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 - 세상 모든 소리가 잠드는 순간 베틀북 그림책 76
안 에르보 지음, 김주경 옮김 / 베틀북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왕국에 시끄러운 걸 몹시도 싫어하는 왕이 살았습니다. 얼마나 시끄러운 것을 싫어했는지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조용법'을 만들고 자신의 아들 이름조차 '조용' 입니다.

이러한 왕 때문에 온 나라 국민들은 항상 소근거리며 작은 소리로만 말해야 했고, 조용 왕자가 다가갈 때마다 사람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를 피하기만 합니다. 조용 왕자는 외톨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국민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마음껏 떠들고 소리지르며 소란을 떨고 춤을 추었습니다. 조용 왕자는 그 틈에 끼고 싶어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이들은 조용 왕자를 노려버며 내쫓아 버렸습니다.

조용 왕자가 떠나자,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식당은 방문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저와 일행은 한참의  웨이팅 후 간신히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크지 않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있어서인지 식당 안은 너무나 소란스러웠습니다.  마주 앉은 일행과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엿으니까요.  이러다보니  말할 때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커지고, 안 들리는 상대방의 소리를 들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신경도 예민해 졌습니다.  직원을 부르는 벨소리와 주문 소리,  손님들끼리의 함성에 가까운 대화, 직원들 간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등이 섞여  그야말로 식당안은 소리들의 잔치였습니다. 음식이 나왔지만, 그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음식 맛을 제대로 음미할 여유가 생길리 없겠지요.  빨리 먹고 이 소음에서 벗어나고만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한참 입소문이 돌거나 유명하다는 장소에 가면 겪게 되는 흔하고 흔한 풍경..  그림책 속 소란 왕자가 떠나간 도시의 모습도 이렇지 않았을까요?

 

현대인들은 말하는 능력을 침묵하는 능력보다 높게 평가하곤 합니다.  자신을 잘 포장하여 말하고, 다양한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도할 줄 아는 사람을 우수하다고 합니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취급합니다. 말 잘하는 법에 대해서는 돈을 주고도 배우려고 하지만, 침묵하는 법을 일부러 배우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화 사이에 침묵이 찾아 온다면 그 순간을   견딜 수 없어하고  어떤 식으로는 피해 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침묵하며 들어주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말하려고만 한다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침묵 속에서 서로 나눈 내화를 음미하고 다음의  질좋은 대화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내뱉기만 한다면 , 제대로된  대화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말과 관련하여 동서양의 다양한 격언과 속담, 명언들은 침묵을 바탕으로 한 말하기의 중요성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꽃이나 채소를 가꿀 때 우리는 '솎아내기'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식물은 결국 서로의 성장을 막기 때문입니다.  침묵은 우리를 사이에 건강한 거리두기를 합니다.  내 앞의 상대를 응시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딱 그만큼의 간격입니다. 그 상대는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직장 동료, 내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런 침묵을 바탕으로 한 말의 정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결국 도시의 사람들은  조용 왕자가 그리워졌고, 조용 왕자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조용 왕자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돌아왔답니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 돌아 온 조용왕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여러분들이 한번 찾아 볼래요? 참고로 우리의 조용 왕자는 눈에 띄지 않는 흰색 옷을 입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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