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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담배의 모든 것 -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18세기 지식 총서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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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도 면세점이란 것이 사실 편의점 수준의 것이라, 돌아가는 날 탑승시간을 기다리면서 산 것이라곤 당연히 오로지 '담배'뿐. 카멜, 이나 호프, 가 없었던 탓에 다비도프 스페셜 한정판이라고, 보기에도 혹, 하게 깔끔한 패키지가 돋보였던, 무려 4만원 가까이 하는 그것 한보루, 와 대충 필만한 것들 세보루를 사재꼈다. 집에 돌아와 짐풀어놓자마자 '시끽'을 해본 결과, 담배도 비싼 것이 맛있구나, 를 명징하게 깨달음.. 도대체 이 부드럽고, 담백한, 타르 6mg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담배를 피는 사람이면 가끔 가지게 되는 잡다한 담배에 대한 궁금증,, 그러나 현재가 아닌 무려 18세기 조선의 한 선비가 떠올린 담배에 대한 궁금증과 그에 응답하는 연구의 결과물이 한권의 책으로 나와있었다.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에 걸쳐 문필활동을 한 '이옥'은 성균관 유생시절 정조, 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명령을 받은 이후 관계로의 진출이 막혀 남은 한평생을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는 가운데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남기면서 보냈다. 특히, 당시 사대부가 저서의 주제로 삼기에는 꺼려지던 '담배' 를 과감히 다룬  연경(煙經)은 그 중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한다, 는 이 책의 서문에 언급된 그의 저술의 정신을 보더라도, 연경, 이 한낱 붓장난, 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것이라도 저술의 대상으로서의 의미성을 부여하려했던 그의 '작품'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직역하면 '담배의 경전' 이라고 할 수 있는 연경, 은 서문과 4권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첫권은 담배씨를 거두는 것에서부터 시작,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권은 담배의 원산지, 전래, 성질과 맛 및 담배를 태우는 방법, 셋째권은 담배를 피우는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지막 네째권은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특히 첫째권과 둘째권, 세째권을 아우르는 담배의 생산과 향유에 대한 구체적 실상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가 대부분 문학작품에 치중해있는 현실에서 볼 때 무척 소중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네째권의 내용들, 즉 흡연의 문화적 측면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적어내린 그 내용들이 참 좋았으며, 조선 후기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던 정경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듯한 뛰어난 수사가 놀라울 정도이다.

또, 특별히 번역자 안대회 교수가 따로 '2부 담배, 그 애증의 기록' 이라는 목차로 함께 묶어낸 당시 담배를 애호하는 옹호론자들의 자료와 흡연의 페혜를 고발하고 금연을 외친 금연론자들의 자료는 지금과 정말 하등 다를바없이 '팽팽한' 그 논쟁의 치열함을 엿볼수 있게 해준다. 맛깔나는 부록들은 또 하나 이어져, 우연히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제지당한 이옥이 승려를 능수능란하게 설득하여 입을 다물게 한다는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연경', 담배를 남령, 이란 이름의 장군으로 묘사하여 의인화시킨 가전체 소설 '남령의 한평생', 이번엔 담배가 비구니, 로 의인화된 '담파고의 일생', 이 함께 실려있으며, 당시 애연가의 담배에 대한 애틋한 심리를 공감하게 해주고 있다.

17세기와 18세기, 생활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다룬 저술이 많이 등장하였지만 유독, 담배에 대한 저술이 없는 것을 판단, 애연가로서 이 사실에 자극을 받아 담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저술을 펼친 이옥, 그리고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년동안 우리 민족의 기호품의 제왕 자리를 차지해온 담배를 학계는 너무 소홀이 취급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 흡연문화사, 를 다른 본격적인 저술을 이제라도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번역을 시작한 안대회 교수. 두 사람 모두, 요즘 내가 늘 한권씩 책을 읽어치울 때마다 드는 생각인,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의 범주에 넉넉하게 들어가고도 남는 사람들이다..

'발상의 전환' 이라는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보다는, '발상' 이란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한번쯤 해봐야 될 일 같다.. 내 머리 혹은 내 몸 어딘가를 관통하면서 뚫고나오는 발상, 의 과정은 어쩌면 이제 오래된 우물 속 같아서, 그저 뿌연 어떤 것이 되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길어올려지는 생각이란 것들도 그렇게 뿌옇고 흐리멍텅한 것이 점점 되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지 싶고 말이다.. 오래된 우물 속 같은 '깊이'는 참 갖고싶은 그것이나, 우물 속 오래 고여버린 뿌연 물은 참, 별루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 (200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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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과 카페, 모던 보이의 아지트 살림지식총서 342
장유정 지음 / 살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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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기에 있어서 다방 그리고, 까페의 출현과 그들의 성행,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소개, 이곳을 출입했던 당시 사람들의 면모와 행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 '종사'하였던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다방걸' 과 '까페걸' 에 대한 고찰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유흥업소 전문직종사자라고, 그녀들을 싸잡아 소개하지 않고 '다방걸', '까페걸' 로 나누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다방, 과 까페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가졌음을 명확히 하였고, 이에 대한 고증과 고찰을 제법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 책이다.

1930년대 우리나라의 까페는 '술'을 파는 곳이었다. 유럽의 까페가, 술집으로 변모하게 된 계기는 당시 여급을 채용하여 접대서비스를 제공했던 일본, 의 영향이 컸고 유럽의 까페는 우리나라로치면 당시의 '다방'이 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자가 '나오는' 술집인 까페와 그렇지않은 다방, 은 그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차이를 가져, 다방은 문화공간이자 실업자 지식인의 집합소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 반면, 까페는 '돈 있는 자제가 술과 계집을 얻으러 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에 실린 다소 격한 표현을 옮겨보자면, 육감적이고 육욕적인 공간이 까페, 동방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장소는 다방, 이었던 것. 

차를 파는 다방이 아닌,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 이라는 정의답게, 당시의 다방은 귀족적이고 고답적이었으며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등의 고전음악이 늘 흘렀다. 또,'프랑스적 취미'를 향유하자는 모토가 조금은 민망하게, 참으로 다국적인 실내장식양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어쩡쩡한 식민지 지식인, 들의 '죽때림' 과는 기가막히게,  슬프게도, 잘 맞아들어갔던 곳이었다. 이런 다방의 여급, 들, 즉 '다방걸'들은 1930년대 중반에 계산대를 담당하면서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 당시의 다방걸, 들은 남자손님과 '수작'을 나누어야 하는, 그러니까 이른바 '에로'를 제공해야했던 '까페걸'과는 손님들이 그녀들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 직접적인 욕망의 대상이 아닌, 그저 조심스럽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작업'을 시도해보는 수준의 호감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고.

반면, 까페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유행어였던 '에로 그로 넌센스'의 집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의 까페가,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 넌센스,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이 유행어처럼, 음탕하고 기괴하며 어처구니없이 우스운 장소, 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순수'를 표방했던 다방걸, 과 달리 '관능'의 상징이었던 '까페걸'들은 자신들이 손님들에게 발산한 '에로'에 상응하는 팁, 이 주수입이었으며, 에로의 발산 수위는 경쟁적으로 높아져만갔다. 무엇보다도 까페의 손님들이 대개 회사원, 은행원, 신문기자들처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까페걸, 역시 요즘으로 치자면 강남 텐프로, 에 해당하는 나름 인텔리 여급이었던 탓에, '자유연애'가 많이 발생하여, 급기야는 정사精死 에까지 이르는 등, 까페걸, 들만의 회한과 고뇌도 있었다는.

하지만 책의 말미는 대부분, 식민지 조선에서 억압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지식인들의 욕망의 분출구로서의 까페걸에서 탈피, 근대적인 주체로서 개인의 자아, 를 찾으려한 까페걸, 을 중심으로 채워진다. 신파같은 사랑,에 목숨을 걸고 버렸던 까페걸, 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1927년에 여급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발간한, 여성女聲, 이란 잡지를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이 잡지를 통해 그들이 '까페걸'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던 구구절절한 사연은 물론, 자신들을 도덕적 타락자, 나 매춘부로 취급하는 남성들에 대한 항변, 무산자계급인 여성들이 유일한 생존수단으로 '까페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현실을 제발 '직시해줄 것'을 당시의 지식인 남성들에게 외치게까지 된다는 것..

다 읽고나면 사실, 당시의 모던보이들의 아지트, 은신처, 도피처로서의 다방과 까페, 라는 근대유흥공간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근대 조선 여성, 특히 특정직업에 종사하였던 여성들이 어떻게 각성되어가고, 주체성을 찾으려했던가, 를 조명한 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방과 까페의 통시적인 접근을 통해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 행위, 이를 토대로 한 다방과 까페의 정체성, 을 찾아보려고한 작가의 의도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책이지만, 작가의 고백처럼 도대체 어울릴 수 없는 '근대'와 '식민지'의 조합인 당시의 조선, 당시의 경성, 게다가 그곳의 특정장소나 문화를 연구하는 일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기에, 가치와 판단이 서로 다른 독자들이 제각각 흡수가능한 내용만, 제대로 몇가지 전달되어도 썩 괜찮은 연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또 그러기엔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구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기에, 한번은 꼭 '따라쟁이'를 해봐야지 욕심도 든다는. (2009.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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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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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6년도에 '검은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오르한 파묵. 그러고보니 오르한 파묵의 작품엔 '색' 이 들어가는 제목이 많다. '검은 책', '하얀 성', 그리고 '내 이름은 빨강', 까지. 나는 이 책을 통해, 터키문학, 그러니까 이른바 '돌궐족'의 문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사실, '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지극히 '공주'스러운 제목에서 '끽'해야 자전적 소설이겠지, 전혀 정보없이 집어든 책이 이렇게 엄청난 '대작'일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비로소 '노벨문학상' 이란 것이 절대로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공들여서, 이렇게 치밀하게, 사람숨을 조금씩 죄어오면서, 기어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아넣을 수 있는 것일까.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가 살짝 지나가고 있던 16세기 말,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이슬람 '세밀화'의 전통, 이라는, 상당히 나로서는 어려운 전문분야를 소재로 하고 있다. 내가 읽다읽다 이젠, 이런 책도 보는구나 싶을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은 술탄, 의 이름과 세밀화 전문용어, 그리고 이슬람의 서사문학까지 거침없이 다뤄지고 있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을 절대 그려서는 안되며, 신 즉, 알라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것만을 그려야한다는 절대법칙,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각에 의해 평면적이고 투시적이며 절대 그늘이 없어야했던 이른바 이슬람의 '절대화풍'이 지배적이었던 이스탄불에, 르네상스 이후 인간중심으로 돌아선 베네치아 화풍이 스며들게 되고, 이에 따른 '오스만화원'  소속 세밀화가들의 갈등,이 빚어낸 의문의 살인사건과 그 범인을 쫒는 과정이 1,2 권 가득 빈틈없이 빼곡하다.

베네치아에 잠시 머물 계기가 있었던 궁정화원 소속 '에니시테', 는 그곳에서 '원근법'과 '초상화' 로 상징되는 베니치아의 서구적 화풍에 충격에 가까운 강한 인상을 받고 이스탄불로 돌아와 술탄, 에게 베네치아의 화풍을 따른 책을 만들 것을 건의한다. 에니시테, 의 유혹에 가까운 건의를 받아들인 술탄- 아마도 그림의 한가운데에 자신의 초상화가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한몫을 했을 듯 - 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에니시테는 궁정화원인 오스만 화원을 나와 독립적으로 그림제작에 들어가고, 이에 필요한 황새, 올리브, 나비, 와 같은 오스만 화원 소속의 세밀화가와 금박세공사인 엘레강스, 를 비밀리에 소집, '알바짓'을 시키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는체, 불러들여져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세밀화가들은 점차 자신들의 프로젝트, 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중, 이슬람의 절대화풍을 거스르는 '악마적 소행' 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엘레강스, 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살인범을 찾기 위해 에니시테는, 자신의 딸을 사랑했던 죄로 이스탄불에서 쫒겨나 12년을 떠돌아다녔던 조카 '카라'를 불러들인다. 이제는 정말 에니시테, 의 딸 '세큐레'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찾아내야만 하는 카라는 그 은밀한 '프로젝트'에 관계된 세밀화가들을 상대로 추적작업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의 서술이, 에니시테, 카라, 세큐레, 황새, 올리브, 나비, 화원장은 물론, 그림 속의 말, 여자, 개, 악마, 심지어 '빨강' 이라는 색까지, 화자가 되는 포스트모던한 화법을 사용하여, 마치 조심조심 실뜨기를 해올리듯 정교하게 추리과정을 엮어내고 있는 것이 정말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듯.

작가의 '스타일'과 '서명'을 당연시했던 서양미술과 그러한 스타일과 서명이 신을 거역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반역, 이라고 생각했던 세밀화가들의 갈등, 끝없이 선대의 세밀화들을 복제하며 더욱 '잘' 복제하는 것만이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신의 절대미, 를 영접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삽화' 에 지나지 않는 세밀화를 그리는 행위와 그림 '자체'가 주인이 되는 서양화풍에 대한 저울질이 내면에서 없을 수 없었으며, 모두가 '대놓고' 감히 말은 못하지만, 인생에 단 한번, 이라도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조금씩 서양화풍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에네시티,의 프로젝트였다. 이런 속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숨겨진 욕망을 '대놓고' 불평하는 가운데 프로젝트를 와해시킬 작정일 것만 같던 엘레강스, 는 동료 중 누군가에 의해 결국 살해된 것인데, 결국 엘레강스를 죽인 살인범은, 그들이 그렇게 욕망했던 '스타일', 단 한번 몰래 그려넣은 스타일을 추적하는 '시녀감별법' 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원래 나는 책을 띄엄띄엄, 주로 잠자리에 들면서 보는 편인데, 이 책은 드물게 연구실에서도 펼쳐들수밖에 없게 만들만큼, 매혹적인 책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엔 무엇보다도, 이렇게 맹목적일 수 있을까 싶던 그들의 이슬람 절대화풍에 대한 신념이란 것들에 대해서 납득이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이야 '교조적' 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당시의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내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내가 그렇게 전통에서 헤어나올수도, 그럴 생각도 할 수 없을만큼, 삶 자체가 절대적인 하나의 신, 으로밖에 귀결될 수 없다고 했을 때, 이질적이고 당시의 통념상 다분히 '악마적인' 서구의 새로운 문화, 제도 혹은 가치를 맞닥뜨리고 느꼈을 불안과 공포라는 것이 비로소 이입이 되면서부터, 이 책에 그만 몰입하게 되버린 것 같다.

지정학적 위치로나, 한때 '여기서 쩌-기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화려한 제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오스만제국, 에서 벌어진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구문명의 충돌, 신의 존재와 인간의 충돌, 신념과 본능의 충돌,, 들의 아우성 속에서 불쌍한 것은 결국 '사람' 이라는 생각. 온통 휘둘리면서도 천년의 오스만제국의 전통을 지키려한 세밀화가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욕망과 절대신에 대한 거역이 주는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금바늘로 눈을 찔러 차라리 눈을 멀게 함으로서 신의 절대미, 에 삶을 던지려했던 선택들, 에 대해서 후대의 역사가들은 어떤 기록들을 남기고 있으며, 그러한 기록은 과연 얼마나 기억이 될까. 오르한 파묵, 이 소설의 자료를 취재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유럽미술관은 발디딜틈이 없었으나, 이슬람세밀화가 있는 전시실엔, 미술관에서 '길을 잃은' 일본인이 서너명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2009.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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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정지인 옮김 / 낭기열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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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스 사회탐구 영역 국사, 근현대사 강사 '강민성'이 극찬한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세계사'.. 요며칠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이나 봄짐한 책을 기어이 구입해서 탐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도 뻗대면서 넘어갔는데, 도대체 보스니아 내전, 이 전쟁이 뭔 전쟁인지를 알아야 그간 읽었던 비슷한 배경의 책들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을듯 싶더라는. 어지간히 전쟁엔 관심도 없고, 갖고있던 얄팍한 세계사 지식, 이란 것도 내가 학력고사를 치기 전, 그러니까 1980년대의 일들이 마지막이므로, 이미 거덜난 지는 오래. 그러나, 사실 이것도 병이라면 병.. 그저 읽고말면 그만인 것을, 소설 하나 읽으면서 찾아가면서까지 공부를 하는.. 이것 말이다 

흔히 말하는, 1990년대에 발발한 유고슬라비아 전쟁, 에는 슬로베니아 전쟁, 크로아티아 전쟁,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 이 해당된다.  이 중 '보스니아 내전' 은 정확하게 말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으로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보스니아와 독립에 반대하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이 충돌을 하면서 겪게 된 내전이다. 제 2차 세계대전후 '티토'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즉 '유고연방'이 세워진 후,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크로아티아인들이 비교적 다민족국가로서 모범적으로 살아오던 중, 덜컥 '티토' 양반이 돌아가시면서, 이 땅에 서서히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 그 죽일놈의 '민족주의'의 부활과 함께 제일 먼저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를 중심으로 연방의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1990년과 1991년, 세르비아의 지배에 반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가 짧은 전쟁을 치루면서 독립을 하게 되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시, 독립에 반대하는 세르비아인들을 제외시킨,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들만의 국민투표로 독립을 선언하는데, 보스니아 내전은, 바로, 이를 반대하는 유고의 연방군과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민병대가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침공하면서 시작되는 것. 이 소설의 배경인 '비셰그라드'는 인종청소, 에 혈안이 된 세르비아공화국에 인접한 지역으로, 따라서 전쟁의 피폐함은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러나, 이 책은 최근의, 성장기를 전쟁과 함께 보낸 주인공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담담하게, 아련하게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 상처를 자신의 성장기 추억속에 켜켜히 그저 재워만 놓는다.

칼 루이스가 10초의 벽을 깬 것이 자신의 마법 때문임을 믿어의심치 않는 알렉산다르, 하지만, 가장 값진 재능은 창작이고, 가장 귀중한 재산은 상상력이라며, 요술모자와 지팡이를 만들어주신 슬라브코 할아버지는 칼 루이스의 경기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 군인들은 점차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후, 마을 사람들, 가족들은 하나둘씩 전쟁터로, 피난처로 그리고 포로로, 사라지게 되는데, '끝나는 것에 반대하고, 멈춰지는 것에 반대하는' 알렉산다르, 는 오로지 '연작'만이 그것을 가능하게하리라, 는 생각에 아흔아홉장의 연작 그림과 같은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펼쳐내면서, 자신의 성장담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밟는다. 

드리나 강을 너무나 사랑해서 강물에 빠져죽은 라픽 할아버지, 지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핑크 플로이드, 를 듣는 아버지, 알렉산다르를 가졌을 때 낮에는 자두만, 밤에는 다진고기만 먹었다는 어머니, 그리고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는 물론, 바다코끼리 아저씨, 카타리나 할머니, 파즐라지치 선생님, 키코, 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회상, 은 정말 아무것도 잊어먹지않을테야, 작정이라도 한듯 완벽하며, 무엇보다도 군인들이 난입한 집의 계단실에서 자신이 꼭 손을 잡아주었던, 그 여자아이, '아시야' 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만 잃어버린 것이 분명한 주인공의 어린시절, 을 너무나 안쓰럽게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믿기힘들만큼 판타스틱 그 자체이니, 이 책의 표지가 '레모니 스니켓'의 사진이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던 시절 모두, 를 기억해야한다며, 카타리나 할머니가 선물해준 노트 어디쯤엔가 '사람은 이야기에서 거짓말을, 기억에서 허위를 깎아낼 수 있는 정직한 대패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나는 대팻밥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라고 썼던 것처럼, 알렉산다르는,  천상 이야기꾼, 이었다라는 생각도 든다.

1978년생 스타니시치, 주인공과 동년배인 작가가 슬쩍슬쩍 드러나는 대목이, 어설프거나 민망하게 느껴지기는 커녕, 숨어우는 아이처럼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책. 한국전쟁,을 겪은 김원일, 의 '마당깊은 집' 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금 되살아나기도 하였고, 초등학생 독후감 같겠지만, 훌륭한 문학작품도 좋지만, 그 이전에 '전쟁' 이라는 것을 겪지 않는 일이, 더 좋은 일이다, 라는 생각. 참, 이 책은 너무나 '보석' 같은 목차, 를 가지고 있다. 책까지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목차만이라도. 그러나 목차, 를 읽게 된다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수는 없을 듯. (200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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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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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다소 생소한 일본 여인의 이름인데, 찾아보니 참 대단한 일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최근 짬짬히 한국일보에 기고되고 있는 고종석의 기획연재 '여자들'에 소개된 그녀의 약력을 보면, 일본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의 소련 공산당이 운영하는 국제학교를 다녔으며, 그 당시의 경험과 학습, 그리고 교육으로 일본 정재계 및 각종 문화행사의 러시아 통역의 '지존'으로 올라선 여자. 일본제일의 동시통역사였지만, '말'이 아닌 '글'에 대한 갈증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고, 뛰어난 문체, 를 자랑하는 문장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서로다른 문화의 불꽃같은 접촉을 중심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낸 여자. 그녀는 2006년 51세 난소암 투병끝에 독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 그녀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죽은지 몇달 후 2006년부터였으며,'프라하의 소녀시대', '마녀의 한다스', '대단한 책','미녀냐 추녀냐,'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 등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소개를 읽어보니 각각의 책 모두, 당장 달려가서 뽑아들고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책이다.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의 글이 주는 산뜻함이 요즘은 많이 끌린다. 나는 작가니까, 혹은 당신은 작가니까, 라는 양자간의 줄다리기 같은 강박이 독서의 과정을 얼만큼 장악하고 있는지도 새삼 깨달게 된 탓도 있을 것이고, 갈수록 실감하는 건데 '책'이란 것은 정말 한 우물만 파야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목매달아도 좋을' 한 우물을 위해서는 별별 우물의 물들을 다 길어보고 또 들이켜봐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같다..  

물론 전업작가들이 쓴 픽션도 물론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사고들과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예컨데 전업작가들의 경우는 그 때문에라도 그들의 일상을 '픽션'처럼 윤색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한' 일상을 살아야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도대체 독서에 집중이 안되기 시작하고, 여러모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독서, 인데 오히려 '딱한 사람' 사정을 들어줘야하는 난처한 입장이 되버린 것만 같아 불편하기 이를데 없더란 말이다. 아무튼 그런 등등의 이유로, 흔히 말하듯 '투잡'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책이 점점 더 끌린다는 이야기.

각설하고, 표지를 넘기자마자 첫장을 통해,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지만, 그중 가장 질긴 끈은  ' 위胃'에 닿아있는 그것,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라고 할수 있는 바로 그것임을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이 책 속에는, 그녀가 경험한 세계각국의 미각적 '편견' 에 대한 소개를 '빙자'하여 먹는 이야기만 무려 37편이 나온다. 그 이야기들의 전개는 마치 해설자의 표현처럼,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우스우며, 즐겁고, 그리 과하다 싶지는 않은 각국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들이 적절하게 그녀가 '탐구'한만큼만 소개가 되고 있으니, 이 책을 구입할 때 함께 구입한 살림지식총서의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를 펼쳐봤을 때 나를 조금 '경기'하게 만들었던 장황한 지식들의 소개, 와는 참으로 다른 책이라는 것..

지금은 그것이 없이는 어떤 요리도 불가능할 것 같은 감자, 옥수수, 토마토, 와 같은 서양요리의 재료들이 감내해야했던 보급 초창기의 각국의 지독한 미각적 보수주의, 멸종하고 있는 철갑상어와 그에 따른 캐비어 생산량에 대한 대책으로 철갑상어를 제왕절개를 하고 몇번이나 다시 캐비어를 꺼낼 수 있는 시도가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다는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전채, 수프, 메인요리, 치즈, 디저트 순의 프랑스식 서비스법이, 사실은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가 그 원조라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 프랑스는 원래 한상에 다 차려놓고 먹었던 문화였다는 사실과 같은 그야말로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알게 된 이야기는 물론이고,

나로 하여금 맞다맞어..그런 동화가 있었어 나도 읽었어, 감탄하게 만들었던 '꼬마 깜둥이 삼보'란 동화책에 등장하였던 호랑이 이야기, 삼보를 잡으려고 삼보가 올라간 나무 밑둥에서 빙글빙글 돌던 호랑이들이 그만 엉겨붙어서 버터, 가 되어버렸고 그 버터로, 삼보 엄마가 핫케이크를 구워주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면 핫케이크 생각만 난다는 고백과, 얼마나 맛있으면 매 페이지마다 저렇게 꼴깍꼴깍 마실까, 싶었다는 알프스 하이디에 등장하는 염소젖을 맛본 후의 실망과 같은 어린시절 동화책에서 본 음식들, 재료들에 대한 환상과 추억, 그리고 평가도 유쾌하다. 또 하루 여섯끼를 먹는 '대식가'임을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하게 고백한 고베에서의 음식기행 이야기는, 원래는 고베에 남아있는 서양건축물 기행을 떠난 것인데, 어쩌다보니 맛집만 찾아다니면서 먹다가 배가 불러 소화시키느라 건축물 기행을 슬쩍 해버리고 말게 되었다고 스스로도 겸연쩍어할 정도였지만, 나로선 그 여행이 어찌나 부럽던지.

이 책에서도 여러번 인용이 되었고, 현재 전세계 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로부터 '우리를 죽이는거냐' 라는 원성을 무지하게 사고 있다는, 이 책의 해설자이기도 한 '쇼지 사다오' 의 '베어먹기 시리즈', 앞서 말한 고향과 위장을 잇는 그 동아줄을 사정없이 끌어당기게 한다는 그 시리즈가 주간 아사히, 에 연재중이라는데, 그걸 어떻게든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궁리 중이며, 번역이론에서 오랜 논쟁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출발언어, 와 도착언어, 의 관점을 다룬, 그러니까 직역된 언어는 출발언어에 가까워 일종의 '정숙한 추녀'이고 의역된 언어는 도착언어에 보다 가까워 '부정한 미녀'라는 견해에서 전개된다는 요네하라 마리, 의 '미녀냐 추녀냐'가 조만간 독서목록에 추가될 듯하다.. 

(2009.8.20. http://hazimede.egloos.com/1936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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