수 없지요! 달리 말하면 앞으로 몇 달 안에 국내총생산이 30퍼센트로 떨어질 것입니ㅏㄷ. 나라가 붕괴되고 있스비낟.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국도도 줄고 군대를 유지하는 일도 어려워져 해외의 우리나라 영에 있는 다른 지역들까지 모두 위험에 처할 겁니다. 그런 비상시에 국고가 비어 있다면 우리나라는 취약해질 테니 외국의 침략을 받기도 쉽습니다                                                      -138쪽

                                                                                            

'사람들은 부동산 자산을 포기하고 주택 담보대출을 자유주식회사에 넘겨서라도 35년짜리 컨테이너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손에 넣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옸고, 누구나 그 애열에 동참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체제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건 나도 가져야 하고, 아무도 원치않는 건 버려야 하는 법이다.  그거야말로 한 사람의 소유물의 가치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어떤 나라'에서 T가 든 컨테이너는 며칠 안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대안 가치가 되었다. 다른 모든 것은 가치가 없었고 원하는 이도 업성ㅆ다. 부동산 가치가 곧 급락하여 사람들은 간으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하고 싶어할 자산이 되리라는 점을 직감하기란 쉬었다. 그리고 일은 정말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아무도 아파트나 $대신에 그저 T가 든 컨테이너만 원햇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갖다 바친 진정한 동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155쪽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는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우리의 T와 노력을 요구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어느날 삶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던 TC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할 T는 어디에도 없다..그 T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그는 이 체제에 그의 T를 빚지고 있을 뿐이다. 그가 딛고 서 있는 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돈이 있으면 좀 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현대 소비사회에서 돈이란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체제에  저당잡힌 결과로 얻는 것이며 이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이것들조차 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다..오늘날 사회에서의 욕구란 이 체제가 욕구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은 우리의 자유를 저당잡으며 우리를 또다시 개미지옥처럼 돈을 벌어야 한다는 비참한 현실로 끌어들인다.  즉 이 체제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만의 T를 갖지 못한 채, 즉 주인으로서 우리가 T를 한번도 소유하지 못한 채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욕구가 아닌, 이 사회의 욕구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자유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그것의 대부분은 이 사회가 그것을 자유라고 느끼도록 만들어 놓은 무대에 선 배우의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멋진 옷을 사기 위해 쇼핑하고, 레스토랑에 앉아 우아하게 식사를 하며, 멋진 오페라를 감상하고, 해변가에서 해야 스포츠를 즐기며 누리는 즐거움 등... 이 중 자신이 정말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자유의지로 온전하게 실현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행한 것이 몇가지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TC조차 자신의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적두개미의 연구가 결국 실현 가능한 순간이 오자 흥미를 잃고 말지 않는가!) 공휴일과 연휴가 늘어날수록 소비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 현대사회의 연구결과는 결국 그러한 공휴일과 연휴에 우리가 누려야 할 T 역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소유물들을 소비하느라 결국 저당잡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한 나만의 T라면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과는 별도의 개념이 아닐까...(과연 논리적으로 가능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사람들이 35년간의 T가 들어있는 컨테이너를 구입하는 동기 역시 이 사회적 체제에 우리가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 5분짜리 T 용기를 살때와는 다른 것이다. 이 체제가 요구하는 가치가 이제는 돈이나 물리적인 소유물들이 아닌 T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 이런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들이기에 작가는 결론 역시 두 가지로 열어 놓는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자기 삶의 T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느냐, 아니면 또다시 '시간을 파는 남자' TC가 처음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만들며 겪었던 그런 충격적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느냐.....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이 시간..오늘 나의 T의 주인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도록 의식하며 살아야 겠다... 또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나의 T 안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TC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 읽었던 어린 왕자의 구절처럼 내가 놓치고 있는 의미들을 찾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그것은 정말 커다란 수수께끼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세상은 나에게도 그렇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에 따라 온통 뒤바뀔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라. 생각해 보라. 양이 그 곷을 먹었을까, 먹지 않았을가? 그러면 거기에 따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러분은 알게 되리라.  그런데 그것이 그다지도 중요하다는 걸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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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있는 개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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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 관계(친구, 연인, 부모와 자식...) 역시 식물이 성장해 가듯 시간에 따라 싹트고, 풋풋함을 자랑하며 자라고, 결실을 맺듯 풍요로와 지다 시들고, 다시 모든 것이 땅속이라는 암흑으로 사라져 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소설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 온갖 물건들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의 상점거리 한 가운데서  소설가는 '삶의 거래에서 능숙하고 기민하지 못했으며 충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고백. 좀 쓸모없는 것. 그저 그런 것'으로서의 자신을 느낀다.  그는 동물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신사는 생후 사주되는 개 추토라를 만나게 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털뭉치에 다름없는 추토라. 만나는 순간 어딘지 모를 은밀하면서도 미스테리함으로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신사로 하여금 끌림을 느끼게 하는 추토라...  

추토라는 신사와 그 가족의 삶에 어느 날 이렇게 뛰어 들어온다. 신사와 부인,  테레즈( 가정부 아이)는 추토라에게 애정과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추토라로 인해 신사가 살아가기 위해 세워놓은 규율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되고, 신사는 추토라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대해 사유한다. 

'그것(동물에 대한 사랑)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결핍을 팁이나 우편 창구를 통해 만회하려는 겅우처럼 일종의 도피로 보인다. 인간(보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추토라(개별)를 보살피는 경우 피할 수 없는 수치심...인간이 헌신적이라는 것은 '보편'이 아닌 '개별'에 한하며 그로 인해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는 경우 다른 누군가에는 적대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충격적이고 우울한 사실을 발견한다.                                                                                                    -p.84~86 

추토라는 그 무엇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장애에 부딪히면 전혀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른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아주 꼼곰하게 세상을 발견하고, 모든 현상의 본질과 특성을 밝혀내야 한다. 신사에게는 개와 함께 경탄하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다. 신사 스스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상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빛과 소리, 물건과 사람같은 현상들을 파혜치는 것은 추토라 못지않게 신사를 흥분시킨다.        -p.89

그러나 신사는 의심으로 괴로워하며, 기적을 기대하거나 신화를 믿지 않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싶은 의욕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피곤하고 권태로울 뿐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신사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개는 왜 이렇듯 호기심이 많은 것일까?                                                   -p.91

추토라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긍정,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는 방법 찾기이다. 신사는 추토라의 젊은 열정에 무한한 찬사를 바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추토라가 자신의 본능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장군 초원에 남지 않는지, 무엇때문에 인가 세계에 남아 있는지 궁금해 하며 그것으로 인해 추토라에게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것은 곧 추토라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자기자신의 모순에 느끼는 분노인 것이다.

그러나 추토라에게도  길들여져야 하는 시기가 온다. 자신이 세상에 길들여졌듯 신사는 사회의 통념에 따라 추토라를 길들이려 하고 개줄을 매고자 한다.

추토라를 보며 신사는 '젊은 시절의 자유, 정열'을 느끼며 부러움과 그 한계를 인식한다. 또한 사람들이 추토라를 바라보는 그 의혹의 시선을 두둔하며 결국 그러나 신사는 점점 '자신만의 성격'을 드러내는 추토라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경험하며 추토라와 자신 사이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암흑의 벽이 있음을 느낀다. '성격'있는 개 추토라는 그 출생의 근본과 성격을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에 결국 '정신분석'을 받게 된다.(심지어 추토라는 개들의 목욕시설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까지도 선동하여 직원들의 원성을 산다)정신 분석가는 '추토라'와 신사의 가족들의 생할 전반을 분석하며 인간의 잣대로 개를 분석하려 한다. 이 분석이후 결국 부인과 신사, 추토라 이들은 제각기 두려움과 정신적인 압박감, 동경을 안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삶과 죽음의 유령같은 환영을 굴욕적인 미미한 자의식을 이용하여 그들 방식으로 해결하도록 내벼려 두는 편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하여 신사는 추토라를 길들이기로 결심한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굴복시키겠어!" 그러나 추토라는 스스로 지은 죄를 의식하고 말없이 겸허하게 용서의 몸짓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제 주인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주인을 부정하는 개가 된다.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하여 추토라는 신가의 가족을 차례대로 물어버린다. 신사와 개는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난투극을 벌인다. 서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그들은 존재 대 존재로 응시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그러다 전혀 에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개가 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추토라가 떠난 후 신사는 새로운 개를 키우게 된다. 개성도 없고 온순하며 한없이 다정다감한 개. 그러나 신사는 자신이 그 개를 사랑하지 않음에 놀란다. 추토라가 남긴 흉터를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게 그립고 마음이 저려온다. 자신이 추토라에게서 무한한 신뢰를 받았으며 청춘의 모든 마법과 자유분방함을 선사받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자신이 이 청춘, 충만함을 손을 내저으며 거부했고 그 동물의 애정을 부인에게 떠넘겼다는 사실도 함께 깨닫는다. 인간사이에도 진정한 영혼의 맞닿음을 할 수 있는 대화가 사라지고 '카드놀이'와 같은 대용품을 가진 '담화'만이 가능한 이 시대에 신사는 추토라라는 개와의 소통 역시 자신에게는 의문투성이였음을 알게된다. 과거에 그는 추토라에게 말했다. "이제 알겠지. 젊은이란 그런거야. ...너 그까짓 하찮은 자유 한 조각때문에 신의 를 배반하고 약속과 명령을 허공에 날려버릴 수 있어!  너 , 정렬이 얼마나 시시한건지 알아!" 그러나 결국 이것은 죽 한그릇을 위해 자유와 열정을 포기하고 모반을 일으키지 못하고 기차에 올라타지 못한 그시절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절규이다.

신사는 깨닫는다. 우리는 보통 아름답고 선하고 고결한 것만이 아니라 억눌리고 완전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 이를 갈며 싸우는 것. 풍습과 화의가 아니라 오점과 항의를 뜻하는 것도 사랑하게 된다는 걸... 

..그리고 이 교훈을 얻기 위해 어쨋든 개에게 한번쯤 물려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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