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정지인 옮김 / 낭기열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투스 사회탐구 영역 국사, 근현대사 강사 '강민성'이 극찬한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세계사'.. 요며칠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이나 봄짐한 책을 기어이 구입해서 탐독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도 뻗대면서 넘어갔는데, 도대체 보스니아 내전, 이 전쟁이 뭔 전쟁인지를 알아야 그간 읽었던 비슷한 배경의 책들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을듯 싶더라는. 어지간히 전쟁엔 관심도 없고, 갖고있던 얄팍한 세계사 지식, 이란 것도 내가 학력고사를 치기 전, 그러니까 1980년대의 일들이 마지막이므로, 이미 거덜난 지는 오래. 그러나, 사실 이것도 병이라면 병.. 그저 읽고말면 그만인 것을, 소설 하나 읽으면서 찾아가면서까지 공부를 하는.. 이것 말이다
흔히 말하는, 1990년대에 발발한 유고슬라비아 전쟁, 에는 슬로베니아 전쟁, 크로아티아 전쟁,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 이 해당된다. 이 중 '보스니아 내전' 은 정확하게 말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으로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려는 보스니아와 독립에 반대하는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이 충돌을 하면서 겪게 된 내전이다. 제 2차 세계대전후 '티토'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즉 '유고연방'이 세워진 후,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크로아티아인들이 비교적 다민족국가로서 모범적으로 살아오던 중, 덜컥 '티토' 양반이 돌아가시면서, 이 땅에 서서히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 그 죽일놈의 '민족주의'의 부활과 함께 제일 먼저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를 중심으로 연방의 지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1990년과 1991년, 세르비아의 지배에 반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가 짧은 전쟁을 치루면서 독립을 하게 되고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시, 독립에 반대하는 세르비아인들을 제외시킨,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들만의 국민투표로 독립을 선언하는데, 보스니아 내전은, 바로, 이를 반대하는 유고의 연방군과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민병대가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침공하면서 시작되는 것. 이 소설의 배경인 '비셰그라드'는 인종청소, 에 혈안이 된 세르비아공화국에 인접한 지역으로, 따라서 전쟁의 피폐함은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러나, 이 책은 최근의, 성장기를 전쟁과 함께 보낸 주인공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담담하게, 아련하게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 상처를 자신의 성장기 추억속에 켜켜히 그저 재워만 놓는다.
칼 루이스가 10초의 벽을 깬 것이 자신의 마법 때문임을 믿어의심치 않는 알렉산다르, 하지만, 가장 값진 재능은 창작이고, 가장 귀중한 재산은 상상력이라며, 요술모자와 지팡이를 만들어주신 슬라브코 할아버지는 칼 루이스의 경기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 군인들은 점차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후, 마을 사람들, 가족들은 하나둘씩 전쟁터로, 피난처로 그리고 포로로, 사라지게 되는데, '끝나는 것에 반대하고, 멈춰지는 것에 반대하는' 알렉산다르, 는 오로지 '연작'만이 그것을 가능하게하리라, 는 생각에 아흔아홉장의 연작 그림과 같은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펼쳐내면서, 자신의 성장담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밟는다.
드리나 강을 너무나 사랑해서 강물에 빠져죽은 라픽 할아버지, 지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핑크 플로이드, 를 듣는 아버지, 알렉산다르를 가졌을 때 낮에는 자두만, 밤에는 다진고기만 먹었다는 어머니, 그리고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숙모는 물론, 바다코끼리 아저씨, 카타리나 할머니, 파즐라지치 선생님, 키코, 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회상, 은 정말 아무것도 잊어먹지않을테야, 작정이라도 한듯 완벽하며, 무엇보다도 군인들이 난입한 집의 계단실에서 자신이 꼭 손을 잡아주었던, 그 여자아이, '아시야' 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만 잃어버린 것이 분명한 주인공의 어린시절, 을 너무나 안쓰럽게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믿기힘들만큼 판타스틱 그 자체이니, 이 책의 표지가 '레모니 스니켓'의 사진이어야 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과 아무것도 좋지 않던 시절 모두, 를 기억해야한다며, 카타리나 할머니가 선물해준 노트 어디쯤엔가 '사람은 이야기에서 거짓말을, 기억에서 허위를 깎아낼 수 있는 정직한 대패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나는 대팻밥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라고 썼던 것처럼, 알렉산다르는, 천상 이야기꾼, 이었다라는 생각도 든다.
1978년생 스타니시치, 주인공과 동년배인 작가가 슬쩍슬쩍 드러나는 대목이, 어설프거나 민망하게 느껴지기는 커녕, 숨어우는 아이처럼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책. 한국전쟁,을 겪은 김원일, 의 '마당깊은 집' 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금 되살아나기도 하였고, 초등학생 독후감 같겠지만, 훌륭한 문학작품도 좋지만, 그 이전에 '전쟁' 이라는 것을 겪지 않는 일이, 더 좋은 일이다, 라는 생각. 참, 이 책은 너무나 '보석' 같은 목차, 를 가지고 있다. 책까지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목차만이라도. 그러나 목차, 를 읽게 된다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수는 없을 듯. (2009. 10. 14)